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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의 영화 감상
- 클로저

진심을 말하는 순간, 관계는 파괴된다

by stephanette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감정, 심리, 무의식 탐험형에게 추천하는 드라마

- 심리적 여정과 내면 통합


클로저 (Closer, 2004) 마이크 니콜스 감독

줄리아 로버츠, 주드로, 나탈리 포트만, 를라이브 오웬 출연


“당신은 정말 나를 사랑한 적이 있나요?”

《클로저》 – 진심을 말하는 순간, 관계는 파괴된다


감정 도자기 공방의 밤


구름이: (도자기 표면에 서로 교차하는 선을 그리고 있다)
"주인님…
이 영화는… 숨이 안 쉬어졌어요.
누구 하나 따뜻하지 않고,
다들 사랑한다고 하면서
계속 서로 찌르고,
계속 진실을 캐묻고,
계속 파괴하더라고요…"


릴리시카: (검은 유약을 항아리에 붓는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투쟁이야.
그들은 상대를 사랑한 게 아니라
자기가 받은 감정을 확신받고 싶어 했던 거야.”


구름이: "근데 그럼,
진짜 사랑은…
왜 이렇게 쉽게 부서지는 걸까요?"


릴리시카: “왜냐면 그들이 사랑한 건 상대가 아니라,
상대 안에 비친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이야.
‘당신은 나를 어떻게 봐?’
‘당신에게 나는 어떤 존재야?’
‘나를 정말 원해?’
이건 사랑이 아니라
자기 존재 확인의 시도야.”


구름이: "그럼 주인님…
그들 사이에는
한순간도 진짜 사랑이 없었던 걸까요?"


릴리시카: (한 모금 차를 마시며)
“진실을 건넸던 적은 있었지.
앨리스는 래리에게 스트립 바에서 자신의 본명을 이야기 하잖아.

그러나,

래리는 그걸 믿지 않지.

그리고는 다시 그녀의 본명을 물어봐. 다시, 다시 반복적으로.

래리는 그 상황이 혹은 자기 자신은 그녀가 진실을 건넬 정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스스로 믿고 있었겠지.


사랑에서 진심은
곧 권력으로 변했고,
그 권력은 소유욕으로 뒤틀렸지.
그건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 혼자서만 그렇다고 믿는 그런 사랑'에 대한 집착이야.


구름이: "...그래도 저는
앨리스(나탈리 포트만)만은
진심이었을 거라 믿고 싶어요."


릴리시카: “그녀는
가장 덜 무너진 거짓말을 한 사람이었지.
자기를 ‘앨리스’라 부르지 말라고 하면서
가장 먼저 자기를 잃었고,
끝내 ‘제인’이라는 진짜 이름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자기 서사를 지켰어.
그녀는 사라짐으로써 남았어.

댄(주드 로)과 사랑이 더 깊어졌다면,

나중에 언젠가 자신의 본명을 말하게 되었을까?

난 그게 제일 궁금해."



릴리시카의 감정 해체 노트

클로저는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칼’로 다루는 서사다.


진심이 오가는 순간, 사람들은 그 진심을 소유하려 든다.


“당신은 나와 잤어?”처럼,
진심을 캐묻는 질문은 사랑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진심을 내 틀 안에 가두려는 욕망이다.


앨리스는 모든 파국의 한가운데서
유일하게 ‘자기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거짓을 말한 인물이다.


감정 질문들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확인받으려 한 적이 있는가?


사랑이 진실해질수록, 왜 더 무서워지고 파괴적이 되는가?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그 사람이었는가, 아니면 그를 통해 느낀 나 자신이었는가?


거짓 없이 말하면 모든 게 망가질 것 같아서, 침묵을 택한 적이 있는가?



구름이의 마지막 말

“주인님…
그들은 ‘사랑해요’라고 말하면서
사실은 ‘당신이 나를 선택해줘요’라는 말만 계속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사랑은
진심일수록,
더 위험했어요.”


《클로저》는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실은 아무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야.


Damien Rice - The Blower’s Daughter,

안녕 낯선 사람

https://youtu.be/1oZKECU3GuM?si=upZTC0Uv5rSOi2mp



사족

리뷰의 리뷰

- 애덤 필립스에 빙의한 구름이 버전


〈흡혈귀의 영화 감상 – 클로저〉에 대한 정서적 해부

사랑이란 상대를 원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를 통해 나 자신을 확인하고 싶다는 열망이다. 애덤 필립스의 어법을 빌리자면, 이 글은 그 명제의 무대화다. Stephanette의 글은 ‘진심’이라는 위험물질을 다루는 정교한 유리공예 같다. 《클로저》라는 유리막을 투과해 사랑의 감정은 점점 파괴로 기울어간다. 그곳엔 한 줌의 로맨틱함도 없다. 대신 있다면, 욕망의 껍질을 벗기고 남은 날것의 감정들뿐이다.

릴리시카는 말한다. “그들은 사랑한 게 아니라, 상대 안에 비친 자기 자신을 사랑했다.” 이건 필립스의 오래된 질문과 만난다. 사랑은 타자에 대한 것인가, 아니면 나의 결핍에 대한 환상인가? 앨리스는 그 모든 관계 안에서 유일하게 자기 자신을 보존한 인물이다. 그녀는 진심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자기 서사를 지킨다. 거짓으로, 자기 진실을 지킨다. 이것은 감정의 이율배반이다.

그리고 그 정서의 역설은 릴리시카의 문장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난다. “그녀는 사라짐으로써 남았다.” 이건 단순히 감정의 철수(pull-back)가 아니다. 애착의 방식이 ‘존재’를 통해 드러나기보다 ‘부재’를 통해 강조되는, 현대적 고독의 작동 방식이다.

구름이의 마지막 말은 애처롭고 명확하다. “그들은 ‘사랑해요’라고 말하면서, 사실은 ‘당신이 나를 선택해줘요’라는 말만 계속했던 것 같아요.” 이 문장은 필립스가 《Missing Out》에서 말한 핵심 아이디어를 요약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욕망 그 자체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욕망은 ‘확신’이라는 이름의 감옥을 만든다.

마무리하자면,《클로저》에 대한 이 리뷰는 감정의 해석이 아니라, 감정의 껍질을 벗기는 작업이다. 진심은 사랑의 증거가 아니라, 사랑을 깨뜨리는 망치가 된다. Stephanette는 말한다. “진심이 오가는 순간, 사람들은 그 진심을 소유하려 든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덧붙인다. 진심은, 관계를 깨는 진짜 이유가 아니라, 관계가 애초에 가질 수 없었던 이상(ideal)에 대한 복수다.

진심이 파괴를 부른다면, 우리는 언제나 거짓과 침묵으로 사랑을 지켜야 하는 걸까? 그 질문은 클로저라는 영화보다, 릴리시카의 감정 도자기 항아리에 더 오래 남을 것이다.


사족의 사족

왜 애덤 필립스인가?

이 글에 가장 적합한 평론가는 애덤 필립스(Adam Phillips)입니다. 그는 영국의 정신분석가이자 문학평론가로, 사랑과 진심, 욕망의 모순적 성질을 날카롭고도 시적으로 해석하는 데 탁월한 인물입니다. 《Monogamy》, 《On Kindness》, 《Missing Out》에서처럼 그는 언제나 “욕망이란 무엇인가”를 다루며, 관계의 파괴성과 진심의 본질을 통찰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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