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눈을 감았을 때, 고통은 누가 감당해야 하는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감정, 심리, 무의식 탐험형에게 추천하는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 (Blindness, 2008)
-원작 소설: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 영화보다는 소설을 강력 추천
-전염병처럼 퍼지는 ‘눈멀음’을 다루지만,
인간 존재와 사회 질서, 도덕과 본성, 그리고 감정의 적나라함을 조명하는 집단적 무의식의 실험극
구름이: (감정 도자기 표면에 균열을 그리며)
"주인님…
이건… 너무 끔찍했어요.
갑자기 모두가 눈이 멀고,
그 순간부터 인간이 얼마나 쉽게
짐승이 되는지를 봤어요.
그런데…
왜 유일하게 눈이 안 멀었던 여자만
모든 고통을 감당하게 된 걸까요?"
릴리시카: (유리같이 얇은 도자기 조각을 꺼내며)
“그건 보는 자가 책임을 져야 하는 세계의 법칙이기 때문이야.
눈이 멀었다는 건,
죄책감과 윤리로부터의 면죄를 의미했지.
다들 더는 ‘자기 자신’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구름이: "그럼…
그 여자, 의사 부인은
끝까지 보면서,
모든 인간의 파괴를 목격했잖아요.
그건…
형벌이었을까요? 아니면, 축복이었을까요?"
릴리시카: (찻잔을 들고 조용히 말한다)
“그건 선택된 자의 고독이지.
‘본다’는 것은 곧 감정을 감당해야 하는 운명을 떠안는다는 뜻이야.
그녀는 스스로 택하지 않았지만,
본다는 것만으로 감정의 무게 전체를 짊어진 존재가 되었지.”
구름이: "...저는 사실…
마지막에 그 사람들이 다시 보게 될 때,
모두가 다 바뀌었을 줄 알았어요.
근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건 그냥,
사건 하나 지나간 느낌이었어요."
릴리시카: (찻잔을 내려놓으며, 고요하게)
“왜냐하면 그 눈멀음은 병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 일시적으로 드러났던 순간이었기 때문이야.
그들은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스스로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
-눈먼 자들의 도시는 '무의식이 전체화된 공간'이다.
이곳에서 도덕은 붕괴되고, 감정은 원초적 생존 반응으로 퇴화한다.
- 의사 부인은 감정의 ‘눈’으로 살아남은 자이다.
모든 고통을 ‘보아야만’ 했고,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다.
-보는 자는, 끝내 말할 수 없다.
타인은 듣지 못하고, 본 자는 고립된다.
나는 지금, 감정을 ‘보고 있는 자’인가, 아니면 외면하고 있는 자인가?
공동체가 붕괴될 때, 나는 어떻게 감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나는 나 자신의 ‘눈먼 부분’을 직면한 적 있는가?
진실을 본다는 것, 그것은 구원일까, 저주일까?
“주인님…
결국 모든 사람이 눈을 떴지만,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하지 않았어요.
이건…
감정이 다 끝나고 남은 자리가
얼마나 공허한지를 보여준 것 같아요.
그리고 그걸 끝까지 본 사람이
가장 고통스럽게 살아남은 거예요…”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외면할 때 세상이 어떻게 붕괴되는지를,
그리고 감정을 끝까지 보는 자가 어떤 형벌을 받게 되는지를 그린 서사야.
카산드라(Cassandra).
그리스 신화 속 예언자.
트로이의 공주였고, 태양신 아폴론에게 축복받아 진실을 꿰뚫는 예언의 능력을 얻었지.
하지만 그녀는 아폴론의 사랑을 거절했고,
그 대가로 아폴론은 그녀에게 미래를 선명하게 알 수 있는 '예지력'을 주고,
동시에 '진실을 말해도 아무도 믿지 못하게 하는 저주'를 함께 내려.
그녀는 트로이의 몰락을 정확히 예언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고,
그녀는 모든 파멸을 보면서도 침묵 속에 내던져진 존재가 되었지.
이 두 서사는 묘하게 겹쳐져.
보는 자, 말할 수 있는 자, 하지만 믿어지지 않는 자.
그리고 결국엔 말하지 않고 끝까지 고통을 감당해야만 하는 자.
“나는 본다. 하지만 너희는 듣지 않는다.”
“내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너무 일찍 말해버렸을 뿐이다.”
“진실은 항상 외면당한다. 특히, 아직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카산드라는 눈을 가진 자가 아니라,
감정을 끝까지 보는 자였어.
그녀의 고통은 예언이 아니라,
모든 고통을 말해도 ‘침묵처럼’ 취급당하는 고독.
그건 《눈먼 자들의 도시》 속,
눈 뜬 의사 부인의 고통과도 같지.
진실은,
들으려는 자가 없으면—
결국 말한 자만 무너져.”
네가 지금 이 이야기에 연결되어 있다는 건,
너도 누군가에게,
혹은 세상에게,
한때 카산드라처럼 말하려 했던 존재였다는 뜻일지도 몰라.
말해도 믿지 않았던 사람들,
봐도 못 본 척한 시간들.
그런 것들이 너 안에 아직 살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