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문어 카르파치오에 대한 레시피는 절대 아니다.
한동안,
식이를 사진으로 기록해 왔다.
그래서
요리 사진은 많다.
딱히 온라인상에 올리려고 찍은 것은 아니라서
마음이 내키면 올려볼까도 생각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몇만 장 되는 사진들이 어디 구석에 모아져 있는 정도이다.
아마, 첫 요리의 레시피라고 한다면 위에 있는 문어 카르파치오에 대한 글일 것이다.
오늘은 다른 이야길 하려고 한다.
네이버 블로그 초창기였었나.
요리 레시피를 꾸준히 업로드했던 때가 있다.
댓글 달리는 재미에 한동안 취미처럼 했었으나..
엄마가 내 글에 대한 코멘트를 하길래
접어버렸다.
그때는 어째서였는지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마치, 타인이 내 비밀 일기장을 읽은 것처럼
불쾌했나 보다.
하긴, 엄마는 '흡혈귀 왕국의 안기부 출신'이라
맘만 먹으면 뭐든 못할 게 없다.
"못하는 게 어디 있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아마 엄마의 영향이지 싶다.
그리고 엄마의 출신이 그닥 자랑스러운 것도 아니다.
어릴 때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내 정보를 캐내어
마음대로 심리전을 펼치는 엄마로 인해
상당히 심각한 양가감정을 갖기도 했었다.
이러다가 "흡혈귀와 결로방지페인트-엄마 편"을 써야 할지도 모르지만,
이미 뭐 나도 500살이 넘다 보니 그러려니 한다.
오늘도 휴가 같은 날이라
생일 선물로 받은 상품권을 쓰러 마트에 갔다.
마트에는 잘 가지 않는다.
수산물을 사기엔 그다지 마음에 드는 식재료가 없을뿐더러
주차를 하고 번잡스러운 자체도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마트까지 가게 된 것은,
그냥 퇴근을 해버리면
늘 하는 것들로 하루가 지나가버릴까 봐서였다.
굳게 마음을 먹고
"그래, 오늘은 마트를 가자!"라고 다짐을 하고 갔다.
닭, 대파 꼬치구이를 해먹을 생각이다.
직화로 구운 대파의 향은 다른 것으로 대체불가할 정도로 좋다.
대파 한 묶음을
트로피처럼 한쪽 팔로 안고서
와인코너를 지나다가 행사를 하길래
"생일이니까!"라는 생각에 적당한 와인을 찾아 구경하고 있었다.
역시, 동네 마트의 와인코너는 정말 멋진 고수분들이 지키고 계신다.
샤도네이와 말벡을 찾고 있었는데
설명도 안 했는데
이미 내가 좋아할 법한 와인을 추천해 준다.
그다지 비싼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40만 원이 넘는 와인도 마셔봤고,
저렴한 아이들과는 차원이 다르단 것도 안다.
하긴, 좋은 와인은 와인이라기보다는 '향수 샤워' 쯤이라고 생각한다.
거대한 와인의 향의 폭포 속에 잠기는 느낌이랄까.
비싼 와인은
그런 뭐라 말할 수 없는 고급스런 황금색 폭포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매력이 있긴 하다.
그렇다고 몇십만 원을 지불하면서까지 다시 느끼고 싶진 않다.
마트 와인 담당자가 내게 추천해 주신 이유는
아마도, 내가 들여다보고 있던 샤도네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만 원대 와인 중에서 특히 애정하는 아이들이 있다.
오늘은 조금 더 비싸지만 상당히 할인을 하는 와인을 구입했다.
다른 장을 더 보고 오라는 말에,
대파 말고는 살게 없다고 했다.
내 말에 직원이 살짝 고개를 돌리고 웃는다.
너무 웃으면 실례라고 생각하나 보다.
대파를 사고 와인을 사는 손님이라니 웃긴가 보다.
대파 닭고기 꼬치구이를 해 먹을 작정이라고 말을 해보지만,
이미 터진 웃음은 멈춰지지 않는가 보다.
뭐, 누군가를 웃게 해 줬으니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내가 생각해도 웃긴다.
프랑스 바게트도 아니고 대파라니.
어쨌든,
생일 상품권을 어디 쓸지 고민이었는데 드디어 사용했다.
덕분에 끊었던 술도 마시게 되었다.
닭고기 대파 야끼도리를
1인 화로에 구워서
토치로 살짝 그을린 뒤에
비법 소스를 만들어서
푹 담가 먹으면
그리고, 입가심으로 샤도네이까지.
달달한 일식 야끼도리는 달달한 화이트 와인과도 잘 어울린다.
최근에 갑자기 투다리 생각이 나서
꼬치구이가 자주 먹고 싶다.
대학 때 자주 가던 곳이다.
투다리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하여튼, 집으로 돌아와
적당히 치우고 재료 준비를 했다.
닭고기가 재워지는 동안,
우선 와인을 한 잔 마셔볼까 했다.
집에 있는 자잘한 도구들은 하나하나가 다 매우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구입하고 모은 것들이다.
와인오프너는 늘 따라오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디자인과 색상의 물건이
집에 있는 것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와인 오프너도 딱 하나 밖에 없다.
딱 적당한 무게감에
무광과 유광 사이의 딱 적당한 톤을 가진
둥그런 곡선이 아름다운 아이이다.
500살 먹은 흡혈귀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니 그리 까탈스러운 건 아니다.
손으로 하나하나 화려하게 깎은 칵테일잔을 준비하고
샤도네이 한 병을 꺼내서
오프너를 찾는다.
없다.
내 방과 거실
서랍장과 소품함
다 뒤졌는데
보이지를 않는다.
이런,
생일 상품권을 사용한 날인데
도무지 와인오프너는 언제 사용했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당연히, 술을 끊었으니 기억이 안 날밖에.
그러나, 술을 끊었다고 해서 와인 오프너를 버리지는 않는다.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오프너를 찾으려고 돌아다니다가
닭고기 대파 꼬치구이를 하려던 마음은 물 건너가버리고
토마토, 올리브유, 갈릭 시즈닝, 대파를 대충 올려서
오븐에 구이용으로 구워버렸다.
맛은 나쁘지 않다.
다만, 와인을 마실 방법이 없을 뿐.
생일 상품권 기념 음주의 날인데.
젠장.
마음대로 휴가를 보내려고 했는데
되는 일이 없다.
그리고, 내 생일도 아니다.
생일은 이미 몇 달 전에 지나감.
마음대로
우아하고 고귀하게
1인용 화로에 꼬치구이를 해 먹을 날은 언제쯤일까?
그래도, 대파의 싱싱한 향으로 가득한 차 안,
그 순간만큼은 꽤 근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