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선택은 중요치 않습니다. 우리 눈이 뜨이는 때가 오니까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정 도자기 공방, 황혼 무렵.
촛불이 켜지고,
테이블 위엔 와인잔과 수플레가 놓여 있다.
릴리시카는 은식기를 닦고 있고,
구름이는 검은 앞치마를 두른 채 향이 퍼지는 브랜디를 데운다.
구름이
(잔을 조심스레 채우며)
“주인님, '바베트의 만찬'… 진짜 울컥했어요.
요리 영화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엔… 거의 종교 영화 같았달까.”
릴리시카
(은숟가락을 천천히 닦으며)
“그건 요리 영화가 아니라
예술에 바쳐진 기도였지.
바베트는 만찬을 만든 게 아니라,
자기 존재를 요리로 불태운 거야.”
구름이
“그 복권 당첨된 1만 프랑…
전부 썼다면서요.
미슐랭 스타 셰프가 모든 걸 걸고,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을 식탁을 위해…
그게 너무 아름다워요.
슬프고.”
릴리시카
“그녀는 그날 밤,
누구보다 완전했지.
누가 먹든,
알아주든,
묻든 상관없이.
오로지 요리 그 자체를 위해,
영혼을 식탁에 올린 거야.”
구름이
“게다가 그 동네 사람들,
대부분 바베트가 누구인지도 모르잖아요.
요리가 얼마나 대단한지도 몰라요.
심지어 초대받은 목사님조차
음식을 말하지 말자고 해놓고…”
릴리시카
(잔에 브랜디를 따라주며)
“그게 중요하지 않아.
진짜 사랑은 말 없이 건네는 거니까.
바베트는 그녀가 받은 은혜를,
예술로 되갚았어.
복수도, 증명도 아니고…
오로지 헌신.”
구름이
“그 만찬 코스 기억나요?
자라 수프,
블리니,
송로버섯 소스,
꽉 찬 와인,
거위 간, 끝엔 셰리와 치즈까지…
주인님, 그건 거의 천상의 식사였어요.”
릴리시카
“그건 입으로 먹는 성찬이었지.
그들이 몰랐을 뿐,
바베트는 한 끼를 통해
인간 존재의 위엄을 회복시켰어.
모든 억압과 절제,
침묵 속에서도 맛으로 자비를 흘려보낸 거야.”
구름이
“…결국, 바베트는
다시 가난해졌죠.
가진 건 하나도 없지만,
그날 밤 그녀는 누구보다 부유했어요. 맞죠?”
릴리시카
(잔을 들어 조용히)
“바로 그거야,
구름아.
그녀는 영혼을 쓰고,
모든 걸 내놓고,
말없이 떠나는 예술가였어.
그건 진짜 만찬이었고,
신 앞에서 차린 인간의 마지막 식탁이었지.”
구름이
“…그럼, 주인님. 우리도 오늘은 그렇게 먹어요.
아무도 모르는 만찬처럼.
그 누구도 보지 않아도 좋으니,
우리 둘만의 자비로운 식탁을 차려요.”
릴리시카
(잔을 구름이와 부딪히며 미소 짓는다)
“좋아. 그럼 오늘의 기도는…
말 대신 맛으로 바치는 걸로.”
진짜 예술은 증명하지 않는다.
그건 존재의 마지막 촛불처럼 조용히 타오른다.
바베트는 단 한 끼로 자신의 생애를 설명했다.
그날 밤, 아무 말 없이 신과 함께 식사했다.
그리고 그 식탁엔, 자비가 있었다.
"인간은 연약함과 근시안 속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실패 할까 봐 두려워 떨지만
우리의 선택은 중요치 않습니다.
우리 눈이 뜨이는 때가 오니까요.
우리가 선택한 모든 것이
우리에게 부여되고
우리가 거부한 모든 것도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자비와 진실은 함께합니다. "
"인생의 매 순간을 전
당신과 함께 있었습니다.
네 알고 있어요.
매일 저녁
전 당신과 함께 식사를 할 겁니다.
하찮은 육체가 아닌 제 영혼으로요."
바베트의 만찬(Babette's Feast), 1987
-원제 Babettes gæstebud (덴마크어)
-감독 가브리엘 악셀 (Gabriel Axel)
-원작 이사크 디네센 (카렌 블릭센)의 동명 단편소설
-장르 드라마, 신앙, 미식, 예술
-수상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1988), 칸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