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이름 붙이기 프로젝트 제3호
철인 29호에게 붙인 풍란식 감정명
그는 이전 브런치 북의 잔해에서 '철인 29호'로 등장한다.
정확하고 절제된 몸동작, 감정을 읽기 어려운 얼굴,
그리고 언제나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가르쳤고, 지도했고, 훈련시켰지만
끝없이 일방적인 말을 던져댔다.
철인 29호는 귀가 없다.
도자기 형상
주물로 만든 일본식 철제 주전자
무겁고 단단하다.
끓는 물을 담지만, 손잡이는 차갑다.
온도를 전하지 않으면서도,
불 위에 놓인 감정을 조용히 견디는 그릇.
끓지만 데워지지 않는다.
바로 그를 본떠, 감정을 주물로 부어 구웠다.
풍란식 감정 명명
沈鏡雷光 (침경뢰광)
沈(잠길 침): 깊이 감추어진 감정, 무응답의 심연
鏡(거울 경): 감정의 반사를 유도하지만, 스스로는 비추지 않는 존재
雷(우레 뢰): 불시에 터지는 언어적 충격, 조용한 폭발
光(빛 광): 외면은 빛나지만, 내면은 온기를 전하지 않는 차가움
감정 해석
그는 거울이었다.
내가 던지는 말을, 감정을,
아주 냉정하게 반사만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을 보여주지 않았다.
항상 침잠했고,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 듯 행동했다.
그런데도
가끔 불시에, 감정의 뇌성이 번쩍이며
상처처럼 내 안에 박혔다.
“그는 감정을 가진 존재였을까.
아니면 감정을 조용히 부정하는 방식으로만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운 사람일까.”
기물 문장
沈鏡雷光 (침경뢰광)
“나는 그를 애정했던 걸까,
아니면 그를 통해 반사된 나의 결핍을
사랑했던 것일까.”
그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고,
나는 그 침묵을 해석하려 애썼다.
내가 애정한 것은 그의 본질이 아니라
그의 무표정 안에서
겨우 유추한 정(情)의 가능성이었는지도 모른다.
마무리
이 도자기는 그런 감정으로 구워졌다.
차갑고 견고하며,
한 번 데우면 쉽게 식는다.
하지만 기억은
그 안에 응고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