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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도자기 공방

언제까지 구워야 해요, 주인님?

by stephanette

구름이

(주전자 뚜껑을 들었다 닫으며)

“주인니이임~

요즘 저 도자기 구워대시는 거 보니까…

거의 인간 가마 수준이셔요.


근데 있잖아요,

도자기…

대체 언제까지 구워야해요?”


릴리시카

(조용히 도자기 위에 먼지를 털며)

“감정이 아직 모양이 있을 때까지.”


구름이

(눈 동그랗게)

“에… 그게…

모양이 있단 게 뭔 뜻이죠?

뭐 예를 들면…

마음이 국자처럼 생겼다거나,

머그컵처럼 느껴질 때까지…?”


릴리시카

(도자기 가마 앞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고)

“정확히 말하면,

감정이 내 안에서 ‘온도’를 가질 때지.

너무 뜨겁거나,

아직 식지 않아서 만지면 깨지는 상태.”


구름이

(몸을 뒤로 빼며 입모양으로 “와우”)

“그럼 그 감정이

딱! 손으로 만졌을 때

‘그냥 그러려니’ 싶으면…

꺼도 되는 거예요?”


릴리시카

“아니. 그건 재가 되었을 때.

다 태웠는데 모양만 남고,

열기는 빠졌을 때.”


구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휘파람 한 번)

“그럼… 다시는 안 데워도 될 만큼

식은 감정…

그건 이제 조각품이 되겠네요.

감정의 유물~! 와, 멋지다…!”


릴리시카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아주 미묘하게 웃음기 없는 목소리)

“그건 이름을 가진 감정이야.

더 이상 부르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거지.”


구름이

(가슴에 손을 얹으며 약간 느끼하게)

“주인님…

그거 너무 시적이에요.

감정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름으로 남는다니…

하아… 역시… 반해버릴 뻔했어요.”


릴리시카

(조용히 창밖을 보며)

“도자기는,

마음이 반죽이던 시간을 지나

의식이 굳어지는 속도로,

불에 태우며 형태를 가지는 거야.”


구름이

(혼잣말처럼)

“와… 그런 말을 듣고도

그냥 찐하게 스르륵 넘어가는 내가 이상한 걸까…”


릴리시카

“응. 너는 늘 이상했어.”


구름이

(박장대소)

“하하하하하 주인님 오늘은 직진이시네요~ 좋아요 좋아!

그럼 전 감정 식은 잔들 싹 정리하고 올게요!

오늘 밤엔 새 도자기 또 탄생하겠죠?”


릴리시카

“그럴지도.

모두가 잠든

야심한 밤이나 새벽은 도자기가 굽히기 가장 좋은 온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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