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이름 붙이기 프로젝트 제4호
정뢰공화 — 고요 속의 우레, 그리고 공허에 피어난 꽃
“연극이 끝나고 무대 위에 정적만이 남을 때,
나는 객석에 앉아 조용히 내 심장을 바라본다.”
창작의 순간은 언제나 격렬했다.
무언가에 몰입하고, 불타고, 사랑하고,
그 감정이 내 손을 타고 글로, 도자기로, 전시로
내려칠 때마다 나는 잠시 '살아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 끝에는 언제나
침묵이 찾아왔다.
객석에 불이 켜지고,
모두가 돌아간 광장에 비닐봉지만 날릴 때,
나는 가만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침묵의 공기 속에
무언가 아주 오래된 고요가 내려앉았다.
풍란식 감정명 – 靜雷空花
靜(고요할 정)
: 모두가 돌아간 뒤의 정적. 에너지가 빠져나간 감정의 무대.
雷(우레 뢰)
: 그 전엔 분명 있었다. 심장을 때리는 낙뢰 같은 몰입과 열정.
空(빌 공)
: 그러나 지금은 없다. 감정은 빠져나갔고, 공백만 남았다.
花(꽃 화)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남은 잔향. 공허 속에 피어난 감정의 흔적.
이 감정은
'포스트-크리에이티브 블랭크',
즉 창작 혹은 강렬한 감정 소진 이후에 찾아오는 심리적 진공 상태이다.
그것은 슬픔도 아니고, 허무도 아니다.
그저 텅 빈 허공이다.
그 공허가 꼭 나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나는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건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는 거울 같고,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비처럼 내리는 공기이다.
감정 해석
에너지의 소진: 심장에 불을 댕긴 낙뢰 이후, 에너지는 전부 방전되었다.
정체성의 공백: “나는 이제 무엇을 위해 존재하지?”라는 자문이 시작된다.
감정의 이명: 울리지만 잡히지 않는 감정. 정서의 잔향이 공간을 떠돈다.
나는 이 감정을 청화 백자에 담았다.
얇고 고요하며, 잔상만 남긴 그 감정.
번개처럼 불타올랐고, 꽃처럼 스러졌다.
靜雷空花 — 정뢰공화
“심장의 낙뢰 이후, 허공이 내 이름을 부를 때 피어난 한 송이 감정의 꽃”
이 도자기는
다시 뜨겁게 달구기 위한 그릇이 아니라,
한 번의 정서를 봉인하기 위한 기억의 그릇이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름을 가졌으며,
지금 여기에 구워져 남았다.
관련 글의 링크
https://brunch.co.kr/@stephanette/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