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지의 비극, 왜 민주주의는 쇄락의 길로 가게 되는가
공유지의 비극, 민주주의의 비극
언젠가부터 세상은 "내 것"을 위해 움직였다.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이익, 더 많은 권리. 우리는 그것을 개인의 성취라고 불렀고, 그것을 위해 싸웠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과연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었는가?
1968년 생물학자 개릿 하딘은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한 마을의 목초지가 아무의 것도 아니고 모두의 것일 때, 사람들은 자기 가축을 더 풀어놓고 싶어 한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하면 풀은 금세 고갈된다. 결국 모두가 손해를 보게 된다.
이 단순한 원리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마이클 샌델의 경고: 개인주의가 민주주의를 망친다
샌델은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에서 현대 민주주의가 시장 논리에 지나치게 잠식되었다고 비판한다. 사람들은 ‘나의 자유’를 외치지만, 정작 ‘우리의 가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시장의 효율이 공동체의 윤리를 대체한 사회에서, 공공선은 점점 쇠락한다. 모두가 자기 몫만 챙기다 결국 민주주의라는 공유지가 황폐해지는 것이다.
공동체 없는 자유는 독이 된다
민주주의는 오직 제도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토대 위에 세워진다. 하지만 우리는 그 책임 대신, 권리와 효율과 경쟁만을 말해왔다. 결국 우리 모두는 "자유를 남용하는 가축"이 되어, 민주주의라는 들판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리더십은 어디로 갔는가
공유지의 비극을 막으려면 조율자가 필요하다. 공동선을 위해 개인의 탐욕을 설득하고, 조율할 수 있는 리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뽑은 지도자들은 점점 더 사익에 충실하고, 공동체보다는 지지 기반의 이익을 대변한다. 결국 리더조차 공유지의 고갈을 부추기는 구조에 편입된다.
우리는 다시 ‘우리’여야 한다
해결책은 단순하다. 그러나 어렵다. 우리는 다시 "우리"를 말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를 넘어, 공동의 윤리와 가치, 공공선을 회복해야 한다. 시장이 아닌, 도덕과 연대의 언어로 민주주의를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스스로의 손으로 민주주의의 마지막 잔디를 짓밟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