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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혼자가 아니다

사회적 뇌, 유동적 의식, 그리고 ‘정상’이라는 허상에 대하여

by stephanette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Seven and a Half Lessons About the Brain)', 리사 펠드먼 배럿을 읽고


우리의 뇌는 혼자 살아남을 수 없었다.

뇌는 언제나 다른 뇌와 연결되는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아이의 뇌는 엄마의 눈빛과 목소리, 피부의 온도로 배선되고

사랑받은 방식에 따라 감정의 회로가 형성되며

이 세상이 안전한지, 위협적인지,

내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해석한다.


뇌는 사회적 동물로 설계된 기관이다.

지극히 생물학적으로 말이다.


나의 뇌는 너의 뇌와 연결되어 있다

현대 뇌과학은 이제 더 이상 뇌를 ‘개별적인 사고 기계’로 보지 않는다.

Social Brain Theory, 사회적 뇌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온전히 기능한다.

공감은 감정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애착은 선택이 아니라 발달 조건이다.

우리는 서로의 표정, 말투, 눈빛, 리듬을 통해

뇌와 뇌 사이의 미세한 진동을 주고받는다.

그렇다면 나의 감정, 반응, 성격조차도

타인과 맺은 관계 속에서 ‘조율된 결과’일 수 있다.

혼자 만든 내가 아니라, 함께 구성된 나인 것이다.


뇌는 다시 쓴다 – Neuroplasticity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반응을 만든다 해도

뇌는 그것에 갇히지 않는다.

Neuroplasticity, 뇌의 가소성.

뇌는 경험에 따라 계속해서 자신을 다시 배선한다.

그래서 우리는 배울 수 있다.

새로운 감정 반응, 더 넓은 공감력, 더 건강한 애착.

과거가 나를 만들었지만,

미래는 나를 다시 빚을 수 있다.


의식은 흐른다 – Dynamic Consciousness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고정된 ‘나’의 느낌을 준다.

하지만 지금 뇌과학은 말한다.

의식은 하나의 스냅샷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감각-예측-반응의 흐름이다.

즉, ‘나’는 순간순간 다르게 존재하고,

뇌-몸-환경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현장의 리듬이다.

그래서 지금 나의 공포는 어제의 그것과 다르고,

지금 나의 기쁨은 내가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의식은 고정된 자아가 아니라, 맥락적이고 유동적인 움직임이다.


정상 뇌는 없다 – Neurodiversity

우리는 묻는다.

“왜 너는 그렇게 예민해?”

“왜 집중을 못 해?”

“왜 그게 어렵니?”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안다.

‘표준 뇌’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폐, ADHD, 고감각 성향, 언어 지연…

이들은 고장난 뇌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뇌다.

Neurodiversity, 신경다양성.

이제 우리는 그들을 ‘수용해야 한다’는 도덕적 명제가 아니라,

그들의 뇌도 진화적으로 타당한 구성물이라는 과학적 근거 위에서 말한다.


그래서 이제는, 나를 다시 말하고 싶다

나의 뇌는 혼자가 아니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 나를 괴롭히는 반응,

내가 이해받고 싶은 갈망조차도

모두 연결된 뇌가 만든 생존의 서사였다.

그러니 나는 감히 말해본다.

나를 바꾸는 일이 가능하다면,

그건 나를 이해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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