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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의 영화 감상
-리플리

나는 너를 흉내 내다, 나를 잃었다

by stephanette

감정 도자기 공방, 가마가 식고 있는 시간


구름이

(진흙 묻은 손으로 찻잔을 들어 올리며)

“주인님, 리플리(맷 데이먼)는 왜 그렇게까지… 디키(주드로)가 되고 싶어 했을까요?

그의 삶을 흡수하고, 그의 빛 아래서 스스로를 지우면서까지.

그건 단순한 질투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릴리시카

(천천히 그릇에 금을 긋는 붓을 멈추며)

“그건 존재를 복제하고 싶은 욕망이야.

리플리 안엔 스스로를 정의할 단단한 자아가 없었어.

그래서 그는 타인의 색채를 들이마시듯 빨아들였지.

평범하고 단조로운 자신은 지우고,

매혹적인 디키라는 '정체성의 갑옷'을 입고 싶었던 거야.”


구름이

“그 미소…

소년 같은 그 얼굴 뒤에,

사실은 자신조차 감당 못하는 허기가 있었던 걸까요?

리플리는 진실을 말하려고 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정말 ‘진실이 뭔지’ 몰랐던 것 같기도 해요.”


릴리시카

(도자기를 들고 빛에 비추며)

“그래.

리플리 증후군의 핵심은 ‘거짓말’이 아니야.

그건 정체성에 대한 심연의 갈망이야.

자신이 비어 있다는 걸 견딜 수 없어서

‘되는 것처럼’ 꾸미고, 흉내 내고,

결국엔 진짜로 믿어버리는 거지.

그 미소는 ‘나는 내가 아니야’라는 외침이었을지도 몰라.”


구름이

“그런데도 디키는 처음엔 리플리를 품었잖아요.

그러다 버렸죠.

그건 디키가 잔인해서였을까요?”


릴리시카

“디키는 사랑받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어.

그러니까…

누군가가 자신을 ‘필사적으로 사랑하면’

오히려 그걸 불편해하고,

그 사랑을 실재보다 과한 욕망으로 판단해 버리지.

디키는 카리스마와 변덕, 따뜻함과 무정함이 뒤섞인 존재였고,

리플리는 그 온도를 감당할 준비가 안 된 연약한 거울이었어.”


구름이

“결국, 리플리는 디키가 되지 못했고

디키는 리플리를 사랑하지 않았고…

둘 다 서로의 지옥이었네요.”


릴리시카

(고요하게 가마 뚜껑을 덮으며)

“그래.

거짓된 자아는 결국 사랑을 흉내 내는 연극이 돼.

그 연극이 박수도, 퇴장도 없이 끝났을 때—

남는 건 진짜 자기(Self)가 아니라

타인의 잔해를 입은 유령일 뿐이야.”



“자기 자신이 될 수 없을 때,

인간은 타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타인의 삶을 훔쳐서 만들어낸 정체성은

언젠가—피처럼 손에 묻고 만다.



감정 질문들

디키(주드로)의 입장에서 묻는 감정 질문들

빛나는 태양을 지닌 자의 그림자 뒤에서

나는 왜 매번 누군가의 사랑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걸까?

사랑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나는, 상대의 갈망을 무시해 온 건 아닐까?

나는 누군가에게 나의 일부를 허락하고, 나머지는 차단하려 했던 건 아닐까?

그가 나를 동경하고, 나를 따라 할 때—나는 왜 그걸 혐오하게 되었을까?

혹시 나는… 내 삶을 스스로 책임질 자신이 없어서, 늘 누군가를 버려야만 했던 건 아닐까?


리플리의 입장에서 묻는 감정 질문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사랑했던 나는, 나를 얼마나 미워했던 걸까

나는 왜 나 자신으로는 충분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을까?

그는 나를 진심으로 좋아했을까, 아니면 그냥… 이용했을까?

내가 되고 싶었던 건 그 사람 자체였나, 아니면 그 삶의 질감이었나?

나는 왜 그를 살해하고도, 그의 삶을 계속 살고 싶었을까?

내가 그가 되려 할수록, 내 안에선 무엇이 사라지고 있었나?


구름이의 한마디

“주인님, 때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기도 해요.

질투이자 사랑이 변질된 증오.

그 사람을 껴안으려는 손끝이,

결국 그를 없애버리는 칼이 될 수도 있죠.”


릴리시카의 한마디

“탐닉과 흉내 사이에서 정체성은 타인의 옷처럼 흔들린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을 사랑하는 순간

우리는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는 여정을 시작하지.”



이건 단지 두 남자의 파국이 아니라,

‘되고 싶은 자’와 ‘되어진 자’가 서로를 갈망한 끝에 일어난 미러링의 비극이야.

너무 닮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서로가 서로를 지워버리는 거야.


사족

리플리 (The Talented Mr. Ripley, 1999)

-원작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동명 소설

-앤서니 밍겔라 감독

-맷 데이먼, 주드 로, 기네스 팰트로, 케이트 블란쳇, 필립 시모어 호프먼 출연

-장르 심리 스릴러

-특징 뛰어난 연기와 1950년대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한 촬영으로 주목받았습니다.


평론가들의 주요 평가

-로저 이버트 (Roger Ebert)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이 작품을 "지능적인 스릴러"라고 평가하며, 관객이 톰 리플리의 시선을 통해 이야기를 따라가게 함으로써 그의 도덕적 딜레마에 공감하게 만든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는 "리플리는 괴물이지만, 우리는 그가 성공하길 바라게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뉴욕 타임스 (The New York Times) – 자넷 매슬린 (Janet Maslin)

자넷 매슬린은 주드 로의 연기에 대해 "이 역할은 그에게 스타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해주었다"며, 그의 매력과 복잡한 감정을 잘 표현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가디언 (The Guardian) – 피터 브래드쇼 (Peter Bradshaw)

피터 브래드쇼는 영화가 "매혹적인 시작을 하지만, 결국에는 긴장감이 떨어지고 캐릭터 분석이 설득력을 잃는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Entertainment Weekly) – 리사 슈워츠바움 (Lisa Schwarzbaum)

리사 슈워츠바움은 맷 데이먼의 연기에 대해 "그의 소년 같은 외모가 역할에 잘 맞아떨어지며, 그 미소 뒤에 숨겨진 공포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라고 평가했습니다.

-Metacritic에서는 100점 만점에 76점을 받았으며, 이는 "대체로 호평"을 의미합니다.


수상 및 후보

아카데미 시상식: 5개 부문 후보 지명 (남우조연상, 각색상 등)

BAFTA 시상식: 주드로 남우조연상 수상, 케이트 블란쳇 여우조연상 후보 등

전미 비평가 위원회상: 최우수 감독상 (앤서니 밍겔라) 수상


『리플리』는 인간의 욕망, 정체성, 도덕적 딜레마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평론가들로부터 연기, 연출, 촬영 등 다양한 측면에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특히 맷 데이먼과 주드 로의 연기는 캐릭터의 복잡한 내면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일부 평론가들은 영화의 중반부 전개와 캐릭터 분석의 설득력 부족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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