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피보다 비싸다 - 재판을 복수로 쓰지 마라
직장에서 일이 심각해졌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 고소하세요.”
“법적으로 가야 정신 차리지.”
“변호사 선임해서 본때 보여줘야죠.”
그 말들은 달콤하다.
내가 겪은 모욕과 억울함을 “법”이라는 칼로 단죄할 수 있다는 믿음.
돈과 문서와 명분을 들이밀면,
그 사람의 얼굴에서 피가 사라질 것 같은 상상.
하지만 나는 그 장면을 여러 번 봤다.
진짜 피를 흘리는 건, 고소한 쪽이었다.
1. 법은 감정을 구제하지 않는다.
법은 논리와 증거 위에 선다.
변호사는 당신의 감정을 들어주는 상담사가 아니라,
이익이 되는 싸움에만 열심인 투자자다.
물어보면 말해준다.
“진행은 가능하죠. 그런데 실익은… 글쎄요.”
그러나 그는 소송장 하나 써주는 것만으로도 수백만 원을 번다.
그러니 소송을 추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루한 소송 끝에 결과가 나오고서도
승소를 하고도 돈을 못 받거나,
무고로 소송을 오히려 당하는 경우도 많다.
2. 이기기 어려운 싸움은, 더 많은 것을 잃는다.
법정은 연극 무대가 아니다.
패소할 가능성이 높은 소송은
금전적 손실뿐만 아니라,
당신의 직업적 신뢰, 대외 이미지, 내면의 존엄까지도 갉아먹는다.
진심이 무너질 때,
사람은 자기 정의감까지 의심하게 된다.
3. 소송은 복수의 기술이 아니다.
복수는 감정이다.
법은 구조다.
감정을 구조 안에 욱여넣는 순간, 가장 먼저 부서지는 건 감정이다.
정의감을 잃고, 현실을 잃고,
끝에는 “차라리 하지 말 걸…”이라는 말만 남는다.
나는 말하고 싶다.
법정은 복수극의 결말이 아니라,
실익을 따지는 냉정한 거래의 공간이라고.
직장에서의 정의는, 법정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의 정밀한 거리두기’로 실현되는 경우가 많다.
당신이 감정을 복수로 쓰지 않기로 결심한 그 순간,
이미 그 싸움의 90%는 이긴 것이다.
"흡혈귀는 피를 빨지만,
자신이 피를 흘리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사족
심각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감정적으로 상황을 과장하거나,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을 증거라고 생각하고 싶을 수 있다.
증거를 수집하고
관련 기구의 무료 상담이나
변호사 상담을 받는 과정에서
그것들을 냉정하게 분류해야 한다.
법적 전문가를 나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증거들을 과장할 때
그 심정이야 백배 이해는 가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스스로에게 돌아온다.
절차와 기준에 자신의 상황이 적합한지 확인하고
어떤 방법으로 진행되어 어떤 결과를 맞이하는지 판례들을 확인해서
법적 분쟁으로 가기 전에 충분히 이를 활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