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결국 '지능'이자 '훈련'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 적잖은 기대와 애정을 필요로 하며 자라난다. 그런데 그 시기에 “내가 원하는 게 중요하지 않아”라는 메시지를 받게 되면, 자기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까지도 함께 위축되기 쉽다. 이 글에서는 어린 시절 요구가 묵살된 경험이 어떻게 공감 능력을 차단하는지, 그리고 그 이후 우리가 성인이 되어 어떤 방식으로 공감의 문을 다시 열 수 있는지를 짚어보려 한다.
1. 공감 능력의 뿌리, ‘안전한 수용’
공감(empathy)은 단순히 상대의 감정에 함께 동요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인지적 공감(cognitive empathy), 즉 “저 사람은 왜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하고 논리적으로 상대의 마음 상태를 재구성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정서적 공감(emotional empathy), “나도 저 상황이라면 비슷한 기분이 들 것 같다”라는 감정 이입 단계까지 이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상대의 진짜 마음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런데 공감 능력 자체가 발달하려면, 어린 시절에 내가 느끼는 감정을 안전하게 수용해주는 경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예를 들어, 내가 슬프거나 화가 날 때 부모님이 “네 기분을 이해할게”라고 공감해 주었다면, 나는 자연스럽게 타인의 감정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그러나 그 경험이 차단된다면, 우리는 스스로 “내 감정은 중요하지 않구나”라는 감각을 내면화하게 된다. 이는 곧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가치 없는 일”이라고 믿는 뿌리가 된다.
2. “나는 중요하지 않다”라는 내면 메시지
어린 시절 내 요구가 반복적으로 묵살되거나 무시당하면, 우리는 무의식중에 다음과 같은 신념을 가지기 시작한다.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느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 신념은 곧바로 타인의 감정과 욕구에 대해서도 무관심한 태도로 이어진다.
상대가 슬퍼할 때 “왜 저렇게까지 울까?” 하고 멀리서 지켜보거나,
기쁜 소식을 전해도 “별거 아닌데 뭘 그렇게 기뻐해?”라는 식의 무심함으로 반응할 수도 있다.
결국 “나는 중요하지 않다”는 마음속 메아리가 공감을 막는 첫걸음이 된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돌봐준 경험이 부족하면, 타인 역시 마찬가지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게 되는 것이다.
3. 성인이 되어 마주하게 되는 공감의 문 닫힘
성인이 된 뒤에도 이 같은 내면 메시지는 행동과 관계 맺기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누군가 퇴근 후에 피곤해 어두운 표정을 짓더라도, 우리는 “저 사람은 왜 저렇게까지 힘들까”라며 무심히 지나치기 쉽다. 일상 속에서 타인의 감정 신호를 감지하지 못하거나, 감지하더라도 “나도 옛날에 무시당했는데”라는 이유로 거리를 두게 된다.
이렇게 되면 관계에서 중요한 소통 기회를 놓치게 된다.
친구가 고민을 털어놓을 때, 우리는 “그러게 왜 그런 걸 고민해”라며 속마음을 모르는 척 대꾸할 수 있고,
직장 동료가 실수로 자책할 때, 함께 감정을 나누기보다 “일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지”라며 빠른 해결책만 제시하며 대화를 끝낼 수 있다.
이처럼, 공감의 문이 닫혀 있으면 결국 서로를 이해하기보다는 ‘나와는 다른 존재’로 인식하게 되고, 부딪히거나 갈등이 생겼을 때 해결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진다.
4. 공감의 문을 다시 여는 전략
그렇다면, 어린 시절 요구가 묵살된 경험을 딛고 공감 능력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히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해 본다.
어린 시절 “네가 느끼는 대로 표현해도 괜찮아”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보세요.
“괜찮아, 네가 화나는 것도 이해해”라며 자기 연민(self-compassion)을 실천하면, 점차 “내 감정도 중요한 거였구나”라는 깨달음이 찾아옵니다.
누군가 표정이나 말투에 변화가 있을 때, 질문을 던져 본다.
“요즘 표정이 좀 어두운 것 같은데, 혹시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
이렇게 구체적인 관심을 보이면 상대도 “내가 무시당하는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을 덜 수 있고, 나아가 상대의 내면 상태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려는 연습이 된다.
“혹시 네가 지금 이렇게 느끼는 건 맞을까?” 하고 물어보자.
내 해석이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바로 인지적 공감의 본질이다. 틀렸다면 고칠 수 있고, 맞았다면 상대는 ‘내 마음을 진짜 알아주려고 노력하구나’ 하고 느낀다.
책, 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낯선 인생 이야기들을 접해 보자.
“만약 내가 그 사람의 상황이라면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를 생각하는 버릇을 들이면, 실제로 주변 사람을 마주했을 때도 자연스럽게 그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다.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나는 감정이 메말랐어”라고 단정 지을 필요는 없다. 공감은 뇌 속에서 작동하는 복합적인 ‘인지 과정’이기 때문에, 훈련과 연습을 통해 얼마든지 확장해 나갈 수 있다.
어린 시절 무시당했던 감정이 공감의 문을 닫았다면,
성인이 된 지금부터라도 “내 감정을 수용”하고 “타인의 마음 상태를 분석”하는 연습을 시작해 보자.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의 슬픔과 기쁨을 포착하고, 진정한 의미의 이해와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어렸을 때의 상처 때문에 공감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낙인 대신,
마무리 말
우리가 성장하며 지나온 길이 어떠했든, 지금 이 순간에도 다시 공감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능력은 남아 있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우리를 가둘 수는 있지만, 스스로 그 문을 열어 주지 않는 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오늘 한 번, 가벼운 호기심과 따뜻한 연민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의 내면을 살펴보면 어떨까? 분명 당신의 관계와 마음속에도 작은 변화의 빛이 스며들 것이다.
“공감은 감정이 아니라 지능이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단순히 함께 울고 웃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으로 상대의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이해하는
지혜로운 사고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