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을 좋아하는 이유

현실에서 이론을 체득하고, 다시 삶에 적용하는 방법

by stephanette

어릴때, 장정일을 좋아했었다. 헌책방에서 문학비평을 읽고 작가가 되었다는 그의 말에 설레였기 때문이다.

그의 책 중에서 독후감을 묶은 책을 가장 좋아했었다. 그 이후로 비평 읽는 것을 즐긴다. 취미 중 하나이다. 나는 문학이나 영화 보다 비평을 읽는 것을 더 좋아한다. 사실,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것은 비평을 읽기 위한 부차적인 수단이다. 비평을 '찾아내고', '읽는 과정'이야말로 그 중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이다. 그리고 나서 다시 문학이나 영화를 감상하기도 한다.


어째서 나는 비평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보았다.


1. 새로운 안경 획득

비평은 새로운 색상의 안경을 끼워준다. 그 것을 끼고 원작을 재감상하면 전혀 다른 깊이를 느낄 수 있다.


2. 이론에 생명 불어넣기

사회과학책이나 인문학 책을 통해 이론을 알 수 있다. 문학이나 예술, 영화 등을 통해서는 구체적인 삶에서 그 이론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체득할 수 있다.


3.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기

비평에서 다루어진 개념과 관련된 이론이나 학자들에 대해서 찾아보는 것도 재미난 부분 중 하나이다. 어째서 그런 이론을 만들게 되었는지, 그 학자들은 어떤 삶을 살았고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 그 사회적 배경은 무엇인지를 찾아보는 것은 마치 다른 생을 하나 더 살고 있는 기분을 선사한다.


4. 내 삶에 비평을 써보기

비평가의 해석을 읽으면서 그 비평가의 깊이를 동경한다. 그래서 그의 사유의 궤적을 쫒아가고 그를 통해 나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하나 더 배우게 된다. 그리고 이를 내 삶과 주변 형상을 바라볼 때에도 적용하게 된다. 단순히 보이는 것만 보지 않고, 어떤 맥락과 의도가 깔려있는지 질문하게 하는 훈련이 된다.


세상에 수많은 비평들이 있음에 매우 감사하다.

"우와~ 이건 대체 어떻게 생각해낸거지?"하며 신나게 놀 수 있게 해주어서.


참, 그리고 비평을 읽는 것은 원작의 완성도와는 별로 상관없는 일일수 있다. 비평가 신형철의 강연 중 이 부분에 매우 공감한다. 나에게 의미를 가져다 준 영화가 반드시 흥행에 성공하지는 않을테니까.


사족

아래는 신형철 문학비평가가 비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강연한 내용이다.

비평이라는 작업의 본질은

작품으로부터 배울게 있다고 믿는 사람이

뭔가를 기어코 배우고야 마는 일이다.

어떤 인식을 생산해내는 작업으로서 작품과 함께 대화를 하는 것이다

어떤 완결된 인식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은

사회과학책을 보거나 인문학책을 보거나 하면은 배울 수 있다.

근데 비평을 한다는 사람들은

매우 비생산적인 방식으로 그 결론에 도달하는 사람들이다.


작품을 보고서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려고 하는 것이다.

근데 그거는 아주 작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것이어도

이 영화에만 존재하는 어떤 인식이 있다

그렇게 믿고 들어와서 그걸 찾아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안 그러면 이 작품을 섬길 이유가 없다


최종적인 목표는

이 작품과 함께 내가 어떤 인식에 도달하느냐 거기에 있는데

그냥 이 작품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그런 일은 그것과는 좀 다른 일이다.



김혜리 기자의 월간오디오매거진 조용한 생활 팟캐스트 중

https://youtu.be/hAgN5tnVUY4?si=VwJoiu2Npu1Wfs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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