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고민하는 너에게_결혼 전 생각해보면 좋을 것들
특별해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사전적인 의미로는 보통과 구별되게 다르다가 특별하다의 의미이다.
비슷한 말로는 특이하다라는 말이 있다.
특이하다는 보통 것이나 보통 상태에 비하여 두드러지게 다르다, 보통보다 훨씬 뛰어나다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어들을 우리의 삶의 차원으로 가지고 온다면,
이 추상적인 단어들은 어떻게 구현되는 것일까?
어린시절의 나는 매우 특별해지고 싶었다
지금도 특별해지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구체적으로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남들과 다른 대접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어디에서나 내가 더 사랑받아야 하고, 모두가 나에게만 관심을 갖기를 바랐었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그것이 가능했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는 시간은 한정적이었고,
또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도 한정적이었다.
시장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인사하는 그 시간만 만나는 사람들이었고,
주변에 눈 돌릴 틈 없이 그 분들에게 예쁘다고 칭찬받는 그 순간이
오로지 그분들과 나와의 관계의 전부였다.
그러므로 나는 그 순간 온전히 관심받고 사랑받았다.
그 외의 그분들의 시간들, 그분들과 타인과의 관계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가족들의 경우 당시 집안에 어린 아이가 나 하나였으니
모두의 관심이 나에게 쏟아졌다.
물론, 지금은 집안 어른들이 나 말고도
얼마나 많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었는지 알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눈뜨고 있는 동안 나와 눈을 마주치는 사람이
타인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고 오로지 나에게만 관심을 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내가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내가 존재하고 있는 공간과 시간에서 온전히 나만 관심을 받는 것이 어려웠다.
사실 힘든 일이기도 하다.
모두 취향이 다르고 관심사가 다르고 살아온 경험이 다른데
어떻게 한 공간과 시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에게 관심을 집중한다는 말인가?
정말 남들과 달라서 혹은 남들보다 월등하게 뛰어나지 않으면 관심을 받을 수 없었다.
나는 점점 불행해졌다
누군가의 관심을 받기 위해 나는 늘 누군가’보다’ 무언가를 ‘잘’ 해야 했다.
다행인 것은 누군가보다 무언가를 못하거나 부정적인 행동을 취해서
관심을 받을 생각은 안했다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누군가’보다’ 잘해야 되는 순간 순간이 모여 나의 삶을 만들어 갔고,
이것은 누구보다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 근본적으로 나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단 한 순간도 나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누구’보다’ 잘해야 했기 때문에 어떤 순간에나 나는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가 내가 누구’보다’ 잘해야 하는 것을 알아줘야 했기에
나의 시간과 공간에는 늘 최소 나 이외의 두명의 누군가가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록 나는 더 불행해졌다.
나는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 없었고, 살다 보니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은 너무 많았다.
그렇게 비교가 되는 순간 나는 매번 평범해졌다.
나는 늘 나의 존재를 누군가와 비교했다
그리고 사실 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사람들을 경쟁상대로 보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혹은 부족한 점을 이야기하면,
그냥 이야기하는 것인데도 나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사람들을 그렇게 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삶이 즐거울 리가 없었다.
늘 스스로를 타인과 비교해야 했고, 어느 한 순간도 스스로 특별하다고 느낄 수가 없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삶이 정말 불행했다.
삶이 불행할 요소는 매우 많지만, 반대로 생각해서 이 불해의 요소를 제거하거나 해결하면,
삶이 행복해질 요소도 매우 많은 것이다.
나는 내 삶의 행복을 위해 내 삶의 불행의 요소를 살펴보았다.
나의 불행의 큰 요소는 ‘평범하고 싶지 않아, 절대 다수에게 사랑받고 싶어.’ 였다.
그러던 중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다가 특별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절망감을 느꼈다.
프레디 머큐리가 불러모은 관중들, 그 모든 관중을 앞에서 자신의 일을 훌륭하게 해내는 퀸.
나는 아마 저 관중들 중 한 명이었을 것이고, 현재에도 관중으로 참여하는 행사가 더 많다.
문득,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두려워졌다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살고 있는 내가 한심해졌다.
세상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겠다는 나의 포부도 우습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매우 절망스러웠다.
특별한 일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거지.
혹시 나는 깜냥도 되지 않는데 특별한 일을 해보겠다고, 특별해지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왜 내가 특별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 나는 왜 내 주제를 몰랐을까?
나는 왜 내 주제도 모르고 이렇게 호기를 부렸을까?
다행히도 그러한 정신적인 공황상태를 잘 넘길 수 있을 정도의 건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았다.
그냥 보통의 나를 인정하기로 하고, 특별해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루 하루 해 나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주팔자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다.
내 사주가 특별한 사주이건, 평범한 사주이건, 그건 바뀌지도 않을 뿐더러 그 사주를 안들 무엇하리오.
사주를 안다고 좋아하는 일을 버릴 것도 아니고, 싫어하는 일을 쉽게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하루 하루 살면서 경험과 생각을 통해 사고가 넓어지면
그 때에 무엇인가를 받아들이고 버리게 되겠지.
나는 나의 평범함을 인정하기로 했다
누구와 비교하지 않기위해 노력했다.
매번 워크샵이나 강의를 들으러가면 수강생들 중 내가 제일 잘하고,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노력했었다.
그것은 내가 특별해지기 위한 몸짓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무엇을 배우러 간 것이 아니었다.
나를 위해 간 워크샵에서 나는 남을 위해 수업을 듣고 있었다.
선생님을 위해, 그리고 나와 비교할 타인을 위해 수업을 듣는 것이었다.
나의 평범함을 인정하면서 나는 더 이상 워크샵이나 강의에서 제일 잘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강사가 전달하는 것들을 내가 잘 체득하는 것에 집중한다.
그러니 모든 것들이 즐거워졌다.
그 시간에 배우는 것들이 온전히 나를 위한 것들이 되었다.
특별해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 평범함을 인정하고 그저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그렇게 행복한 것인지 30년만에 깨달았다.
평범함을 인정하고 나니, 누구’보다’가 사라지면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 순간이 아니라면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그 동안 놓치고 있었던 늘 그 자리에 있던 것들이 지닌 아름다움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평범해서 행복했고, 평범해서 세상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나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생각한 나의 평범함은 나의 기준이었다.
세상에는 각자의 기준이 있었고, 나는 나의 기준에서 평범했던 것이다.
이별의 과정에서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나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치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이유로 나는 이별을 통보 받았다.
이별을 고하는 그의 편지에는
“나는 자기 눈에는 심심하고 재미없어 보일지는 몰라도 평범하게 결혼하고, ~~~”
라고 쓰여있었다.
그는 나에게 평범하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이제 겨우 평범하다는 것을 알았는데, 특별하기 위해 발버둥치던 삶에서 겨우 벗어나
평범한 나를 마주하면서 이제 겨우 행복해졌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평범하지 않아서 나를 떠나야겠다고 말했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이라는 말인가? 나는 그날부터 고민에 빠졌다.
‘나는 평범한 사람인가, 특별한 사람인가’.
나는 결혼이라는 제도만 피해갈 뿐이지, 그 안에서 서로 갈등하고 이해하는 그 감정은
모두 같은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러니 형식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남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는 나,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부하는 내가 그에게는 평범하지 않았다.
그즈음 나는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움직임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주제는 ‘곁’이었다.
개인의 시간과 공간이 중요시되는 지금 이 시점에
과연 그것만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 그 공연을 기획하게 된 시발점이었다.
우리가 조금 더 타인에게 곁을 내어줄 수 있다면,
그리고 내가 타인에게 어느 범위까지 곁을 내어줄 수 있는지 고민해본다면,
우리 주위에 산재한 고독과 정서적인 불안을 조금을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주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나는 생각을 시작했고,
아주 평범한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나의 공연 주제를 찾았다.
이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에 대한 관심과 질문이 나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예술은 일상과 격리되어서는 안되고, 예술가는 우리의 삶과 밀접한 다양한 감정은 물론,
사회적 이슈, 정치적 이슈와도 분리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별과 공연을 모두 살펴보던 동생이 한마디 했다.
“언니는 평범하지 않아.”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이렇게 일상에 관심을 가지고 이렇게 평범한 것에 관심을 가지는 내가 왜 평범하지 않은가.
결혼과 가족의 모습은 다양할 수 있고, 그 다양한 생각 중에 하나를 가지고 있고,
나도 똑같이 그러한 관계나 생각 속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는 데 왜 내가 평범하지 않은가.
동생은 통계를 예로 들었다.
오차 범위와 신뢰 구간을 이야기하면서 언니는 통계적 범위 내에서 평균적이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언니는 평균적이지 않고, 일반적이지 않고, 평범하지 않고, 비정상이라고 이야기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비정상이라는 단어에 포함된 가치 기준에 대해서 논의를 했고,
여기서 단어의 정의를 짚고 넘어가는 우리가 평범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대부분은 그냥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단어의 정의를 굳이 따지고 들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고
동생은 콕 집어 이야기해 주었다.
언니의 이별과 삶에서 통계치를 짚어가며 이야기하는 자기 자신도 그다지 평범하지는 않다고 이야기했다.
언니는 왜 예술가의 삶을 살고 싶어하고, 예술가의 삶을 살면서
자꾸 스스로 평범하려고 노력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고, 실제 사회가 어떠한지를 명확하게 알아야 예술을 통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잘 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억지를 부리면,
그것이야 말로 예술가인 척 하는 허세인 것이라고,
자신의 위치와 정체성을 잘 파악해야지 사
]람들과 예술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더 잘 고민할 수 있는 것이라고,
예술가의 허세만 따라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동생의 이야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가를 아는 것은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매우 중요하다.
내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야 내 왼쪽, 오른쪽, 앞, 뒤에 있는 것들과 소통할 수 있다.
내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할 수 있다.
나의 위치를 안다는 것. 그것은 나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내가 나의 위치를 우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상대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생각과 의견들이 존재하고,
내가 생각하는 다양한 결혼과 가정의 형태가 존재는 하지만,
그것들이 50%가 되었을 때, 평범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는 동생의 이야기에 어느 정도는 동의가 되었다.
나는 나의 삶의 방향에 대해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나는 일상과 평범함에서 답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우리 삶에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질문을 던지고 싶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서 사람들이
한번쯤을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은 사람이다.
나는 그런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나는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결혼 제도, 연애, 가족의 형태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만들고 싶다.
그러니 내가 어느 위치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결혼이나 연애, 그리고 가족을 만드는 데에 있어 나는 평범하지 않다.
그렇지만, 내가 배척 받아야 할 이유도 없고, 반드시 인정받거나 이해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상한 것도 아니다.
그냥 평범하지 않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내가 51%의 형태의 결혼과 가정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점차 그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니, 언젠가 51%가 된다면 혹은 평범하다는 것이
반드시 51%를 의미하지 않게 된다면, 그 즈음에는 나도 평범한 사람일 수 있겠지.
그리고 이러한 생각 끝에 나는 B와의 관계가 더 이상 지속되기가 어렵다는 것을 직감했다.
물론 이별의 선택권은 B에게 돌렸지만,
우리는 평범하기를 원하는 남자와 평범한 것에 질문을 던지고 싶은 여자였다.
나의 삶의 방향성이 확실했기 때문에 평범하는 원하는 남자와 함께 산다면,
나의 삶의 방향성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평범하지도 않지만, 고집스러운 데도 있어서
내가 정한 나의 삶의 방향성을 쉽게 바꾸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렇다면, 굳이 나로 인해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을 붙잡아두고, 계속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평범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그로 인해 불행했다고 생각했던 나는
어떤 면에서 내가 매우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연애나 결혼에 장애물이 되었지만,
오히려 나는 나의 결정이 옳다고 생각했다.
나의 연애와 결혼은 나의 삶의 일부이고, 그것은 내 삶의 방향성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으며,
나의 연애와 결혼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나의 삶의 방향에 일치하는 것이 나에게 더 맞는다고 생각했다.
평범하지 않은 것이 슬프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매우 평범하고, 어떤 면에서는 매우 평범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냥 그게 ‘나’인 것이다.
평범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나는 원래 평범하지 않았을까?
특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가? 아닌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냥 그게 ‘나’인 것이다.
비록 이별은 했지만, 그리고 그 이별은 슬펐지만,
그 이별은 나를 다시 한번 바라보고,
나의 삶의 방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평범한 것에 질문을 던지고, 각자의 답을 생각하게 하는 사람, 그런 예술가가 되고 싶고,
그러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
Q of OUTRO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삶의 방향성을 생각하고 있는가?
그런 당신의 삶에서 당신의 사랑, 연애, 결혼, 가족은 어떠한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