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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Feb 22. 2021

030. 너에게 쓰는 편지_ 연애에 대한 단상

연애, 관계 맺기를 고민하는 너에게

나에게 연애라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나의 삶에서 대부분의 선택과 결정은 나 하나의 선택과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반면, 연애라는 것은 상대의 선택과 결정, 그리고 감정까지도 생각해야 하므로.. 연애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대표적인 어려운 일이다.


나는 빠르게 진행되는 연애를 경계한다. 그 간의 경험을 통해 빠르게 진행되는 연애는 그만큼 다양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모두 만남을 시작할 때 소소한 것에 감동하며 사랑에 빠진다. 상대가 나와 같은 음식을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인연이라 느끼고, 상대가 나와 같은 취향의 영화를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사랑스러움을 느끼고, 상대가 나와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낀다.

상대가 가진 독특한 성격이나 행동은 매력으로 다가오고 그 매력에 푹 빠져 사랑이 시작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매력들은 익숙함으로 변하고 그 익숙함은 일상이 되고, 어느새 서로의 관계에서 다시 새로움을 찾는다.


상대를 만나 상대에게 빠지는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다. 소소한 하나하나가 새로운 세계이고, 너무나도 매력적이기에 정신없이 빠져든다.

그러나 익숙해진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지겨워진다. 상대를 위해 변화했던 나의 행동들은 어느 순간 원래의 나로 돌아와 있고, 상대를 위해 변화하고자 했던 나의 태도들도 어느 순간 원래의 나로 돌아와 있다.


그 어느 것도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함께 시간을 보냈으니 익숙해지는 것이 당연하고, 그 간에 발견했던 장점이나 매력들도 어느 순간이 되면 원래 그 상대의 성격이었음을 알게 된다.


슬픈 것은.. 처음에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던 어떤 것들이 어느 순간...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오히려 나를 괴롭게 하는 것들이 된다는 것이다. 때로 그런 매력포인트들은' 제발 저런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포인트로 변하고, 때로는 '꼴도 보기 싫은 단점'으로도 변한다.

슬프다.

처음에는 사랑스러웠던 어떤 것들이 변한 것 없이 원래 그 사람 그대로 행동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나를 괴롭게 만드는, 상대가 너무나도 미워 보이게 만드는 어떤 것들로 변한다는 것이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나를 참을 수 없게 만들 때, 혹은 상대를 참을 수 없게 만들 때 우리는 이별을 한다.


나는 그래서 빠르게 진행되는 연애를 경계한다. 나는 상대가 나와 같은 취미를 가졌어도, 나와 같은 음식을 좋아해도, 나와 같은 책을 좋아해도 심하게 기쁘지 않다. 반대로 상대가 나와 다른 취미를 가졌어도, 나와 다른 음식을 좋아해도, 나와 다른 책을 좋아해도 심하게 싫지 않다.


그냥 그는 그고, 나는 나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이고,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인 것이다. 나는 그냥 그가 좋다. 그냥 묵묵히 지켜보면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혼자서 고민한다. 필요할 때는 대화를 요청한다. 물론 생각하지 않고 감정 표현을 무작정 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그런 후 후회한다. 조금 더 생각하면 서로 마음 상하지 않고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 나의 연애는 타인이 봤을 때 무미건조하고, 알콩달콩하지 않고, 마치 10년 만난 부부 같은 연애처럼 느껴질 수 있다. 오래 만난 사람과의 연애는 대부분 이러했다.


설레고 가슴 뛰는 사랑도 사랑이지만, 나는 그런 사랑보다 신뢰로 꽉 찬, 함께 하는 시간만으로도 안정감이 느껴지는 사랑이 좋다. 잘 보이고 싶고, 예뻐 보이고 싶은 관계도 연애이지만, 어딘가에 그가 있다는 그 존재와 그에 대한 생각만으로 위로가 되는 것도 사랑이다. 친구 같은 사랑도 사랑이다. 그냥 존재만으로도 마음을 꽉 차게 하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각자의 처음 매력포인트가 익숙해져 가는 시간 속에서 그 매력들이 그저 그런 별로인 성격으로 치부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원래의 상대임을 깨달아가는 것, 그리고 그러한 시간 속에서 설렘의 자리를 신뢰가 채워가는 것.. 그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상대의 (처음에는 장점이었던) 단점으로 인해 감정이 폭발하지 않을 수 있다. 그냥 그러한 상대에 대해서 내가 취해야 할 태도나 행동을 고민하면서 고쳐가면 된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해지면..... 관계는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을, 그런 사랑을 원해왔다. 그래서 나의 사랑은 미적지근하다. 천천히 천천히 함께하면서 신뢰를 쌓아가고 싶은 것이 나의 사랑이다.


그 신뢰가 쌓이면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이고, 그 신뢰가 쌓이지 못한 채 서로의 단점에 대해서 불평을 하기 시작하면, 그 관계는 끝을 향해 가는 것이다.


나는 신뢰를 쌓아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는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물론 나와 다르니...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으니.. 당연히 알 수 없었겠다만....


겉이 아니라 마음을 봐주었으면 좋겠구나. 난 처음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그냥 '나'이다. 개인주의적이고, 남들하고 다르기를 바라면서, 표현하기를 좋아하고, 털털한 척하면서도 예뻐 보이기를 원하는, 삶의 목표를 세웠다고 하지만, 여전히 자아를 찾아보겠다고 고민에 빠지고 갈팡질팡하며 사는... 지난 33년의 경험과 생각으로 만들어진 나이다.


넌 자꾸 고민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의 표현과 나의 표현을 자꾸 비교하지 않아줬으면 한다. 넌 자꾸 고민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와 너를 대할 때가 확연하게 다르다. 그것이 일반적인 표현과 다르다고 해서 나의 마음을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의 고민이 깊어질 때마다 나는 슬퍼진다. 나의 마음이 의심받고, 나의 마음을 설명해야 하고.. 내가 무엇을 크게 잘못하고 있는 것 같고, 그럴 때마다 너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아 미안하다. 그런 나에 대해서 반성해야 하고, 가끔씩은 그 과정에서 다시 나에게 상처를 내기도 한다. 서로 자기 자신을 깎아먹는 관계는 매우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관계가 되고 싶고, 그런 상대가 되고 싶다. 상처 주는 건.. 정말 좋지 않다. 그래서 반성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가는 것은 당연하고, 원래의 나로 돌아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애정이 식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과정에서 두근거리는 애정의 자리를 편안한 정으로 채워가는 것도 난 좋은 것 같다. 그것도 사랑이라 생각한다.


네가 틀렸다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맞다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뿐이다. 이렇다고 해서 너에게 난 상처가 쉽게 아무는 것도 아니고, 너의 의문이나 의심이, 고민이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한 번쯤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 긴 글을 쓴다. 종이 편지도 생각해 봤지만 왜인지 이 곳에 더 남기고 싶었다.


연애는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하는 것이다. 서로 아무리 아무리 비슷하다 하더라도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와 더 잘 맞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너도 그런 것 같아. 그러니 헤어지자.'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세상에 잘 맞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하죠.'라고 말했던 사람에게 끌리는 지금처럼.. 나도 그 사람 말처럼 노력할 것이다. 원래의 내 모습을 유지하고, 원래의 너의 모습을 존중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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