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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민 큐레이터 May 22. 2016

이상하고도 익숙한

마틴 파가 기획한 <Strange Familiar>로 보는 영국의 모습 

“그래 런던! 피시 앤 칩스, 차, 거지같은 음식, 나쁜 날씨 빌어먹을 매리 포핀스의 런던!”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으로 들떴던 2000년, 런던의 레스터스퀘어의 대형극장에서 영화 <스내치>를 볼 때 이 대사에서 큰소리로 웃었던 것을 기억한다. 나뿐 아니라 관객들의 거의 다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사실, 이 표현은 “크리셰”라고 할 정도로 진부한, ‘영국’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지만, 영국인들 자체도 이 수식어들을 그렇게 기분나빠하지 않는다. 이때부터 17년이 넘게 런던에 거주하며 영국의 다양한 도시를 방문할 수 있었다. 나쁜 날씨는 원 없이 겪었고, 홍차가 왜 필요한지 몸으로 느꼈지만, 그래도 여전히 영국은 내게 매력적인 나라이다. 물론 날씨도 싫고 비싼 물가도 싫지만, 영국 문화산업의 창의성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폴 스미스의 반듯한 정장 속 화려한 안감처럼, 전통과 파격을 같이 버무리는 영국을, 나와 같은 다른 외국인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영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 마틴 파 (Martin Parr)가 기획한 사진전시가 있어서 찾아가 보았다. 전시된 사진이 보여주는 영국과 이런 전시를 개최하는 영국의 엉뚱함에 매료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틴 파는 사진의 작가주의를 지향했던 세계 최초의 사진 에이전시 매그넘(MAGNUM)의 회원(회장도 역임)이면서, 1986년 발표한 <마지막 휴양지 (LastResort)>, 1986년부터 89년까지 작업한 <삶의 비용(The Cost of Living)> 등에서 기형적인 현대인들의 소비생활을 상징적으로 표현했었다. 그가 2013년부터 지금까지 영국을 통틀어 가장 부유한 행정구인 ‘씨티오브런던’*의 입주 작가가 되었다는 것조차가 놀라운 일인데, 한술 더 떠서 자기 사진은 길드홀 갤러리에서, 영국의 모습을 담은 다른 작가들의 사진은 길드홀 갤러리 바로 옆에 있는 바비칸 센터에서 동시에 전시한다고 해서 더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시티오브런던은 우리가 “런던”이라고 불리는 그레이터 런던(Greater London)의 33개의 자치구(borough) 중 하나이다. TheCity라고도불리는 이곳은 런던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고, 런던증권거래소, 길드홀 및 각종 금융, 보험 기관이 자리 잡고 있는 지역이다.


마틴 파는 그동안 영국의 평범한 시민들과 노동계급의 사진을 찍는 작업을 통해 영국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난하는 작업으로 정평이 나있는 작가다. 그런 그에게 현실의 패러독스를 보여주는 차원에서 ‘씨티오브런던’의 뱅커들과 여왕 등을 찍을 수 있게 아예 후원까지 하는 영국의 문화계는 용감한 것인가? 사실 그 자체가 영국적이지 않는가? (영국의 우파진영인 캐머론 정권도 2012 런던올림픽 때 개막식의 총대를 좌파성향이 깊은 영화감독 데니 보일에게 맡겼다.) 마틴 파에게 이런 전시기획을 맡긴 ‘바비칸센터’는 다름 아닌 영국의 국립문화센터였다.  


그가 선정한 23명의 비영국인 작가들이 찍은 사진들을 모은 사진전의 제목은 “이상하고 익숙한 (Strange Familiar)” 이었다. 보도자료에는 알파벳순서로 나열되어 있는 작가리스트를 단순한 호기심에서 나라별로 구분해봤다. 티나 바니(Tina Barney), 브루스 데이비슨 (Bruce Davidson), 짐 다우(Jim Dow), 브루스 길든 (Bruce Gilden), 폴 스트랜드 (Paul Strand), 게리 위고란드 (Garry Winogrand) 등 미국출신이 6명으로 제일 많았다. 프랑크 하비트 (Frank Habicht), 칸디다 호퍼 (Candida Höfer), 에블린 호퍼 (Evelyn Hofer), 엑셀 휴트 (Axel Hütte) 등 4명의 독일인, 레니케 디스트라 (Rineke Dijkstra), 한스 에이켈붐 (Hans Eijkelboom), 카스 오투이 (Cas Oorthuy), 한스 반 더 미어 (Hans van der Meer) 등 4명의 네덜란드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프랑스 출신 작가는 3명으로 매그넘의 창단맴버이기도 한 앙리 까띠에 브레송 (Henri Cartier-Bresson)를 비롯해 레이몽 듀파동 (Raymond Depardon), 질 페레 (Gilles Peress)가 포함되어 있었고, 아키히코 오카무라 (Akihiko Okamura) 같은 일본 출신의 작가도 두 명이 있었다. 또 이탈리아 (Gian Butturini), 스위스 ( Robert Frank), 오스트리아 (EdithTudor-Hart)와 칠레(Sergio Larrain) 출신이 각 한명씩 있었다. 대체적으로 서방진영의 작가들이기는 했지만, 그들의 시선은 다양했다.  



Henri Cartier-Bresson, Coronation of King George VI, Trafalgar Square, London,12 May 1937
© Henri Cartier-Bresson / Magnum Photos


대중에게 무척 친숙한 앙리 까르띠에-브레송이 찍은 영국은 1937년의 모습이었다. 그는 좌파 성향 잡지의 의뢰로 조지 6세의 즉위식을 취재하기 위해 영국에 왔었다. 연설할 때마다 말을 더듬는 장애가 있던 <킹스 스피치> 영화로 잘 알려진 조지6세의 즉위식을 찍었다고는 하는데, 사진 어디에도 왕의 모습은 없었다. 단지 구경하는 평범한 영국인들의 모습만 가득하다. 제복을 입은 두 중년의 어깨위에 올라타서 역사적인 순간을 보려는 백발의 여자를 보면 왕정을 사랑하는 영국인들이 느껴진다. 엄청난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여왕이지만,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자신들의 세금이 엄청나게 쓰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인정하는 영국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의 표상이다. 마치 자신들의 경사인 냥 제복과 정장을 빼입고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기위해 이미 노인으로 보이는 두 명의 남자 어깨에 올라가있는 여자는 결코 부유해 보이지 않는다. 이때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로 특권층을 빼놓고는 많은 이들이 빈곤에 시달렸다. 같은 전시에 포함된 1936년,바로 1년 전에 에디스 튜더하트가 찍은 런던은 그야말로 실직자와 노숙자들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Edith Tudor-Hart. Gee Street, Finsbury, London, ca. 1936© Edith Tudor-Hart / National Gallerie


1950년대 런던을 찍은 폴 스트랜드(Paul Strand)의 사진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공산주의를 신봉했던 그의 신념을 보여준다. 스트랜드가 영국에 왔을 때 미국은 매카시즘의 열풍이 절정에 달해 있었다. 신경질적으로 좌파를 범죄인으로 몰던 미국에서 냉전의 무거움 속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었던 그는 유럽의 최전방이라고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의 최북단 섬에서 노동자 계급이 주체가 되어 생산수단의 공공 소유에 기반을 둔 무계급 사회 조직, “마지막” 공동체를 담고자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한 노인의 손을 클로즈업 한 사진을 들여다보며 전시를 같이 본 지인은 당신 어머니의 손이 생각난다고 했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사진의 구조와 명암에서 시선을 끌어당기고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사진들이었다.


로버트 프랭크는 빈곤과 부의 극명한 대비와 공존을 사진에 같이 담아냈다. 로버트 프랭크는 미국의 구겐하임 재단으로 부터 지원금을 받아 약 1년에 걸쳐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본 1950년대의 미국 모습을 다큐멘트한 <미국인들>이라는 사진집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구겐하임 재단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기 전 프랭크는 자신의 사진이 <라이프> 잡지에서 게재되었으면, 혹은 매그넘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유럽을 횡단하며 사진 찍는 작업을 했었다. 비록 이 두 가지 소망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귀한 사진으로 역사에 남았다. 웨일즈 탄광촌의 인물 사진들과 볼러햇을 쓴 런던의 신사들의 사진은 사실 근래에 찍었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익숙한 것이었다. 이쯤에서 전시의 제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세르지오 라레인의 1950년대 사진도 마치 어제 찍은 것처럼 느껴지는데, 지금도 런던에서 매일 타는 지하철 역시 개통한지 100년이 넘었기 때문 아닐까? 세르지오 라레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빠른 속도로 변한 런던의 모습을 담기 위해 지하철 안 사람들을 찍었다. 초점이 흔들린 이미지에서 도시의 속도와 변화가 감지된다. 아이러니하게, 이러한 장면은 지금도 볼 수 있다. 카스 오투스 사진도 옥스퍼드, 런던, 캠브리지를 담고 있지만 이상하게 친숙하다. 본 전시의 오디오가이드를 들으면 친절하게도 옥스퍼드 대학에 몸담은 흑인들의 역사를 다룬 책의 저자가 직접 설명을 해준다. 1937년 최초의 아프리카계 여성이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했다는 이야기까지.

Sergio Larrain, London. Baker Street underground station. 1958-1959. © Sergio Larrain / MagnumPhotos

1960년대로 넘어가면, 영국 카나비스트리트에서 시작되어 전세계 트랜드를 이끈 스윙잉 런던의 모습을 담은 프랑크 하비트의 사진들로 분위기가 바뀐다. 트위기와 같은 영국출신 모델들의 미니스커트를 예상했는데, 미니스커트는 있고, 밥 스타일의 머리보다 미국의 히피족같아 보이는 젊은이들이 눈에 띈다. 단 배경에 찍힌 건축물과 다른 신사들의 옷가지에서 묻어나는 전통성의 대비가 영국임을 알게 한다. 프랑크 하비트의 사진에는 옥상 위의 젊은이, 그 밑 무카의 포스터, 그리고 전라의 몸이 목부터 허벅지까지 창문사이로 보인다. 유포리아와 반전운동가가 공전했던, 그리고 전 세계 패션을 주도하던 영국의 자유분방함을 엿볼 수 있다. 


비교적 편안하고 익숙했던 사진들을 보며, 아직까지 존재하는 건축물들, 지하철 싸인, 내일 입어도 괜찮을 더블코트 등을 집어내며 웃다가, 일본 사진작가의 아일랜드 사진을 보고 웃음이 가셨다. 전시를 본 날이 안중근의 서거 날이었기에, 더욱 그렇게 느꼈을까? 북아일랜드 전쟁의 사진들을 본 순간 그 초현실적인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사진에는 전형적인 티타임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여인이 등장한다. 폭격과 공포가 계속되었던 북아일랜드 사태 때는 전통적으로 전쟁에 가담하는 양 진영의 용병/군인들을 위해 동네의 여인들은 홍차를 준비했다고 한다. 두 여인 뒤로 연기가 가득한 폐허가 된 집들이 보인다. 캡션을 읽고 이해를 했다. ‘보그사이드 전투’의 보그사이드는 데리 지역의 치열한 접전지였다. 여인들이 준비했던 우유병은 폭탄이 되어 날라 다녔고, 무수한 사람들이 죽었다. 도대체 어떤 일본 작가이기에 아일랜드에서 이 사진들을 담았을까. 작가는 아키히코 오카무라 (1929-85)로 1964년에 9페이지에 달하는 베트남 전쟁 사진이 라이프 잡지에 소개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사진가였다. 신기하게도 1968년 그가 북아일랜드로 간 이유는 존 에프 케네디 전 대통령의 발자취를 찾아간 것이었다고 한다. 어찌됐건 그의 회고에는 어릴 적 세계대전 중 동경 폭격을 기억하면서 분쟁이 있는 장소를 찾아가고 기록하는 작업을 하게 됐다고 한다. 전시의 한 벽에는 그의 인물사진부터, 피가 범벅된 벽, 꽃다발이 놓인 골목,우유병들 등 다양한 작품들이 모여 있었다. 묘한 긴장감과 일부러 극대화 하지 않은 고요함이 오히려 사진을 초현실적으로 보이게 했다. 

Akihiko Okamura Northern Ireland, 1970s © AkihikoOkamura / Courtesy of the Estate of Akihiko Okamura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며 다큐멘터리 사진은 라이프, 픽쳐포스트와 같은 사진잡지의 쇠락과 함께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그럼에도 매그넘 사진들은 우리 사진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현대미술가 중 다큐멘터리적인 사진으로 한국의 소외된 사람들을 찍는 훌륭한 작가들이 있다. 여러 가지를 떠오르게 한 전시이지만, “영국성”이란 무엇일까를 되묻는 전시 기획이라는 점에 관심이 갔다. 본 전시는 연대기별로 전시되지 않고, 작가별로 나열이 되어있지만, 1930년대 사진 시작한 전시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점점 동시대와 가까워진다.


티나 바니가 찍은 사진들은, 우울하면서 무언가 측연한 영국의 상류층의 모습들로 영국의 지인들의 가족을 연상시킨다. 이 사진은 브루스 길든의 사진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나쁜 거리의 사진가로 알려진 브루스 길든이 찍은 사진은 영국 노동자계급의 사람들을 찍은 것으로, 초근접 촬영으로 인해 빨간 코 (알콜중독자인지?), 피부의 상처 등이 괴기스럽기 까지 하다. 티나 바니의 사진도, 브루스 길든의 사진도 어디에 걸려있던지 영국인이라고 알아봤을 것 같다. 미묘한 느낌이라고 할까? 힌트들이 많기에.. 


Tina BarneyThe Red Sheath, 2001© Tina Barney, Courtesy of Paul Kasmin Gallery


Strange and Familiar Curated by Martin Parr, Installation Photograph, © Tristan Fewings/ Getty Image



외국인들이 바라본 한국의 모습은 어떨까? 1952년 MoMA가 만든 전시 <한국:전쟁이 사진에 끼친 영향>을 보면 한국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전쟁 중의 국가였다. 2002년 세계 미디어를 도배한 사진들은 시청을 가득 매운 붉은 악마의 모습이었다. 이쯤에서 베네딕트 엔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라는 책이 떠올랐다. "아주 작은 국가의 구성원조차 다른 구성원들을 만날 기회도 없지만, 커뮤니온의 이미지 속에서 살아간다” 라고 말한다. 국가공동체의 개념과 동일화된 매스미디어와 19세기부터 보편화된 글을 읽을 수 있는 문명 속에서 국가의 아이덴티티는 결정된다고 주장한 저자는 중국에서 영국계 아일랜드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주장에 완벽하게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상의 공동체가 혹은 국가의 아이덴티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한국의 이미지는 어떠한지 궁금하다. 예술가들이 한 발작 떨어져서 담는 피사체로서의 한국은 어떨까 되뇌어지는 전시였다. 


김승민 큐레이터 (www.iskai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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