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진 여성 작가를 주목하는 전시 2
지난 10월 19일,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개막하는 루스 아사와의 순회 회고전은, 전시된 작품 수 기준으로 MoMA 역사상 여성 예술가에게 헌정된 가장 큰 규모의 전시가 된다. 이 전시는 총 376점의 작품을 포함하며, 미술관 6층 전체 16,000제곱피트(약 1,486㎡) 공간을 사용한다. MoMA는 이 전시를 그런 기록으로 홍보하지 않고 있으며, 미술관 자체도 이 ‘기록 경신’ 사실을 아직 인지하지 못한 듯 보인다고 한 기자는 밝혔다. 본 전시의 원조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에서부터 왔다. 당시에는 327점이 전시되었다.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이 루스 아사와의 놀라운 드로잉 전시를 통해 거의 잊혀졌던 그녀를 다시 세상에 불러냈던 것이 고작 2년 전이다. 아사와는 끊임없이 신작을 만들어냈고, 2013년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매일 드로잉하는 습관을 유지했고 한다. 그녀의 한없이 넘치는 창의성과 강력한 노동 윤리는 끝없는 기쁨의 원천이었다.
나 또한 처음 그녀의 작품을 센프란시스코 아시안 미술관에서 봤다. 가녀리면서 강한 작품은, 구름과 같기도, 그녀의 손을 통해 태어난 나무 같기도 했다. 바로 그녀에 대해 읽어보니, 이름처럼, 그녀는 일본에서 이민 온 부모 밑에서 1926년에 태어난 7남매 중 넷째였다. 처음은, 캘리포니아의 작은 농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어쩌면 그곳은 아이의 세심한 관찰력을 보답해주는 세계가 아니였을까? 실제로 작품을 보다보면 잎 사이르 스며들 햇빛이나, 잠자리의 얇은 날개막이 떠오르기도 한다. 토요일마다 다닌 일본어 학교에서 서예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가 아직 어릴 때, 진주만 공습이 있었고, 이 결과 아사와 가족은 산타 아니타 파크의 말 외양간으로 내몰렸다고
재밌게도 디즈니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 수용자들이 그녀에게 그림을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진주만 공격과 전쟁의 시작은 일본계 미국인들의 탄압으로 이어진다. 수천 명의 아칸소의 수용소로 보내졌던 루스는 철조망 안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1946년, 그 유명한 노스캐롤라이나의 블랙 마운틴 칼리지에 도착한 루스. 머스 커닝햄, 버크민스터 풀러, 요제프 알베르스 등 여러 실험 속 다시 성장한다. 그 시기 동안 아사와는 알베르스 부부와 함께 여러 차례 멕시코를 여행했고, 버크민스터 풀러, 존 케이지, 수학자 막스 데른(Max Dehn)도 만났다. 그녀는 이러한 학제 간 분위기와 또한 블랙 마운틴 칼리지(BMC)의 재료 부족 상황이 자신의 작업 발전에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표준 미술 재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자연 소재를 활용하게 되었고, 아사와는 자연 형태에 대한 관심과 뜨개질이라는 공예적 실천을 결합하여 3차원 추상 형태, 빛, 공간을 탐구하였다. 그녀는 이러한 기법을 발전시켜, 이후 오늘날 가장 잘 알려진 대형 철사 꼬임(위빙) 매달림 조각들을 다수 제작하게 되었다. 3년 후 센프란시스코로 향한다.
1948년, 알베르스는 전국 전시에 블랙 마운틴 칼리지를 대표할 작품으로 아사와의 그림 한 점을 선택했다. 녹색 숲을 배경으로 한 무리의 인물들이 팔을 들고 손을 맞잡은 채 활기차게 춤추고 있었다. 커닝햄과 엘리자베스 슈미트 예너얀의 무용 수업에 영감을 받아, 아사와는 몸의 움직임을 추상적이고 힘 있는 디자인으로 전환해냈다. 비어 있는 공간을 품으면서도 에너지를 발산하는 형식이었다.
“안과 밖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고, 안과 밖은 연결되어 있어요.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계속 이어집니다.”
루스 아사와가 세상에 알려진 바가 있다면 바로 이 공기처럼 가벼운 철사 구조물들이었으나, 그녀의 작업 세계 전체는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드러났다.
모마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회화, 수채화, 석판화, 주조 마스크, 공공 조각, 종이 접기 작품까지 모두 선보이며, 선(線)에 대한 그녀의 열렬한 애정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