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에서 본 생각거리 14
직면(confrontation)은 쓴소리이다.
듣는 사람은 자기의 잘못에 기인하였으므로
들을 수밖에 없으나 기분은 몹시 언짢다.
직면은 통상 모순상황을 얘기해 주지만
모순 외에도 왜곡, 변명, 속임수, 연막 치기 등을 했을 때도 한다.
예컨대 “그런 속임수(또는 왜곡, 변명 등)를 쓰다니,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지 않은가?”라는 뜻이 담긴 말을 들었다면
기분은 어떻게 변할까?
백이면 백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서
무슨 변명, 또는 화를 내야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듣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직면의 알려 주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
직면 상황을 은유로 얘기해 주는 것이 방법이다.
주역은 그래서 은유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은유가 무엇인지는 전 회를 참조하기 바람.)
은유는 듣는 사람의 기분을 언짢게 하지 않아
반발이 나오는 것을 없애고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몰입시킨다.
은유(隱喩)는 ‘숨겨진 비유’이니
숨겨진 내용을 알기까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생각하는 동안 반발할 생각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전 회에 말했던 주역 45-3의 청년을 보자.
청년은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이웃 세상으로 가려하는 마음을 단념키 어렵다.
그 마음을 고집스럽게 꼭 붙잡고 놓지 않으려 한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할지라도.
왜, 그럴까?
청년은 능력도 없는 멍청이라고
남성 중심 사회에서 멸시당해
외톨이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은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지옥과도 같아
도저히 견디기 어렵다.
설령 이웃 세상으로 가는 길에 매복이 있을지라도
또 각종 위험한 덫이 있어도
청년은 ‘간다’라는 적극성에 쏠린 마음을 끊어낼 수 없다.
‘에이! 가다가 죽더라도
지금의 멍청이 취급을 당하는 모욕의 생활보다는 낫겠지.
그래 가 보자. 지금처럼 고통의 세월을 사느니….
누가 아나? 용케 비집고 어찌어찌 가다 보면
왕당파를 만나 살길이 열릴지?’
이런 마음으로 꽉 찬 청년에게 주역은 은유로 말해
불편한 이야기를 수월하게 끌고 나간다.
청년은 ‘진흙 수렁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리네요.’가 무슨 뜻인지
처음 들었을 때는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진흙 수렁’은 어떤 상태를 말할까?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야 어렴풋이 뜻을 이해하게 된다.
‘아 아! 진흙 수렁처럼 연합군이 놓은 덫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는 얘기구나!
그러면 땅이 굳어야 진흙 수렁에서 나올 수 있으니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구나!
그렇다면 도적 같은 연합군들을 피해
빨리 왕당파를 만나야 할 처지인데?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 동안은 긴 시간인데
그러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
진흙 수렁 같은 덫이 깔린 어려운 상황을 빨리 피해야 하는데?
나는 소용도 없는 비가 그치길 기다리니
그런 나의 무지몽매한 생각을 지적하는구나!?’
이만큼 오랫동안 또 길게 생각해야 그 뜻을 이해할 것이다.
그러면 반발하고자 하는 마음은
그 뜻을 헤아리는 동안 온데간데없이 스르르 없어질 것이다.
그래서 상담심리학 교재에
‘은유는 변화를 원치 않는 마음과 변화를 원하는 마음 사이에
가교역할을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은유는 수수께끼 문제를 푸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어
만약 그 뜻을 풀어내면 ‘해냈구나!’라는
감동에 차 높은 희열감을 준다.
희열을 느끼는 사이에 반발하려던 마음은 스르르 없어진다.
이처럼 은유는 좋은 기능이 있지만
대화 중에 쓰려면
후속으로 따라오는 명료화 작업이 필요하다.
정치가들은 은유로 고사성어를 말해도
구름같이 모여드는 언론 기자들 덕분에
‘출처가 어디인지, 무슨 뜻인지, 어떻다는 얘기인지 등’
알아서 명료화시키고 평가까지 해준다.
그렇지 않은 보통 사람이
명료화가 따르지 않는 은유로 얘기했다간
‘도대체 논리가 없는 말을 밑도 없이 해대니!’, 어쩌란 말인가?’라고
우습게 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