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에서 본 생각거리 13
어느 날 유명한 상담심리학자 에릭슨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굳게 믿는 상담 고객을 만났다.
에릭슨은 고객의 하소연을 듣고
다짜고짜로 수수께끼를 풀어보라고 말했다.
수수께끼는 10그루의 나무를
1줄에 4개씩 5줄로 심는 방법을 구해보라는 문제이었다.
그 고객은 끙끙대며 방법을 생각했으나 끝내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에릭슨은 왜 고객의 고통스러운 문제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수수께끼를 풀게 했을까?
상담 고객의 눈앞에 있는 풀지 못한 수수께끼 문제와
고객이 하소연했던 문제는
둘 다 답을 낼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시 말하면 두 문제는 질적으로 유사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때 만약 에릭슨 박사가 어려운 수수께끼를 풀었다면
고객이 하소연했던 문제의 답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긴다.
은유(metaphor)는 longman 영영사전을 보면
‘~처럼(as), ~같이(like) 등을 사용하지 않고
유사한 질적 특성(similar qualities)을 이용하여 비유하는 방법’이다.
또 은유(隱喩)는 ‘숨겨진 비유’라는 뜻이다.
‘숨겨진 비유’란 ‘~처럼, ~같이’ 등을 사용하지 않아
비유란 표시가 숨겨져 있다는 뜻이다.
또 그때 숨겨져 보이지 않는 ‘유사한 질적 특성(similar qualities)’을
듣는 사람이 알아서 찾아보라는 뜻이다.
에릭슨이 힌트를 주어 고객이 수수께끼를 풀어낸다면
고통스러운 문제도 풀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고객은 골치 아픈 문제의 답을 얻을 희망이 생겨
적극적 자세로 상담에 몰입할 것이다.
주역을 보자(5-3).
청년은 한 방향으로 흐르는 남성 중심 문화에서
실패를 겪은 사람으로 능력도 없는 멍청이라고 멸시를 당한다.
서른 살이 넘도록 청년은 이일 저 일을 시도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능력도 없는 사람이라는 조롱뿐이다.
그래서 청년은 이웃 세상에서 곤란을 겪는 왕당파 사람들을 도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려 한다.
이웃 세상은 왕당파와 연합군과의 주도권 싸움이 진행 중이지만
싸움에 지쳐서인지 소강상태로 잠잠하다.
청년은 어지러운 세상에 기회는 숨어 있다고 믿고
싸움이 잠잠할 때 이웃 세상으로 기어이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연합군은 숲 속에서 매복하여 각종 덫을 놓고
왕당파를 돕기 위해 올라오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청년은 이때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놓치는 점은 없을지
주역을 찾아 상담한다.
주역은 그 청년에게 ‘수렁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네요.
도독을 매질하여 빨리 이르게 하는군요.
(수우니 치구지, 需于泥 致寇至)’라고 말한다.
이 말은 ‘비는 철철 오는데 진흙 수렁에 빠져서
비가 그치기를 기대하며 땅이 굳기를 기다린다.’라는 뜻이다.
비가 오던, 안 오던 수렁에서 나올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청년은 비가 그치길 기다리니 모순되는 불일치 상황이다.
주역은 청년이 왜곡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청년은 주역의 이런 말에 기분은 몹시 불편하지만
모욕의 세월을 벗어나기 위해
웬만한 불편은 견디겠다고 다부지게 마음먹는다.
꽉 닫힌 청년의 마음을 열리지 않으므로
주역은 두 번째로 조금 더 세게 말한다.
주역은 흉측한 도적이 떼를 지어 다가오는데
그것도 매질하며 코앞으로 빨리 이르게 되었다고
2번에 걸쳐 불일치 상황을 말한다.
도적은 재물을 탈취할 욕심에
사람의 생명을 우습게 여기는 포악한 사람들이다.
그제야 비로소 청년은 귀한 생명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격려를 기대하고 주역을 찾았던 청년은
허전하고 절망에 찬 기분으로 떠나려던 마음을 접는다.
이때 은유로 얘기했기에 망정이지 그냥 늘 상 대화처럼 했더라면
틀림없이 반발로 곤란한 상황으로 전개될 것이다.
여기서 은유로 말한 유사한 질적 특성(similar qualities)은 다음과 같다.
‘진흙 수렁’과 숨겨 놓아 드러나지 않은
‘연합군이 설치해 놓은 각종 덫과 매복’이 질적으로 유사하다.
또 ‘도적 떼’와 숨겨 놓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연합군’이 질적으로 유사하다.
주역은 ‘연합군이 설치해 놓은 각종 덫과 매복’이라고 자세히 설명하고
또 그런 덫과 매복처럼 위험한 장치가 기다리고 있다고
친절하게 설명하면 될 텐데?
그러면 듣는 사람 즉 청년은 이해하기도 쉬울 텐데?
그런데 왜 굳이 ‘진흙 수렁’이니 ‘도적 떼’라고 은유 형태로 말할까?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다음 회에서 다루고자 한다.
한편 에릭슨의 수수께끼의 답은
별 모양(★)으로 4개씩 5줄로 심는 것이다.
은유는 ‘숨겨진 비유’이기 때문에
숨겨진 사항을 찾아내어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은유에 관심을 높여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은유 기법을 이용해서 자주 말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나는 구렁텅이처럼 벗어날 수 없는 지경에 빠져
만신창이가 되었어.’라고 말할 것을 이렇게 통상 말한다.
‘나는 천 길 구렁텅이에 빠졌어.’라고.
우리는 이처럼 ~처럼, 같이 등을 사용하지 않고,
구렁텅이라고 은유의 말을 해서
어려운 지경에 빠진 것을 숨긴 채
구렁텅이에 직접 자신이 빠진 것처럼 과장되게 말한다.
은유는 ① ~처럼, ~같이로 표현될 수 있는 비유의 대상을 찾아내고
② 숨겨진 ‘유사한 질적인 면’을 찾아낼 수 있다면?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다.
은유의 숨겨진 내용을 찾는 동안 역사는 바뀌어 있듯
눈앞에 있는 모순상황은 전혀 새로운 상황으로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