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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인색하군요(소인, 小吝, 45-3)

-주역에서 본 생각거리 11

by 스테파노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다.

그것도 강력한 긍정이다.


예컨대 ‘~아닌 것은 ~없다’라고 말할 때는

아주 강력한 긍정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주역에는 무평불피(无平不陂, 11괘 3 효)란 말이 있다.

뜻은 ‘비탈이 아닌 평평한 땅은 없다’이다.


세상은 알다시피 비탈진 땅으로 온통 이루어져 있어

평평한 대지에서 활기차게 말 타고 내달리던 그런 호기스러운 상황은

이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 세상 보는 눈을 크게 뜨고 주위 환경을 다시 보란 의미이다.


이처럼 주역을 보면

부정의 부정 표현은 긍정을 강조하기 위해서 자주 쓴다.


서두의 소인(小吝)은 ‘작게 인색하군요’라는 뜻이다.

‘인색하다’라는 인(吝)은

‘내 마음 씀이 나에게 소중한 쪽으로 쓰다,

주저주저하다, 인색할 정도로 이끼다’라는 뜻이다.


이 말을 다시 ‘적다’란 소(小)로 꾸미고 있으니

부정의 뜻을 다시 부정의 뜻으로 꾸며

강력한 긍정의 표현으로 바뀐다.


결국 ‘내 마음 씀이 나만의 소중한 데 있어 인색하여

주저주저할 수밖에 없으나

그런 마음을 적게 가지려고 늘 노력하면

언젠가는 내 위주의 마음 씀은 사라질 것’이라는 뜻이다.


주역을 보자.

주역은 30대 여성에게 이렇게 말한다.


‘야위어 초췌한 것 같기도 하고 탄식하는 것 같기도 하니

이로울 점이 없군요.

가더라도 허물은 없으며 작게 인색하군요.

(췌여차여 무유리 왕 무구 소인, 萃如嗟如 无攸利 往 无咎 小吝)’


여성은 서른 살을 훌쩍 넘겼으나 책임자 시험에서 번번이 떨어져

‘능력도 없는 사람’이라고 멸시를 당한다.


가뜩이나 그녀가 속한 사회는

여성이 판을 치는 여성 중심 사회에서

그 여성은 멍청이라고 왕따 취급당하며 처진 삶을 산다.


책임자는 후배 여성이 차고앉았으며

그 여성은 결국 후배 밑에서 일하는 처지가 된다.

그런 생활이 하루도 견디기 어려워

그 여성은 이웃 세상에서 힘깨나 쓰는

실력자에게 그럴싸한 취업 자리를 부탁하러 떠나려 한다.


그런데 그 여성은 저잣거리에서 이상한 소문을 듣는다.

그 실력자는 평소에 권력을 마구 휘둘러

뭇사람들로부터 원성이 심해 쫓겨날 것이라는 흉측한 소문이다.


그런 소리를 들은 그 여성은

한순간에 꿈꾸던 희망은 실낱같이 희미해져

절망감으로 탄식하며 밤을 지새운다.

그 여성은 그런 상황을 도저히 견디기 어려워 주역을 찾아 상담한다.


주역은 밤을 고통스러운 일 때문에 지새운 듯이 초췌한 것 같다고

또 한숨으로 탄식하며 날을 보낸 것 같다고

보는 앞에서 솔직하게 그 여성의 불편한 진실을 직면시킨다.


또 그 여성에게 그런 우울한 환경 때문에 한숨으로 날을 지새우니

‘이로울 점이 없다’라고 명료화시킨다.


그다음 구절이 의미심장하다.

‘(실력자를 만나러 가도) 남들의 비난은 없겠군요’라고 말한다.

왜 의미심장하다고 하는 걸까?


30대의 그 여성은 왕따로 처진 삶을 사는 처지이지만,

또 실력자가 쫓겨날 위험성이 있지만,

‘괜찮겠지’ 스스로 위안하며 억지로 용기를 내어 만나러 간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 여성의 처지라면

어쩌면 자기만의 골방으로 숨어 들어가

맨날 한숨을 쉬며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라고

우울해하며 날을 보낼지 모른다.

아니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여성은 이웃 세상의 실력자를 만나

앞에 놓여있는 난관을 극복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인다.

이 모습을 보고 주역은 ‘매우 용기 있는 태도’라고 느꼈다.


그래서 주역은 그 여성에게

‘남들의 비난은 없을 것’이라고 용기를 준다.


또 끝에 나오는 ‘작게 인색하군요’라는 말도

주역은 살포시 그 여성을 안아주며 용기를 주고 있다.


그 여성은 남들의 비난으로

‘능력도 없는 멍청이’이란 말을 듣고 있다.

게다가 그런 그 여성을 남들은 겉으로만 보아

벼슬자리나 바라고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실력자를 만나러 간다고 할 것이다.


주역은 그렇지 않았다.

실력자를 만나러 가는 그 여성의 마음을

‘나’ 중심으로 기울어진 인색한 마음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인색한 정도는 약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주역이 소인(小吝)이라고 말한 속뜻을 훔쳐보면

그 여성의 마음은 실력자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리라 기대한다는 뜻이다.


‘저잣거리에 소문이 안 좋으니 이젠 물러나 편히 지내라고’

때가 되면 진심 어린 뼈 있는 간언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여성의 마음이 커지는 것을 기대하면서.


우리는 마음이 큰 사람을 닮고 싶어 한다.

마음이 큰 사람은 어떤 모습의 사람일까?


‘인(吝)스럽지 않은 사람의 마음’이지 않을까?

내 마음이 소중하기 이전에 남의 마음도 소중하다고 느끼는 사람,

그래서 인색한 듯 주저주저하지 않고 선뜻 내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의 마음이지 않을까?


그런 사람이 되려면

주역에 나오는 소인(小吝) 즉 ‘인색한 마음을 작게 또 더 작게’

꾸준히 다그치면서 살아야 하는데?

맑고 넓은 큰마음이 되는 길은 멀고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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