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에서 본 생각거리 10
질(疾)은 ‘일반적인 병’을 뜻한다.
특히 질은 어원상으로 화살(시, 矢)로 인한 상처는 잘 낫지 않아
오래 고생하는 병을 뜻한다.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으면 근심이 새록새록 쌓인다.
그래서 질(疾)에는 ‘근심’이라는 뜻도 있다.
근심이 자꾸 쌓이면 괴롭고 상처를 낸 사람을 미워한다.
그래서 근심을 ‘가능치 않다’라고 끊어내야 새 삶을 살 수 있다.
가능치 않다고 즉 불가(不可)하다고 끊어내는 것이 말처럼 쉬운가?
어렵다. 왜?
화살로 인한 육체의 상처는 잘 낫지 않고
마음의 병으로 커져 미움만 쌓이기 때문이다.
근심을 끊어낼 것인가,
아니면 붙잡고 내내 미워하며 세상을 원망하고 살 것인가?
결국은 이것도 하나의 선택행위이다.
선택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른다.
불가하다고 끊어낼 때는
참고 견디는 것을 조건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끊어내지 않고 근심에 매이면
상처를 준 세상 사람을 다 적으로 만들면서
갈수록 자기만의 골방으로 들어가
외부와 접촉하지 않고 폐인이 된다.
주역을 보자.
밝은 세상이 상처를 입는군요.
남쪽에서 사냥하면 그 큰 우두머리를 얻게 되는군요.
근심하면 가능치 않아서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명이 우남수 득기대수 불가질 정,
明夷 于南狩 得其大首 不可疾 貞)
주역은 청년에게 살길을 고향에서 찾되
근심을 빨리 끊어버리고 참고 견디라고 한다.
청년은 젊고 유능한 여성에게 책임자 경합에서 고배를 마셨다.
남성이 여성에게 졌으니
수치심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그런 속에서도 청년은 수치심이라는 구렁텅이에 있는
자기 자신을 빼내어 자기실현 욕구를 채우려 고민한다.
고향에서는 젊고 유능한 여성이 책임자가 되어
경제 성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그러나 청년은 패했다는 수치심 때문에
여성이 판을 치는 땅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청년은 이웃 세상을 넘겨 보아도 여성이 득세하여
공포정치를 펴기 때문에 떠나지도 못한다.
청년은 어떻게 할까?
대안이 없다.
죽으나 사나 눌러앉아서 살길을 찾아야 한다.
주역은 그 청년에게 현실감이 있는 팁을 준다.
즉 밝은 세상과 남쪽은 은유로 말한 것으로
청년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고향을 말한다.
주역은 청년에게 아는 곳이라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고향에서 뿌리를 내리라고 한다.
왜? 고향(밝은 세상)은 상처를 입어
도와줄 사람을 원하기 때문에.
주역은 그래서 청년에게 고향(남쪽)에서
활개를 치며(사냥하며) 살다 보면
훌륭한 지기(큰 우두머리 즉 같은 남성인 초구)를 만나
같이 뜻을 도모하면 자기실현에도 도움이 되어서 좋지 않겠나?
라고 권하고 있다.
이때 주역이 다음에 권하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근심해 보아야 가능치 않으니 참고 견디라(不可疾 貞)’ 말한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근심은 끊어내는 것이 정답이다.
근심하여 속을 끓이고 있으면 폐인이 되는 길로 간다.
그러지 말고 끊어내되
그때는 반드시 참고 견디는 환경을 겪어야 한다.
그렇게 참고 견디다 보면
머지않아 고향에서 성장의 한 축으로서
밖에서 벌어들이는 수출의 역군이 되어 다시 우뚝 서게 된다.
즉 주역은 청년에게 자기실현 욕구를 채우지 못해
근심만 하지 말고
수출의 역군으로서 우뚝 서는 길을 택하라고 권하고 있다.
그때는 반드시 조건처럼 정(貞)의 환경 즉 겨울 환경을 겪으니
우뚝 설 시기까지 참고 견디라고 한다.
정(貞)의 환경은 겨울 환경으로서
참고 견디다 보면 곧 따스한 봄이 오니 희망 있게 살라는 뜻이다.
우리는 자기실현 욕구를 채우기 위해 밤잠을 못 이룬다.
그런데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해
때깔이 유난히 찬란한 먼 데 있는 것만을 바라본다.
아니다.
길은 내가 활개를 치는, 잘 아는 곳에 있다.
그럴싸한 허울 좋은 껍데기만을 쫓아서
아까운 시간을 소비하고 있지는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