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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세를 또 바꾸다니(혁언, 革言)

-주역에서 본 생각거리 8

by 스테파노

로저스가 중심인 인간중심 상담학파에 의하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실현하려는 경향성이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경향성은 본능처럼 추구하려는 욕구가 원체 강해서

보편적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이러한 자기 자신을 실현하려는 동기는

모든 사람이 다 지니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동기는 사람의 내면에 늘 잠재되어 있어

꽃망울처럼 건드리기만 해도 피어오른다.


또 앞에 걸림돌이 있으면 도전하여

뚫고 지나가는 고통도 기꺼이 감내한다.


언(言)은 ‘말씀’을 뜻하지만 원래 의미는

‘나에 대해 믿지 않을 때

이에 상응한 죄의 값을 감수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강한 맹세를 여러 번 바꾸어서

굳게 다짐하는 것이 혁언(革言)이다.


맹세를 바꾸면서까지 자꾸 다짐한다는 의미는

스스로 다그쳐 자기 자신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주역을 보면 혁언 뒤에 삼취(三就)란 단어가 나온다.

삼취(三就)는 ‘톱니바퀴처럼 현실의 삶에 매이어

포부도 없이 사는 것이 싫어

좋은 곳으로 가겠다고 여러 차례 결심하는 것’이다.


왜 이처럼 맹세와 결심을 여러 번 하면서 자기를 다그칠까?


패배로 인한 열등감을 이겨내기 위해서

피 끓는 마음으로 스스로 몸부림치는 것이다.


자기를 단련시키는

그런 몸부림과 애씀이 있을 때는

거북이걸음처럼 천천히 갈 수밖에 없다.


꾸불꾸불 갈지자걸음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은

다짐하고 결심한 마음을 실천할 길이 없나,

이곳저곳 둘러보면서 천천히 가야 하기 때문이다.


주역을 보자.


나는 이렇게 살아도 되나?

나의 포부는 더 높은 곳을 향해 있었는데?


혁(革) 나라의 서른을 넘긴 청년은

자기실현 욕구를 채우지 못해

매일 위와 같은 물음을 되풀이하며 고민하고 있다.


그 청년은 젊은 여성에게 책임자 자리를 빼앗겨

남모르는 짙은 수치심에 절절매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은 짙은 수치심으로

젊은 여성 책임자를 적으로 돌려 한바탕 싸움을 할까,

아니면 힘들어도 그 밑에서 참고 지내야 할까 매일 고민하고 있다.


이런 청년에게 주역은 말한다.


“싸움은 흉하네요.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두려움도 뚫고 지나가야 합니다.

혁언과 삼취를 통해서 자기 단련을 하는군요.

믿음성이 있군요.

(정(征) 흉(凶) 정(貞) 려(厲) 혁언(革言) 삼취(三就) 유부(有孚)”


주역에 나오는 이 청년은

맹세를 자주 바꾸어 자신을 새롭게 하고

또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 몸부림친다.


왜 그럴까?

바로 자기 자신을 실현하려는 동기 때문이다.


그 청년은 자기 자신을 실현하려고

참고 견디며 또 두려움이 앞에 걸림돌로 작용하더라도

이를 과감히 뚫고 지나간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혁언과 삼취 앞에

자기 자신을 단련키 위해 참고 견디며(정, 貞)

또 두려움을 뚫고 지나간다고(려, 厲) 격려하고 있다.


몇 번의 좌절로 한숨 속에 살 필요는 없다.

까짓것 맹세를 바꾼다고 맹세가 어디로 사라지겠나?


전에 한 맹세는 또 다른 맹세로 대체하며

자기 자신을 새롭게 단련하면서

우리는 힘든 시절을 바우어 낸다.


실천하지 않은 이전의 맹세도

또 앞으로 실천하겠다고 벼론 맹세도

다 어디엔가 남아 있어 우리에게 더 낫게 더 좋게 쓰일 것이다.


말(言)을 바꾸는(革) 것은

자칫 줏대 없는 사람의 행동으로 종종 비추어진다.


그러나 주역은 그런 말을 자주 바꾸는 줏대 없는 사람을

자기 단련을 시키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외려 믿음성이 있음(유부, 有孚)을 격려하고 있다.


어떤 사람을 말을 자주 바꾼다고 기피하기보다는

오죽하면 그런 행동을 보일까,

그것도 자기 자신을 이겨내려는 몸부림이 아닐까,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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