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으로 본 생각거리 9
어떤 사람이 한센병(속어로 문둥병) 환우를
외진 길에서 맞닥트렸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어떤 사람이든 혹시 나쁜 병균이 나에게 전염되지는 않을까,
두려움 때문에 괴롭고 사납고 위태로운 감정에 휩싸일 것이다.
용기 없는 사람은 이러한 감정을 이기지 못해
뒤돌아 빠른 걸음으로
한센병 환우가 있는 현장을 피해 갈 것이다.
그렇지 않고 용기가 있는 사람이면
괴롭고 사납고 위태로우나
조심조심 한센병 환우 곁을 지나쳐 갈 것이다.
두려움을 뚫고 지나갈 때만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
두려움을 피해 빙 돌아가면
다음에도 그런 상황에서 피하는 방법만 찾을 것이다.
괴롭고 사납고 위태로운 감정에 떨면서.
두려움은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괴로움 때문에 생긴다.
3,000년 전 주역이 나왔던 고대 시대에는
한센병에 걸린 사람이 의외로 많았었다.
그러나 한센병 환우 곁을 도망치듯 피해 살 수만 없다.
한센병 환우 곁을 과감히 뚫고 지나가야
다음번에 똑같은 경우를 만나더라도
무서워하지 않으며 그 곁을 지나쳐 갈 수 있다.
주역에 나오는 려(厲)는 사전상 풀이로
‘괴롭고, 사납고, 위태로운, 한센병 환우’라는 뜻이다.
두려움에 맞닥트리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운 또 위태로운 상태이지만
그렇게 느끼는 감정은 상상 속으로
나쁜 병균에 옮지 않을까 염려하는 데에서 생긴다.
의외로 한센병은 그 곁을 지나간다고
병균에 전염되지는 않는다.
주역은 려(厲)란 단어를 두려움을 총칭하는 말로
또 두려움에 대해 안심시키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
려(厲)는 예컨대 ‘능력도 없는’
또는 ‘짙은 수모감을 이겨내지 못하는’ 등의
비난받는 두려움을 의미한다.
주역을 보자.
군자가 종일 대충대충 일하면
저녁에 속을 태우고 우울하네요.
괴롭고 사납고 위태롭지만 (뚫고 지나갈 때)
허물은 없군요.(군자종일건건 석척약 려 무구,
君子終日乾乾 夕惕若 厲 无咎)
주역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은
서른이 넘도록 책임자도 못되어
‘능력 없는 사람’이라고 멸시를 당하면서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지새우는 청년이다.
그 청년은 다들 호기 차게 앞으로 내달리는
그런 주류에 속한다고 뽐내는 그룹을
어떻게든 쫓아가 꽁지라도 따라붙으려고 매일매일 애쓰고 있다.
그래서 그 청년은 능력 없는 사람이란 멸시를 안 받으려고
이일 저일 가리지 않고 모두 떠안는다.
그러다 보니 청년은 일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대충대충 일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몰린다.
그러면 ‘능력도 없는 사람이니 일을 이 모양으로 해 놓았네’라고
또 멸시받는 상황이 된다.
청년은 멸시받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다.
주역은 이렇게 한숨만 쉬는 청년에게
안심시켜 주는 말을 하면서 토닥거려 준다.
① 저녁이면 하루 일을 반성한다고
군자라 불러 ‘현명한 사람’이라고 기를 세워주며
② 또 속을 태우며 우울해한다고
청년의 가슴에 들어가 한스러운 감정을 공감하여 주고 있다.
③ 그리고 려(厲)를 통해
괴롭지만 뚫고 지나가야 떳떳하다고 안심시켜 준다.
④ 또 뚫고 지나갈 때
공동체에서도 비난이 없다(무구, 无咎)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로저스라는 심리학자는
비난의 화살 방향이 자기의 내면세계로 향하고 있을 때
안심시켜 주기(reassurance)가 필요하다고 한다.
주역에 나오는 청년이
바로 자기의 내면세계를 향하여 자꾸 화살을 쏘고 있다.
주역은 그 청년을 자기를 가두는 골방에서 나오게 해
사람들 속에서 어울리라고 안심시켜 주기를 하고 있다.
상담에서 ‘안심시켜 주다’의 의미는
① 지지받고 있어 가슴이 푸근하다,
② 안도감을 심어주어 든든하다,
③ 조금 더 도움이 되게 해서 버티어나갈 힘이 생긴다,
④ 조금 더 자신감이 들게 해 도전해 나갈 수 있을 경우를 의미한다.
우리는 주변에서 “능력도 없는 지지리 못난 멍청이”라는
비웃음과 멸시의 두려움 때문에 절절매는 사람을 본다.
이럴 때 “두려움은 상상으로 키우니
자네가 잘하는 뚝심으로 직접 마주하여 뚫고 지나가게나,
그러면 모든 사람이 잘했다고 박수로 환영하지 않겠나?”라고
한다면 조금은 안도감을 심어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