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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상황일 때 추측의 용어는

-주역에서 본 생각거리 12

by 스테파노


어떤 사람이 대화 중에 상대방으로부터

모순상황을 지적받았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듣는 사람, 즉 청자는 틀림없이 모순상황을 들었을 때

씁쓸한 기분이 들어

반발하고자 하는 마음이 치밀어 올라올 것이다.


그렇지만 청자가 주제를 떠나 빙빙 돌아 핵심을 벗어난

뜬구름 잡는 얘기만 한다면?


말해주는 사람 즉 화자는 작심하고

그 사람의 모순상황을 지적해주지 않을까?


여기서 모순상황은 창과 방패의 역할처럼

긴장 관계 속에 있는 불일치 상황을 말한다.

이것이 직면(confrontation)이 가진 알려주는 기능이다.


그러나 듣는 사람, 즉 청자는 모순상황에 대한 지적질을 받음으로

반발이 생겨 대화는 어디로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대화의 주제가 방향을 잃고 헤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통상 화자는 청자에게 반발 억제책을 쓴다.


화자가 많이 쓰는 반발 억제책은

① 추측, 예감의 형태로 얘기한다든지

② 반발을 예상해 확실한 대안을 얘기해 준다.


주역을 보자.

바로 전 회(11)의 이야기에서 언급하였던

45-3의 이야기이다.


서른 살을 넘긴 여성은

저잣거리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고 절망감에 휩싸인다.

그 이상한 소리는 바로 희망의 구세주라고 굳게 믿었던

실력자가 쫓겨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소리이다.

흉측한 소리에 놀라서 주역을 찾아 상담한다.


이때 그 여성은 주역으로부터

‘초췌한 것 같기도 하고 탄식하는 것 같기도 하다’라며

‘이로울 점이 없다’라고 가슴 아픈 소리를 듣는다.

주역은 서른 살을 넘긴 실패자에,

또 왕따를 겪는 처지에,

능력도 없는 멍청이 같다는 비방의 소리를 듣는

최악의 조건으로 몰린 그 여성에게

위로는 못 해줄망정 왜 가슴 아픈 소리를 해댈까?


바로 주역은 그 여성에게 직면시키고 있다.

아픈 소리를 해야만

구렁이 담 넘어가듯 불편한 사실을

은근슬쩍 모른 척 덮어두고 피해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주역은 직면으로 그 여성에게 제안하듯이 말을 건네고 있다.

그 여성의 가슴속에 있는 진실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 자리를 출발점으로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것이 어떠냐고 하면서.


왜 그렇게 할까?

주역이 볼 때 그 여성은 지금 현실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상황과

그것과는 실제로 모순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여성이 추진하고자 벼르고 있는 상황은

벼슬자리에 대한 욕심으로 실력자를 만나러 가는 상황이다.

그런데 저잣거리의 흉측한 소문처럼

힘없는 뒷방 노인네를 만나러 가는 불일치 상황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췌한 것 같기도 한 희망을 염려하는 상황과

탄식하는 것 같기도 한 절망을 염려하는 상황이라는

불일치 상황, 즉 모순상황을 주역은 그 여성에게 말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췌여차여(萃如嗟如) 중에서

여(如)란 단어의 쓰임새이다.

여(如)는 ‘가령, 만일, 같게 하다’라는 뜻이다.


이른바 위 ①의 추측의 말을 해서

주역은 만에 하나 반발할지 모르는 경우를 회피하기 위해서이다.


아들러 학파에서는 추측의 용어를 써서 이런 반발 사항을 억제한다.

이런 추측의 용어를 써서 제안하듯이 말할 때

자신을 방어하려는 태도를 주저앉힐 수 있기 때문이다.


주역에서는

혹시나(혹, 或), 만약에(약, 若), 가령 ~같기도 한(여, 如) 등

추측의 용어를 써서 말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직면 상황이기 때문이다.


부득이 직면시킬 때 듣는 사람 즉 청자의 가슴을 아프게 할 경우가 있다.

그런 말이 사방을 틀어막아 퇴로가 없는 불일치 상황, 모순상황일 때

반발심은 더 커진다.


‘마치 나를 위한 것처럼 말하지만 그런 게 바로 지적질이 아닌가?

내가 그렇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어

고치려고 노력하지만 고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친구랍시고 위로는 못 해줄망정 지적질만 해대니? 나 원 참! 기분 더럽네.’


이런 반발의 원인은

충고, 조언, 지적 등의 형태로 말할 때 자주 발생한다.

그럴 때 가능하면 그런 충고 등의 말을 안 해주는 것이 필요하지만

상대방을 위해서 꼭 해줄 때는

추측의 말을 써서 해주는 것이 한 방법이다.


‘혹시 만일에 얼굴을 찡그리는 것이

난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긴다면

상대방을 싫어해서 노골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니

솔직하게 난시가 있어서 얼굴을 찡그린다고

먼저 털어놓고 말하는 것도 한 방법일 텐데.’라고


위의 ①과 ②의 수단을 다 동원해서 말해준다.

미사여구를 다 동원하더라도

그래도 쉽지 않은 것이 충고, 조언, 지적질이다.


게다가 모순되는 상황을 직면시켜 충고 등의 이름으로 지적한다면

그 친구와 결별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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