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낌새(기, 幾)를 알아차리는 것은
쉬운 일인가?

-주역에서 본 생각거리 15

by 스테파노

알아차림은 대화 중에

‘그렇구나,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네!’ 하며

화자는 대화의 주제를 바꿀 기회를 얻는 것이다.


어느 학자는 알아차림(awareness)을

‘느낌상 이전에는 피하려고 했던 것을

이제는 반대로 조금 더 접촉한다.’라고 한다.

참으로 명쾌한 설명이다.


‘피하려고 했던 마음’과 ‘접촉하려는 마음’은

서로 방향이 다른 인식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즉 알아차림은 부정에서 긍정으로

인식을 180도 바꾼 것이다.


예를 들면 로저스란 학자는 폴이란 학생과 상담 중이었다.

폴은 상담 중에 “제 능력으로는 안 됩니다.”라는 등

그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폴은 얼마쯤 얘기하다가

“음, 저도 능력이 있습니다.

저는 수학에는 분명 능력이 있지요.

그중 얼마만큼은 실현도 했고요.”라고 대답한다.


부정적 모습이 자기의 본모습이 아닌 걸 깨닫고

폴 학생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을

180도 바꾸어 표현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쉽네, 부정에서 긍정적 상황으로 바뀌는 것을

발견하기는 쉬운 것이 아닌가?”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알아차림이 생기기 전 현명함으로 꽉 차 있으면 쉽다.

쉽게 인식하려면 반드시 현명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주역에 나오는 기(幾)란 단어가

알아차림(awareness)과 맥을 같이 한다.


기(幾)는 ‘기미, 낌새, 조짐’이란 뜻으로

본래는 ‘적을 방어할 때 베 짜는 잉아의 소리가

이웃 마을에서 들리지 않으면 이상한 동태가 있는 것으로

미리 짐작하여 대비하는 것’을 뜻한다.


국어사전에서 기(幾)의 풀이인 ‘기미’, 낌새’를 찾아보면

둘 다 똑같이 ‘어떤 일을 알아차릴 수 있는 눈치,

또는 일이 되어가는 야릇한 분위기’라고 설명한다.


결국 알아차리려면

이웃 마을 동태를 관심 있게 보아야 하듯

눈치, 분위기를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주역(3-3)을 보자.


여기 서른 살을 넘기도록 책임자가 못 되어

패배의 아픔을 겪는 여성이 있다.

이 여성은 수치스러워 이웃 세상으로 가려해도

그곳은 전쟁 중이라 위험하다.


그 여성은 그냥 있자니

후배에게 책임자를 빼앗겨 자존심이 상한다.

결국 아무런 검증도 안 된, 개혁을 외치는 젊은이를 쫓아

새로운 기회를 일구겠다고 그 세력에 몸담으려 한다.


주역은 이 여성과 상담하면서 사슴 사냥꾼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슴 사냥꾼은 곁에서 위험함을 짚어주는 안내자도 없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숲 속으로 들어간다고 무모함을 넌지시 지적한다.

(“사슴 앞에 가까이 있는데 주위를 살펴 줄 안내자가 없군요.

마음에 물어보아 숲 속으로 들어가네요

[즉록무우(卽鹿无虞) 유입우림중(惟入于林中)].”)


주역은 또 사슴 사냥꾼이

군자처럼 사람 됨됨이가 훌륭해 현명하여서

위험하다는 낌새를 알아차린다고 추켜 세워준다.

(“군자는 낌새를 알아차리니 [군자기(君子幾)],”)


그래서 사슴을 잡는 것을 포기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한다.

또 만약 사슴 사냥꾼이 사슴을 잡는 것을 포기치 않고

기어이 간다면 참으로 내 마음만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이 좁은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한다.

(“포기하는 것만 같지 못하니 가면 인색하네요

[불여사(不如舍) 왕(往) 인(吝)].”)


주역은 이 여성을 사슴 사냥꾼으로 은유하여

전회에서 얘기했듯 불편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왜 모순상황인 불편한 이야기를 할까?

그 여성은 개혁의 소리를 쫓아갈 마음뿐인데

주역은 검증도 안 된 젊은이를 쫓아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하니까.


주역은 그 여성이 군자처럼 현명하여 낌새를 알아차려

쫓아가는 것을 포기할 것이라고 한다.

무슨 낌새를 알아차렸다는 말인가?

그 여성이 지극히 현명하여서

개혁의 소리가 위험하다는 낌새를 알아차렸다는 뜻이다.


기(幾)는 낌새이고 알아차림이다.

기(幾)는 그냥 낌새가 아니고

군자처럼 현명한 낌새 즉 현명한 알아차림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군자기(君子幾)’라고 군자를 기(幾)의 꾸밈말 식으로 언급하였다.


알아차림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아무것도 안 일어난 양 흘려버린다.

앞에서 폴에게 인식의 대전환이 있음에도

대화 중에서 흔히 우리는 모르고 흘려버리듯.


기(幾) 즉 알아차림을 얻으려면 군자처럼 현명해야 한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기 전

실마리가 되는 미세한 움직임의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현명한 사람은 미세한 움직임을 유심하게 보아

사건이 발생할 때 미리미리 준비해 피해를 줄인다.


이때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 미세한 움직임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현명함이 돋보여야 한다.

또 미세한 움직임의 변화를 알아차렸더라도

변화가 진실로 의미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현명함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용케 살아가려면

무엇보다도 현명해저야 할 필요성이 있는데,

그 답은 기(幾)에서 볼 수 있다.


주변의 미세한 변화가 움직이는 모습을 예사로 넘기지 않고

지속하여 관찰하고

또 그 미세한 변화가 의미하는 깊은 뜻은 무엇인가를

매일 매 순간 생각하면 될 터인데.

우리는 왜 현명하게 대응치 못할까?


감(感) 잡는 능력이 태어날 때부터 부족해서일까?

결코 아닐 것이다.


지속해서 관찰하고 생각하기보다

세상살이의 재미에 푹 빠져

이런 호기심에 쏟는 시간을 할애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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