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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비난은 조심하되 작은 비난 정도야

-주역으로 본 생각거리 18

by 스테파노

우리는 ‘남들의 눈총’을 의식하며 하루하루를 산다.

혹자는 ‘남들의 눈총’을 의식하는 사람을 대놓고

‘저런 덜떨어진 인간 하고는, 좀 줏대 있게 살아야지,

뭐! 짧은 인생을 남들만 의식하고 살아야 하겠나?’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남들의 눈총’을 의식하는 행태는

주역이 나왔던 3,000년 이전 사람에게도,

오늘을 살아가는 요즈음 사람에게도 예외 없이 나타난다.


마치 우리 몸의 DNA에 남들의 눈총을 의식하는 유전인자가

적자생존 방식으로 살아 오늘날까지 이어 온 것은 아닐지

의심이 갈 정도로.


사람들은 속한 공동체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아

그들과 같이 어울릴 수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을 늘 두려워했다.


주역에서는 그런 비난거리에 연루되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무구(无咎) 즉 ‘비난거리는 없다’라고 강력히 부인하여

속한 공동체에서도 받아들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용기를 세워주고 있다(주역으로 본 생각거리 3).


그러나 사람은 때로는 비록 작은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남들의 비난을 받으며 살 수도 있지 않은가?

살다 보면 실수할 때도 있고,

조심조심 노력해도 남들의 비난거리는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괴롭힌다.


주역은 이럴 때 힘을 내라고

무대구(无大咎) 즉 ‘큰 비난거리는 없다’라고 한다.

즉 큰 비난거리는 신경 써서 없애야 타당하지만

작은 비난거리는 살다 보면 익히 만나니

일상에서 겪어내야 하지 않느냐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작은 비난거리쯤이야 현실에서 흔히 있는 일이니

겪으며 뚫고 지나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도전 의지를 강조하기 위한 말이다.


이 말은 남들의 비난으로 무기력 증세에 빠져

맨날 핑계를 대며 방바닥에 눌러앉는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어 사람들 속에서 엉게덩게 살게끔 하는 말이다.


주역(44-3)을 보자.


서른을 넘긴 청년은 책임자도 못되어 죽쳐져 있다.

청년은 속한 공동체의 지나친 겸손 문화의 영향으로

자기 의견은 없이 그냥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는

줏대가 없는 생활을 한다.


청년은 이웃 세상으로 탈출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려해도

그곳은 남성 중심 문화가 짙게 배어 있어서

한번 패배했던 사람은 사람 취급도 못 받는 각박한 사회이다.


그러니 갈 수도 없고 청년은 그냥 지금 사는 곳에 눌러앉아서

희망도 없이 업신여김을 받으며 폐인처럼 산다.


주역은 이러한 청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엉덩이 피부가 벗기어 없으니 그 행동이 피곤하여

또 다음으로 미루어지네요.

괴롭고 사나우며 위태롭기까지 하여도 큰 허물은 없습니다.

[둔무부(臀无膚) 기행차차(其行次且) 려(厲) 무대구(无大咎)]”


청년은 일어나 행동하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피곤하여 미적대다가 또 다음 기회로 미룬다.

건장한 청년이지만 의욕이 떨어져 주저앉게 되고

피곤한 듯 맥이 빠져서 모든 일을 다음으로 미룬다.


청년은 업신여김의 직격탄을 맞아

사람들 만나기가 두려워서이다.

주역은 청년에게 사지가 멀쩡한 데 엉덩이 피부가 벗기어

일을 못 하겠다고 핑계 같지 않은 핑계를 대는

불일치의 직면 상황을 들이밀고 있다.


즉 청년은 자꾸 뒤로 미루는 회피의 모습을 보이지만

겉으로는 안 그런 척 공공연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주역은 청년에게 연막을 치며

뒤로 미루는 회피의 모습을 보이는

불편한 진실을 솔직하게 얘기해 가슴 아프게 한다.


그런 다음 려(厲, 생각거리 9편 참조)를 언급하여

청년에게 도전하기를 권하고 있다.

려(厲)는 한센병 환우를 외길에서 만나는 상황이다.


괴롭고 사납고 위태롭지만 눈 딱 감고 환우 곁을 뚫고 나가면

다음번에 환우를 또 만나더라도 큰 동요 없이 지나쳐 갈 수 있다.

이번에 도전하기를 멈춘다면 영영 도전할 기회는 잃어버려

매번 괴로워하며 뒷걸음쳐 빠른 속도로 현장을 벗어나려고 할 것이다.


주역은 청년에게 려(厲)의 상황과 같은 상황을 만났으니

도망치던가, 뚫고 지나간다던가 갈림길에 서 있지만

용감하게 도전을 택해 무기력한 상황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신뢰를 보인다.


주역은 그런 다음 무대구(无大咎) 즉 큰 비난거리는 없으니

툭툭 털고 일어나라고 격려하고 있다.

작은 비난거리야 있을 수 있으나 그 정도 비난거리는

청년 스스로 겪으며 이겨나가야 하지 않느냐고

도전 정신을 심어주고 있다.


주역은 짧게 말하지만

직면 상황을 만들어 청년에게 회피의 모습을 알게 하고


이어 려(厲)를 언급하여

② 회피의 모습에 굴하지 않고 벗어나갈 것을 믿는다고 신뢰를 주며


마지막으로 주역은 청년에게

③ 큰 비난거리야 의식해서 막아야 하지만 작은 비난거리 정도는

살다 보면 흔히 있는 일이므로 생활하면서 겪어내라고

도전 정신을 심어주고 있다.


주역의 말의 흐름에서 느낌이 오지 않는가?


SNS의 대화나 일상의 대화에서 기운이 축 처져 있는 친구에게

① 알게 하고, ② 신뢰를 보이며, ③ 도전 정신을 심어주는

방식으로 말을 한다면?!


참 좋을 것이다.

단, 앞선 자가 되어 잘 난 척하는 행태로

말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꼭 지켜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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