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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파노 Oct 06. 2023

권력욕과 사슴(록, 鹿)

-주역에 나오는 동물, 식물 그리고 무생물 9

여기 30대의 한 여성이 있다.

그 여성은 어린 후배 여성으로부터 패배를 겪어 

수치심을 만회할 기회만 찾는다. 

    

그러나 놓친 책임자 자리에 버금가는 자리는 

지금 사는 세상에도 

이웃한 세상에도 없다.     


지금 사는 세상은 소년 개혁가가 나서 

기득권 세력이 사회를 주무르고 있다고

개혁을 주장한다. 

사회는 어수선하기만 하다.      


결국 자기 성취의 길이 막혀있는 

그 여성은 위험을 무릅쓰고 

개혁의 소리를 쫓아가려 한다.     


후일 개혁이 성공만 하면 

놓친 책임자 자리에 버금가는 

권력을 쥐고 흔들 기회를 그리면서.     


남보다 우뚝 서려하는 

그 여성은 미지의 꿈속 세계를 

온통 장밋빛으로 물들여놓았다. 

개혁 세상은 꿈으로 가득한 

상상하기 좋은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여성의 한 맺힌 하소연을 듣고 난 후 

주역은 이렇게 말한다.      


육삼 씨

사슴 앞에 가까이 있는데

주위를 살펴 염려해 주는 사람이 없군요

마음에 물어보아 숲 속으로 들어가네요

현명한 사람(군자)은 조짐을 알아차려 

포기하는 것만 같지 못하니

가면 인색하군요.

[육삼(六三즉록무우(卽鹿无虞유입우림중(惟入于林中)

 군자기(君子幾불여사(不如舍(()]”     


여기 나오는 사슴은 어떤 동물인가?     


얼핏 보기엔 ‘위험한 동물’ 같이 보인다.

사슴을 잡는데 산속 사정을 

잘 아는 안내자가 필요하고

위험해서 홀로 숲 속으로 쫓아가는 것을 

경계하고 있으니.     


그러나 사슴은 위험한 동물이 아니다. 

사슴을 잡겠다는 욕심으로 쫓아가다 보면 

위험한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사슴은 순진무구한 착한 동물이다. 

글쟁이들의 묘사한 것에 따르면 

사슴은 우수에 찬 눈망울을 지닌

또 목이 길은 가냘픈 동물이다.     


그러나 제왕 자리를 놓고 

숫 사슴끼리 벌이는 싸움은 

처절할 정도로 박진감 있게 벌어진다.      


권력의 제왕을 나타내는 경주 금관은

사슴뿔을 상징화해서 만들어졌다.     


또 유방과 항우는 황제 권력을 두고 

서로 싸우는 전쟁을 축록전(逐鹿戰)이라 불렀다.      


그러고 보면 사슴을 

권력으로 은유한 것이 이해된다.      


다시 주역으로 돌아와

가냘픈 30을 넘긴 여성은 권력욕구를 달성해야 

책임자가 못된 수치심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여성은 권력을 향해  

물불 안 가리고 내달린다. 

소년의 개혁 소리는 검증도 안 되었고 

갖추어진 것도 없는 

모두가 불확실한 상황뿐인데도.     


아마도 주역은 그 여성에게 

권력욕만을 따라가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고 스스로 낭떠러지 쪽으로 

가는 것조차 모르니 재고하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주역은 그 여성이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해  

권력 욕심에 젖어든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 길로 가면 위험한 길이라고 

사전에 알려주는 안내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안내자는 옛날 같으면 

장량 같은 전략 참모로서 

권력으로 가는 길을 잘 짚어줄 것이다.

그런 안내자도 없으니 위험할 수밖에.     


또 주역은 그 여성 홀로 숲 속으로 들어가면 

길을 잃고 낭떠러지를 만날 수 있으니

혼자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린다.     


결국 주역은 그 여성이 현명하다면

소년의 개혁운동을 쫓아가지 말고 

포기해야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만약 포기하지 못하고 

개혁운동을 따라간다면 

내 마음만 소중히 여기는 

참으로 인색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권력욕은 참으로 위험하다. 

마약 같아서 한 번 권력의 맛을 들이면  

자기 자식까지도 죽인다. 

당나라의 측천무후처럼.     


우리는 경쟁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책임자 자리, 팀장 자리, 부장 자리 등 

자리에 연연하여 

주야를 가리지 않고 날을 세운다.      


자리가 바로 권력이 아닌가?

그러면 자리나 권력이 나쁜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다만 주역은 권력만 좇는 것은 위험하니 

군자처럼 현명하여서 

조짐을 재깍재깍 알아차리기를 바란다.      


조짐을 알아차리기는 쉬운 일인가?

어렵다.

현명함이 요구된다. 

특히 포기에 부닥치면 현명함은 흔들린다.     


포기 앞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존심이 불끈거리며

현명한 판단을 훼방 놓는다.      


그런데 우리는 포기 앞에서 

왜 그렇게 현명함보다는 

자존심을 더 앞장 세우는가?      


우리는 부정하나 여성이든 남성이든 

남보다 뒤떨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각자 마음에 질투의 화신이

있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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