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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파노 Nov 11. 2023

큰 열매는 먹히지 않는다
(석과불식, 碩果不食)

주역에 나오는 동물, 식물 그리고 무생물 14

주역에는 박(剝, 23괘) 나라가 나온다.

박(剝)은 ‘칼을 들고 표피나 가죽을 벗겨내다’이다.      


박(剝) 나라에는 

칼을 들고 벗겨내어 희생을 종용하는 

강도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벗김을 당해 어쩔 수 없이 

희생양이 되는 사람도 있다.      


주역(23-3)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벗기어 내는 것은 허물이 없군요

[박지(剝之무구(无咎)]”     


서른 살을 훌쩍 넘긴 여성은

여성들이 중심을 이루는 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해 외톨이로 살아간다.     


서른 살이 넘도록 

책임자 선발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 여성은 능력도 없는 사람이란 평판으로  

중심에 들어가지 못하고 

항상 주변 언저리에서 

빙빙 돌기만 한다.      


최고 실력자로서 상왕 노릇을 하는 

유일한 남성 상구는

불만에 가득 찬 그 여성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사회가 병들어 생기가 없다. 

여유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사회 분위기를 바꿔야 하지 않겠나?’라고 

명분 있게 설명하면서.


그러나 최고 실력자 상구는 

명목은 그럴싸하지만

실상 자기의 재산을 늘리려고 

강제로 돈을 내라고 종용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 여성은 가뜩이나 

능력도 없는 사람이라고 

따돌림을 당해 희생당하고 있는 처지에서

실력자의 ‘또 희생하라고!’라는 소리에

반발심이 머리끝까지 치어 오른다.     


이때 주역은 그 여성의 그런 하소연을 듣고 

위 지문처럼 

벗기어 내는 것은 허물이 없군요.”라고 말한다.


주역은 여성들로부터 왕따를 받은 그 여성에게 

불만이 머리끝까지 오른 것은 이해하지만

벗김을 흔쾌히 감수해야 

남들의 비웃음을 면하는 길이라고 이른다.     


왜 그럴까?

따돌림으로 외톨이 신세인 그 여성은

다른 여성과 똑같이 벗김을 당할 때

희생당한다는 동질 의식을 바탕으로

비웃음의 대상에서 자유롭게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폭도처럼 재물 욕구가 큰 

실력자 상구에게 주역(23-6)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크고 충실한 열매는 먹히지 않습니다

군자처럼 현명한 사람은 가마를 얻을 것이며

소인 같이 마음이 좁은 사람은 

오두막집 같은 거처마저 벗김을 당하게 됩니다

[석과불식(碩果不食군자(君子득여(得輿

소인(小人박려(剝廬)]”     


주역은 크고 충실한 것은 잘 두었다가 

자식에게 남겨 주는 것처럼 

현명한 사람이면 아랫사람에게 베풀어 

가마를 타고 여유롭게 생활할 것이며,      


마음이 좁은 사람은 

아랫사람의 빈한한 거처마저 

벗겨 먹는다고 얼굴을 뜨겁게 만든다.      


이때 나오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은 

좁게는 위에서 보다시피

자식 사랑에 푹 젖은 부모의 마음을 나타낸다.     


또 넓게는 크고 충실한 열매는 

끝까지 귀하게 취급되었다가 

이듬해 종자용으로 쓰여 

바로 먹히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실력자 상구는 은퇴할 시기가 되었지만 

사사로운 욕심을 못 이겨 

권력을 쥐락펴락 농단하는 사람이다.      


그런 상구에게 석과불식(碩果不食)을 얘기해서 

넌지시 그에게 부닥친 상황을 직면시킨다.      


즉 이제는 죽을 날도 멀지 않은데

소인 같은 삶을 살지 말고 

군자처럼 대접받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든 

늘그막에 욕심을 부리면 

추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자식도 미덥지 않아 

그냥 죽을 때까지 재산을 들켜 쥐고 

놓지 않으려 한다.      


석과불식을 깨우치지 않아서가 아니다.

어느새 자식도 못 믿는 

신뢰 부족의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언론에는 전 모씨의 사기 사건에 

전직 펜싱 선수가 연루되었다고 시끌시끌하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이해하기도 어려운 사기 사건에 

왜 다들 연루되어 피해를 받았을까?     


신뢰 부족 사회가 되면 될수록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듯 

신뢰를 그리워하게 만들기 때문은 아닐까?      


나만의 크고 좋은 석과(碩果)를 

죽기 전까지 끼고 살고 싶다는 욕심은  

불식(不食)한다는 

교훈을 망각하게 하니,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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