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감각

by 스테파노

독일에서 잠시 살 때이다. 대부분 한국인은 아메리칸 스쿨 근방에 모여 살았다. 집의 아이들이 학교 다니기 편한 곳으로 주소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이웃한 부부와 집 근처 공터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때 D사 독일법인에 근무하던 C 씨 가족들은 갑자기 서울에 일이 있어 다녀온다고 했다. 집을 약 2주일 정도 비워 놓고 간다고 말하면서.


이때 우리 집사람이 “누가 집을 들고 가나요? 잘 보아 드릴 테니 다녀오세요.”라고 말했다. 밋밋하던 분위기가 갑자기 그 말 한마디에 좌중에 웃음이 빵 터졌다. 서먹서먹하던 이웃집과의 관계도 많이 가까워졌다.


많은 사람은 위의 이야기를 두고 “그게 무슨 웃음거리가 되나?”라고 시큰둥하게 반응할지도 모른다. 왜? 유머는 감각이니까. 감각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유머는 웃음 코드가 서로 맞아야 웃을 수 있다. 웃어야 할 순간에 웃는 사람. 웃어야 할 순간을 놓치고 한참 지난 뒤에 피식 웃는 나 같은 사람은 유머 감각이 떨어진 사람이다.


또 유머는 감각이기에 상황의 영향을 받는다. 서먹서먹한 사이일 때, 또 서로 웃고 지낼 일이 별로 없을 때, 웃기지도 않는 유머라도 다 같이 파안대소로 웃는다. 딱딱한 분위기를 웃음으로 무너뜨리기 위해.

이웃한 D 상사의 집과는 눈인사만 의례적으로 나누고 지내오던 사이였다. 집사람은 조금은 조심스러우나 그런 건조한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나섰다고 후에 나에게 말했다.


유머는 어떤 성질 때문에 사람을 기분 좋게 웃길까? 좌중을 웃기려면 상식적으로 늘 상 지내는 사회에서 비상식적으로 보는 세계가 있어야 한다. 비상식적인 이면을 보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뒤집어 보아야 한다.

그러려면 뒤집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것도 순간의 감각적인 언어로.


예컨대 위의 이야기 중에서 집은 부동산이다. 움직일 수 없다는 상식적인 관념을 밑에 깔고 집 이야기는 흐른다. 그런데 움직일 수 있는 동산의 개념으로 말을 전개하니 상식을 파괴하는 이야기가 사람들을 웃게 만든다.


유머 감각을 키우려면 부단히 사물을, 언어를 뒤집어 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집사람은 여형제들 즉 처제들끼리 자주 모이는 편이다. 그런데 얘기를 쫓아가다 보면 산에서 강으로, 처녀 시절에서 다 큰 어른이 되었을 때로 화제의 중심은 종잡을 수가 없다. 화제를 쫓아가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은 그냥 듣기만 해야 한다.


화제는 그야말로 삼라만상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끊임없이 뒤집어 보는 세상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특히 나 같이 웃음 코드가 부족한 사람은 이야기는 벌써 저만큼 흘러갔는데 한참 지난 후에 이따금 피식 웃는다.


얘기의 흐름이 삼라만상을 넘나더니 집사람은 재치를 다투는 코너에서도 우세하다. 한 번은 직장에서 모 대학 선진 연구 과정에 다닐 기회가 있었다. 과정이 끝나 이따금 있는 정기 모임에 집사람과 같이 갔었다.

넌-센스 퀴즈 코너 시간이었다. ‘왜 발바닥이 속으로 옴팡지게 파였을까?’라는 문제가 나왔다. 대뜸 집사람이 나서 ‘지구가 둥글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정답이었다.


나는 집사람에게 그런 문제를 알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집사람은 ‘아니 그냥 순간적으로 그런 것 같아서.’라고 대답했다. 평소의 사물의 이면을 뒤집어 보는 습관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집사람은 두려움과 공황장애 초기 증상을 이따금 호소하였다. 나는 원인이 나에게도 있을 것이나 집사람의 뒤집어 보는 습관에서 생긴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뒤집어 보는 것에 익숙하면 부정적인 상황에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유머 감각은 타고나야 할 것이다. 사물의 이면을 보는 것은, 특히 상식적인 사회에서 비상식적인 현상을 이야기하며 웃음을 자아내는 재치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야말로 부단한 연습의 결과일 것이다.


유머 경영 등 유머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참으로 많이 한다. 그러나 나는 유머 감각을 익히려고 유머 전문 책을 많이도 읽어 보았다. 그러나 눈으로는 이해되나 실제에 가서는 감각적으로 하는 유머를 따라갈 수 없었다. 아재 개그나 외워서 하는 수준으로는 유머 감각을 쫓아갈 수 없기에.


두려움은 유머 감각과는 별개일 것이다. 나는 다 커서 배운 얄팍한 심리학적 지식으로 귀한 유머 감각을 폄훼하다니. 웃음 코드가 한참 떨어지는 사람을 만나서 재미없는 세상을 살게 한 나의 잘못이 큰데. 나는 두려움을 유머 감각으로 치유할 방도는 없는지 책을 뒤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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