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도 조급증을 앓으니

by 스테파노

‘천 리 앞을 내다보는 것보다 한 치 뒤를 돌아다보는 것이 어렵다.’라고 한다.


왜 그럴까?


'앞‘이 주는 매력이 천 리만큼 크기 때문이다.

’ 앞‘은 창창하다, 의기양양하다, 경쟁에서 이기다, 등을 의미한다.

경쟁에서 이겨 의기양양해서 창창한 앞길을 걸어간다고 생각할 테니.


반면 ‘뒤’가 주는 매력은 한 치만큼 작기 때문이다.

‘뒤’는 처진다, 움츠러든다, 경쟁에서 멀어진다를 의미한다.

경쟁에서 지고 움츠러들어서 축 처진 모습으로 뒤편 길로 접어들어야 할 테니.


경쟁은 피할 수 없다.

사는 것이 경쟁이니까.


고개를 들어 먼 산을 보면 한가로운 산속에서도 경쟁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활엽수에 치어 소나무는 기다랗게 볼품없이 머리에만 솔잎을 인체 햇볕보기 경쟁을 한다. 그 늠름한 소나무도 경쟁 앞에선 쪼그라든다.


경쟁은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그러려면 경쟁을 내 방식대로 하여야 할 텐데.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코카스 경기처럼 ‘각자 알아서 출발하고 또 알아서 멈추는 경쟁’을 따라 할 수도 없고?

도도새처럼 ‘모두가 우승자’라고 현명한 판정을 내릴 수도 없고?

경쟁 규칙도 우승자 판단도 내 손으로 어쩌지 못하는 신이 알아서 하니.


그렇다면 어떻게 즐기면서 경쟁해야 좋을까?


단거리 경쟁이 아니라 초장기 거리 경쟁이라면?

요람에서 죽기까지 초장기 경쟁이라면?


그러면 즐기면서 할 수도 있을 테니.

한 치 뒤를 돌아다보면서 여유를 가지고 경쟁해도 될 텐데.

그래서 천 리와 한 치를 비교해보아야 가치도 없게 만들면?

한 치밖에 되지 않은 뒤를 살짝살짝 살펴보아도 될 텐데.


그러나 젊음은 조급증을 달고 산다.

조급하기에 오동나무를 보고 춤춘다.

거문고가 다 만들어진 줄 알고.


이 나이에도 젊었을 때처럼 조급증을 앓으니.

경쟁에서 멀어질까 봐 벌에 쏘인 사람처럼 호들갑을 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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