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백수를 넘기고도 1년을 더 사셨다. 할머니 어렸을 때 이야기는 들은 바가 없어 잘은 모른다. 다만 13살인가 일찍 시집와 아들을 못 낳는다는 설움을 많이 당하셨다고 한다. 위로 셋, 딸을 낳고 넷째를 갖고서야 아들을 보았다. 연이어 아들을 낳고 밑에 또 딸을 낳았다.
그렇게 설움을 당한 후에 낳은 아들을 그것도 둘 전부를 6.25 전쟁 때 군대를 보냈으니 할머니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하도 애달파하시는 모습을 옆에서 보기 안타까워 할아버지는 “임자 담배라도 피우면 기분이 나을 거야.” 하고 피우던 담배를 억지로 할머니께 권했다고 하신다.
할머니는 그 이후로 담배와 인연이 되어 그것도 필터가 없는 막담배를 하루 2갑씩 태우셨다. 담배를 하루도 안 빼놓고 피우시니 할머니한테 최대 선물은 담배였다. 할머니는 그렇게 담배를 많이 태우셨지만 백 한 살에 돌아가셨으니 담배와 수명과의 관계는 잘 모르겠다.
할머니는 담배를 많이 태우셨다는 것만 빼고는 장수할 만한 여러 가지 요인을 갖추었다. 할머니는 식사하실 때 물을 말아서 드시는 것을 싫어하셨다. “밥을 왜 죽을 만들어 먹어?”라며 국이나 물에 마셔서 드신 경우가 없었다.
대신 꼭 비빔밥을 만드셔서 드셨다. 따로 반찬거리를 만들어서 정식으로 비빔밥을 만들어 드시는 게 아니다. 그냥 김치 석권 이것저것 넣어서 비빔밥을 만들어 드셨는데 거의 매끼 그런 식이었다. 나는 물론 동생들은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습관은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서일 것이다.
또 소고기, 돼지고기 등을 드시긴 하시는 데 한 번에 많이 드신 경우가 없다. 고깃국을 드시고 나서도 4~5일 정도는 “비린 것을 먹었더니 입안이 개운치 않아.”라고 고깃국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푸성귀 등 담백한 것만을 드셨다.
생선을 넣어 국을 끓이면 머리 쪽은 할머니 몫이었다. 생선 머리가 맛있다는 것을 알고 당신이 드신 것이 아니다. 살코기가 붙은 생선 토막은 커나가는 얘들의 몫이라고 양보하다 보니 그리된 것이다. 주전 벌이 등 간식류는 담배를 피우셔서 그런지 일절 안 드셨다.
술은 밀밭에도 못 갈 만큼 한잔도 안 드셨는데 술은 인근에서 소문이 날 정도로 잘 담그셨다. 인근 학교 선생님이나 동네 사람들은 “호랑 할머니 손으로 만든 술을 먹어야 술을 먹었다고 하지.”라고 큰소리로 외치며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 거의 일상처럼 되었다.
한편 성격 측면에서는 아주 직설적이다. 가슴속에 넣어두는 법이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털어내신다. 할머니 당신의 정서상 건강은 매우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시는 어머니가 스트레스를 받아 잔병치레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런 할머니 성격을 동네에서도 알아주어 할머니를 두고 호랑 할멈이라고 불렀다. 호랑이처럼 강하다는 뜻일 것이다. 또 할머니는 참으로 부지런하셔서 가만히 앉아있는 경우가 없다. 백수가 넘어서도 소죽을 담은 양동이를 양손에 들고 소들을 돌볼 만큼 뭔가 하실 일을 찾아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셨다.
그리고 하루의 일과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해가 뜨면 일어나시고 해가 지면 누우시는 해의 리듬에 충실한 편이었다. 체격은 아담하신 편이나 몸에 군살 하나 없이 마른 체격이며 돌아가시기 전까지 허리는 언제나 굽은 적이 없이 그렇게 곧게 일을 하셨다.
돌아가실 무렵은 한 열흘 감기 기운으로 고생하시다 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어머니한테 말씀하시길 “나 때문에 에미가 고생한 것 같아 미안하다.”라고 했다고 하신다. 맺힌 것 없이 풀 것은 풀고 가는 성격임을 돌아가시면서도 그렇게 하셨다.
돌이켜 보면 비빔밥 위주의 식사 습관, 비린 것은 먹되 즐겨하지 않고, 술, 간식을 일절 안 하고, 깡마른 체격에, 직설적 성격으로 속에 쌓아두지 않고 내뱉는 체질이며, 언제나 일을 찾아서 하는 부지런한 성격 등이 할머니가 보여준 나름의 장수비결이다.
이상 언급된 모든 점이 장수하는 데 보탬이 되었을 것으로 수긍이 가지만 담배만큼은 예외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담배가 할머니한테 육체 건강 면에서는 부정적 효과를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정신건강 면에서는 긍정적 효과가 더 컸을 것이다.
할머니는 모든 고민, 걱정을 연기로 풀어낸 것이 건강에 득이 되지 않았을까? 6.25 전쟁 때 군대 간 두 아들의 생사 걱정을 담배 연기에 실어 날려 보낸 것처럼. 어두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우두커니 앉아서 오늘은 무슨 걱정을 연기에 실어 날려 보내지(?)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하시면서 쓴 막담배를 억지로 태우신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