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디 1
나는 이따금 ‘매천야록’을 떠들러 본다.
‘나는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도모지(도무지) 모르겠다.’
여기서 도모지(도무지)는 사전의 풀이로 ‘아무리 해도’라는 뜻이다. 이 말은 폐일언(蔽一言)과 같은 의미로 쓰였다고 황현 선생은 ‘매천야록’에서 기술하고 있다.
‘폐일언’은 사전상 의미로 ‘이러니 저러니 할 것 없이 한마디로 휩싸서 말하다.’라는 뜻이다. 도모지(도무지)와 폐일언이 잘 연결이 안 되는 것 같아 폐일언의 뜻을 대입해 보았다.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러니 저러니 할 것 없이 한마디로 말해서 잘 모르겠다’라고 풀어서 쓰면 같은 뜻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대원군이 집권하고 있을 때 천주교 박해로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 포도청의 형 담당하는 사람도 살인하기에 염증을 느낄 만큼 죽는 사람이 많았다.
이때 형 담당자들은 죄인에게 백지 한두 장을 얼굴에 붙이게 하고 물을 뿌리면 죄인은 숨이 막혀 순식간에 죽었다고 한다. 도모지(도무지)는 ‘종이로 얼굴을 얇게 입히다’라는 塗貌紙에서 유래되었다고 황현의 ‘매천야록’은 기술하고 있다.
마디 2
정사를 읽는 것보다 야사를 읽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
어떤 사람은 역사를 바르게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야사를 기피하기도 하겠지만
책을 재미 삼아 보는 사람한테는 야사를 따를 수 없다.
황현 선생의 ‘매천야록’은 야사이다.
선생께서 돌아가시며 유언으로 이 책이 있음을 극비로 하라고 하여
깊이 감추었다가 후일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번역해서 책으로 출간된 해는 1994년도이다.
선생께서는 국치의 슬픔을 못 견디고
지식인 노릇 하기가 정말로 어렵다고
절명 시를 쓰고는 55세로 생을 스스로 마감하였다.
선생이 ‘매천야록’을 쓴 시점은 알려지지 않아 잘 모르겠다.
1894년 이전까지는 갑오 이전, 이후로 나누어 편집되었으며
이후부터는 거의 매일 쓰다시피 기록되어 있다.
‘매천야록’을 쓴 시점을 산술적으로 계산해 보니
선생이 나신 때가 1855년이고
매일 집필한 시점은 1894년이니 39세이다.
그러나 ‘매천야록’ 1권의 사건 기록을 보면
고종이 등극한 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고종이 등극한 때를 역산하여 보면 1863년이니
선생의 나이 8세이다.
설마 이렇게 빨리 쓰셨을 리는 없고
후일에 자료를 보완해서 썼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좌우지간 1864년 갑오년을 시점으로 언급된 사건이 많으니
그 후에 편집했을지라도 선생의 역사적 관심은
이 시기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처럼 이른 나이에 역사의 바퀴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관심을 가진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다.
‘매천야록’의 시작되는 부분에
청도 사람 박유봉에 관해 기술한 것이 나온다.
박유봉은 관상을 잘 보는 사람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자기 얼굴을 보고 한쪽 눈이 애꾸가 되면
귀인이 될 것으로 여겨 스스로 눈을 찔러 애꾸가 되었다.
그때 고종은 나이 17세에 궁녀 이 씨로부터 아들을 낳았다.
고종은 그 애를 원자로 삼으려고 추진하였으나
대원군이 ‘중궁에 만일 경사가 있으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라고 반대하였다.
고종은 대원군을 의심하고
관상가 박유봉을 불러 아이의 관상을 보게 하였다.
박유봉은 ‘조금만 기다려보시지요’라고 대답하였다.
이것이 사단이었다.
고종은 벌컥 화를 내며 대원군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오해했다.
그런 사건이 있고부터 얼마 안 있어 박유봉은 사망하였다.
사람들은 박유봉이 사사된 것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황현 선생은 어떻게 알았을까?
‘매천야록’의 기술에 따르면 구례에 살던 유계관이란 사람이
무과에 합격하여 박유봉과 친하게 지냈다.
하루는 그의 집에 가보니 박유봉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깜짝 놀라 그 이유를 박유봉에게 물었으나 손을 저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잠시 후에 사망하였다.
이때 이런 사실을 유계관으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매천야록’에는 기술되어 있다.
‘매천야록’은 정사는 아니어서 사실을 믿기 어렵다.
그러나 이처럼 직접 들었다든지 등
가능하면 사실로 인식될 수 있는 사건을 직접 썼다.
선생은 그 시점의 알려진 저간의 사실을
가능하면 사실대로 쓰려고 노력하였다.
도모지가 나온 유래도 그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10대, 20대는 우리 때 같으면 놀기도 바쁠 때이다.
참으로 역사의식이 남다른 분이다.
고종 1년부터 시작하여 1910년 경술국치까지
반세기 한반도 역사를 통틀어 보아도 험하고
또 돌이켜보아도 험한 꼴의 역사는 이 이상 없을 것이다.
이 시기에 대원군의 전횡, 안동 김 씨의 몰락,
척신들의 어지러운 정치, 대원군과 민비와의 다툼,
나라를 빼앗긴 국치의 날 등을 보며
하루하루를 분노하고 하루하루를 고뇌하며 쓰셨을 것이다.
흔히 어느 나라 사람은 자료나 기록을 잘 정리한다고 감탄하지만
이만큼 장구한 세월 동안 써 온 기록물이 또 있을까?
내 짧은 상식으로는 잘은 모르겠지만
나라나 고금을 통틀어 아마 없거나
수위의 반열에 오를 것이다.
정말로 선생께서 존경스럽다.
야사의 성격상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가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익히 들어 봄 직한 그 시대 역사상의 인물들의
다른 이면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