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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로 일하면서 수백 건의 이직 협상을 지켜봤다.
그중 꽤 많은 후보자들이 연봉 협상 자리에서 같은 실수를 한다. 전 직장 연봉을 조금, 혹은 꽤 많이 부풀려서 말하는 것이다. 처음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오퍼도 높게 나오고, 입사도 순조롭게 진행된다. 그런데 몇 달 뒤 연락이 끊기는 경우가 있다. 사유는 대부분 비슷하다. 레퍼런스 체크에서 수치가 맞지 않았거나, 입사 서류 제출 과정에서 원천징수영수증이 공개됐거나.
이 글은 그 현장을 직접 목격한 입장에서 쓴다.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전 직장 연봉은 새 회사 오퍼의 기준점이 된다. 기업 인사팀 입장에서도 "현재 얼마 받고 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계산이 들어간다. 숫자가 낮으면 오퍼도 낮아지는 구조다. 여기에 초봉의 복리 효과까지 더해진다. 지금 200만 원 차이가 3년 후엔 훨씬 벌어진다는 걸 후보자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계산에는 치명적인 변수가 빠져 있다.
헤드헌터 입장에서 보면 검증 수단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레퍼런스 체크. 외국계 기업과 규모 있는 대기업은 전 직장 HR에 직접 연락해 재직 기간, 직급, 연봉을 확인하는 것이 거의 표준 절차다. 후보자가 모르는 사이에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
급여 증빙 서류 제출. 입사 과정에서 최근 3개월 급여명세서 또는 전년도 원천징수영수증 제출을 요구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협상 단계가 아닌 입사 직전 제출 요청이기 때문에, 이 시점에 수치가 맞지 않으면 오퍼 자체가 취소된다.
입사 후 발각. 가장 위험한 케이스다. 재직 중 발각되면 징계나 해고 사유가 될 수 있고, 이 경우 경력 공백과 함께 이직 시 설명해야 할 짐이 생긴다.
업계 네트워크. HR 담당자들의 커뮤니티는 좁다. 특히 같은 업종 내에서는 한 번의 신뢰 훼손이 생각보다 빠르게 퍼진다.
이 질문이 핵심이다. 헤드헌터 입장에서 실무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합법적인 영역.
- 기본급만이 연봉이 아니다. 성과급(연간 평균), 식대·교통비·통신비 보조금, 스톡옵션·주식의 현재 가치까지 포함한 총 보상(Total Compensation)을 제시하는 것은 부풀리기가 아니다. 이 숫자가 기본급만 말했을 때보다 20~30% 높게 나오는 경우도 흔하다. 단, 상대방이 세부 내역을 물어볼 경우 breakdown을 설명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 주의가 필요한 영역. 현재 협상 중이던 금액이나 아직 확정되지 않은 성과급을 포함해 제시하는 경우다. 거짓은 아니지만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수치라면, 근거를 명확히 하는 게 낫다.
명백한 허위. 기본급 3,500만 원을 연봉 4,500만 원으로 말하거나, 이미 퇴사한 회사의 연봉을 현재 재직 중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검증 가능한 수준의 허위 진술이다.
수백 건의 협상을 보면서 실제로 높은 오퍼를 받아낸 후보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과거 연봉을 기준으로 협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장가치를 기준점으로 삼아라. "현재 연봉이 얼마입니다"가 아니라 "유사 포지션의 시장 평균이 얼마이고, 저는 그 수준을 기대합니다"로 말하는 순간 협상의 기준 자체가 바뀐다. 과거가 아닌 현재 시장이 기준이 되는 것이다.
먼저 숫자를 말하지 마라. 앵커링 효과는 협상에서 실제로 작동한다. 먼저 숫자를 말하는 쪽이 불리하다. "어떤 범위를 생각하고 계신가요?"로 상대방 카드를 먼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협상력이 달라진다.
기여 가치를 수치로 제시하라. "저는 전 직장에서 이런 성과를 냈고, 이 포지션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는 연봉 협상을 연봉 대 연봉 비교가 아닌 ROI 협상으로 전환시킨다. 기업 입장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논리다.
헤드헌터 입장에서 솔직하게 말하면, 연봉 부풀리기는 과거보다 훨씬 위험해졌다. 검증 프로세스가 강화됐고, 도구도 많아졌다. 리스크 대비 기대 수익이 맞지 않는 베팅이다.
협상 테이블에서 가장 강한 후보자는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시장 가치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준비에 에너지를 쓰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결과적으로도 더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