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냐. 나도 아프다.
오늘 아침은 그리 상쾌하지 않았어.
나도 상사지만, 어제 더 높은 상사로부터 받은 무지막지한 과제를 우리 팀원에게 알려줘야 하는 날이거든.
솔선수범해야 하니 누구보다 빨리 사무실에 도착을 해.
어렸을 때는 상사들이 빨리 출근하는 이유가 부하 사원들에게 부담을 주거나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 아침 잠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곤 했어.
그런데 막상 상사가 되어보니, 잠이 잘 안와.
나의 상사에게 받은 업무도 업무지만, 팀원들을 잘 돌보고 이끌어가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까지 더해졌거든.
가뜩이나 딸린 가족도 있어서 무거운 어깨가 덕분에 좀 더 무거워졌어.
나는 항상 다짐해왔어.
내가 상사가 되면 내가 싫어하던 모습의 상사는 절대 네버 되지 않겠노라고.
아마, 이것도 '불면'의 큰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
"얘, 얘들아... Good......??? 모닝?"
우리 팀원들이 하나둘씩 출근을 하기 시작했어.
오전 9시. 팀원들과 스탠딩 미팅을 할 시간이야.
다들, 얼굴은 굳어 있고, 어제 과음한 친구들은 헤롱헤롱 대고 있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생기가 없어.
어려운 과제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 하는데, 숨이 턱 막혀와.
주어진 과제를 해내기 위해서는 팀워크와 열정이 필요할 텐데, 아침 팀원들의 모습을 보니 점점 자신이 없어져.
아... 다급한 마음에 아침부터 설교를 시작하고 말았어.
주인의식, 열정 뭐 이런 거.
팀원들의 얼굴은 점점 더 굳어져.
아침은 항상 'Good Morning'이 되어야 하는데, 팀원들 모습을 보고 조급해진 나는 내가 가장 싫어하던 '상사'의 잔소리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말았어.
나의 얼굴도 굳어지고 말.았.지.
"보고 또 보고, 얘들아 중간 보고 좀!"
오늘은 나보다 높은 분께 보고가 있는 날이야.
오늘 아침의 굳은 얼굴들은 어제 늦게까지 보고서를 만드느라 고생한 탓이기도 할 거야.
사실, 오늘 보고드릴 자료를 어제 받아보고는 깜짝 놀랐어.
난 분명히 제대로 지시를 하고 방향을 설정해준 것 같은데, 내가 생각한 자료와는 완전 다른 자료를 받았거든.
내가 지시하고 원한 내용이 아니라고 하는 순간, 우리 팀원의 얼굴엔 '그럼 진작 제대로 알려 주지, 왜 이제 와서 그래?'라고 분명히 쓰여있었어. 사실, 나도 상사에게 가장 많이 (속으로) 많이 했던 말이야.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중간중간' 나에게 조금 기별이라도 했다면 바로잡았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솔직히, 일을 지시한 후에 바로 바로 확인을 하고 싶었지만 왠지 못 미더워하는 것 같아서 믿고 기다렸거든.
아무리 궁금해도 기다리기로 했었어. 난, 우리 팀원을 믿으니까.
역시, 묻거나 확인을 하지 않으니 나에게 먼저 가져오진 않더라고.
'중간보고'가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었는데, 정말 그래.
"얘들아, 중간중간 나에게 진행 과정에 대해 조금이라도 좀 알려줄래? 그럼 어젯밤 같은 일은 많이 줄어들 텐데..."
"좀, 외롭다...!"
상사에게 불려가서 우리 팀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어.
우리 팀의 실적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두 명의 진급 대상자 중에 한 명만 진급을 할 수 있다는 거야.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그러나 최대한 정중하게 내 의견을 피력했어.
둘 다 좋은 친구이고, 누구 한 명이라도 진급 누락하게 되면 나머지 한 명은 뭐가 되냐고.
실적에 따른 것이라, 나의 상사도 어쩔 수가 없었대.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할까, 난 누구를 선택해서 진급을 시켜야 하나... 맘이 좋지 않았지.
무거운 마음으로 자리에 와보니, 몇몇 친구들은 벌써 점심을 먹으러 나갔어.
그나마 있던 친구들과 구내식당을 갔는데, 내 옆에 앉으라며 팔꿈치로 서로를 밀어내고 있더라고. 안보일 줄 알았나 봐. 난 다 보이는데.
실적에 시달리다 보니, 밥 먹다 업무 이야기가 나왔어. 나도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어.
난, 밥 먹을 때 '일'이야기를 하는 몰상식한 상사가 되어 버렸지.
무엇보다, 내가 제일 싫어하던 상사의 모습이었다는 것에, 밥도 잘 안 넘어가고 소화도 잘 안되더라.
갑자기, 뭔가 모르게 이러한 감정이 느껴졌어.
'아... 외롭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가 봐...!"
괴로운 마음이지만, 누구를 진급시킬 것인가에 대해 마음의 결정을 내렸어.
대상자인 두 친구는 진급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아니 충분한 자격이 되고도 남는 역량을 갖추고 있었어. 그런데, 이 중 한 명을 고르라고? 갑자기 잔인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선택을 해야 했어.
누구를 선택했을까?
같은 역량의 사람이라면? 그래 Attitude를 봤어.
좀 더 긍정적인 사람.
커피 한 잔 하자며 먼저 다가와 준 사람.
빈 말이라도, 내 셔츠가 멋있다고 말해 준 사람.
점심 때나 회식 때 내 옆에 흔쾌히 와서 앉아 준 사람.
중간중간 내가 궁금해할까 봐 일의 진행 과정을 귀띔해 준 사람.
내가 업무를 부탁하거나 지시했을 때 진심이든 아니든 보다 덜 찡그리는 얼굴로 받아준 사람.
마음속 어느 골짜기가 있는 산봉우리에서 '엽기적인 그녀'의 그녀처럼 외쳤어.
정말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는 (외로운)'사람' 인가 봐~!
"Voice'sss' of employee"
내가 바랐던 상사는 부하 직원의 의견을 잘 들어주는 상사였어.
그래서 가장 불만이 컸다고 느낀 '회식'문화를 개선하고자, 회식의 형태를 좀 바꾸어보았어.
막내의 의견을 존중해서 술보다는 문화 활동, 그리고 맛집 위주로 회식을 진행했지.
많이들 좋아 보이고 행복해 보여서 그나마 위안이 좀 되었어.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서, 또 다른 목소리가 나오더라고.
아니,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서로 불만도 쌓이고 풀어야 하는데 "찐~하게" 한 잔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래야 서로 쌓인 것도 풀고 술김에 불만도 이야기하는 거 아니냐고.
상사가 아닐 땐 내가 내는 목소리가 하나였는데, 상사가 되고 보니 내가 들어야 하는 목소리는 정말 많더라고.
그 어느 것 하나도 쉽게 흘려 버릴 수 없는.
'보이시스스스스 오브 임플로이!'
"미안해, 나도 상사가 처음이라..."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그래, 맞아. 내가 상사가 되고 보니 그래.
내가 그토록 미워하고 싫어하던 상사의 언행을 내가 하게 되면서, 나도 나 자신에게 적잖이 실망을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동안 내가 모셨던 상사들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좀 되더라.
물론, 난 아직도 자리나 위치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상사로서 '지향'해야 할 것과 '지양'해야 할 것은 구분해 갈 거야. 나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우리 후배들을 위해서 그리고 묵묵히 나를 따라주는 팀원들을 위해서 말이지.
가끔, 아니 자주 다짐하곤 해.
내가 더 잘 되어서 우리 팀원들을 더 잘 이끌어주고 싶다고.
그러니, 얘들아.
나의 상사가 잘 되어야 나도 잘 되고, 우리 서로가 잘 되어야 더 밝은 미래가 있다는 마음으로 우리 서로에게 최선을 다해보자. 가끔은 입장을 바꾸어 놓고서 이해도 하고 말이야.
내가 많이 미안해. 내가 좀 더 잘할게.
정말 미안해.
나도 상사가 처음이라....
P.S
안녕, 젊음?
오늘 하루도 잘 보냈어?
지난번엔 '상사 관리'에 대해서 이야기했었어.
그래서 오늘은 상사의 입장에서 이야기를해 봤어.
나도 지금 누군가의 상사이니 내가 느낀 것들.
또 내가 모셨었고 모시고 있는 상사들을 생각하면서, 그분들의 입장에서 글을 이어나가 봤어.
누구나 처음부터 상사는 아니잖아?
우리 젊음들도 이미 상사이거나, 아니면 언젠간 상사가 될 거야.
그러니 '상사'에 대해 잘 생각해봐.
나는 어떤 상사가 될지.
내가 상사라면 어떻게 할지.
(그리고 지금의 상사로부터 잘 배워. 좋은 것과 나쁜 것은 구분해서.)
우리 젊음들은 모두 멋진 '상사'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어.
그리고 우리가 한 번 회사를, 세상을 바꾸어보자.
우린 아직 젊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