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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y 28. 2019

때로는 자신을 괴롭혀야 한다.

그래야 산다. 그래야 일어날 수 있다.

"잘생기고 예쁜 얼굴 그렇게 쓸 거면, 나한테 줄래요?"


연예인들이 잘생기고 예쁜 얼굴을 망가뜨리며 셀카를 찍으면, 어김없이 달리는 댓글이다.

나는 연예인도 아니고, 잘생기지 않았지만 이와 비슷한 질문을 수차례 받는다.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그리 쓸 거면, 나한테 줄래요?"


물론, 정말로 누가 다가와서 하는 질문은 아니다.

스스로의 질문이자, 질책이자 반성이다. 이러한 연민의 채찍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댓글로 달린다. 내가 스스로 한 행동에, 스스로 댓글을 달고, 또 스스로 그것을 읽는다. 마음이 편치 않다. 악플이라고 볼 순 없지만, 소위 말해 뼈 때리는 나 스스로의 댓글은 어디가 아파도 아프다.


누구나 방황을 한다.

그리고 그 방황은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든다.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사람들이지만, 방황 앞엔 장사가 없다. 그건, 자기 계발서를 출간하고 스스로의 자부심을 가지자고 소리치는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도, 온전히 그 방황하는 마음을 되새기려 노력한다. 원인은 무엇인지,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그래서 나는 무얼 해야 하는지.


나의 방황은 크게 두 가지로부터 기인한다.


첫째, 방향을 잃었을 때.
둘째, 방향을 알고도 가지 않을 때.


'방향'은 정말 중요하다.

'무엇'을 '어떻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우선이다. 방향을 모르고 열심히 달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함이다. 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아야 빨리 갈지, 천천히 갈지를 선택할 수 있다. 때로, 무언가를 열심히 하긴 하는데 그 뒤에 허무함이 도사릴 때가 있다. 그럴 땐 '방향'을 서둘러 봐야 한다. 나는 맞는 곳으로 가고 있는지, 이것을 '왜'하고 있는지.


방향을 알았다면 '실행'이 뒤따라야 한다.

요즘 나를 짓누르는 억압은 실행하지 않는 스스로에게서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이 산더미인데, 그것을 실행하지 않고 놓치고 있는 자신. 때론,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말지'란 생각마저 든다.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하는 일'을 생성한다. '해야 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이 되기도 한다. 그 둘의 핵심은, 어찌 되었건 '실행'이다. 그래야 뭔가 이루어져도 이루어지니까.


때론 스스로를 괴롭혀야 한다!


솔직히, '방향'을 잃거나 '실행'하지 않는 스스로를 마주하기가 영 불편하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나를 마주할 땐 일말의 정도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들다. 마음이 편치 않고, 스스로 쪼그라든 나는 본능에 매몰된다. 건강을 생각하지 않고 먹어대거나, 할 일이 산더미인데 잠을 자는 경우도 있다. 그래, 어쩌면 그러해야 할 때일 수도 있다. 때론, 건강보다는 기분을 우선으로 초콜릿을 먹어야 하고 일이 산더미여도 쉬어가는 것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그러한 달콤한 위로가 반복된다면 다시금 나를 돌아봐야 한다. 그게, 혹시 '방향'을 잃고 '실행'을 하지 않고 있어서 인지는 아닌지.


어설픈 위로는 독이 된다.

어설픈 위로가 판치는 세상. 어른들의, 부모님의, 선생님의, 상사의 총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은 듣기 싫어서 그렇지 대부분 맞는 말이다. 그것에 뜨끔한 우리는 반성보다는 분노와 불만을 먼저 표출한다. 나를 괴롭히는 스스로의 목소리에게도 그렇다. '방향'과 '실행'에 대한 스스로의 댓글이 달리고, 자신을 위한 총조평판을 할라치면 모든 에너지의 스위치를 꺼버리며 반항한다. 결국,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할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때론 스스로를 괴롭혀야 한다.

다시 일어서게 만들고, 열정의 스위치를 올리는 건 결국 스스로를 향한 잔소리기 때문이다. 마음속의 나는 분화하여 방향을 잃고 주저 않고 있는 자신을, 또 다른 내가 부둥켜 일으키는 것이다. 주저앉았다고, 주저앉아만 있을 수는 없는 일. 잠시 쉬었다고 생각하고 다시 '방향'을 잡아 '실행'해야 한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목적은 명확해야 한다.

나를 파멸시키고자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추스르고 일으켜 세우기 위함이다. 어디로 갈지 모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스스로를 향한 측은지심. 그게 핵심이다. 아마도 나는 나를 평생 이처럼 괴롭히면서 살 것 같다. 그건, 내가 나 스스로를 평생 사랑하겠다는 다짐과 다름없다. 관심 없는 존재에게 하는 잔소리는 의미가 없으니까. 그럴 일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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