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니 인생은 OO(이)더라!

지금보다 더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갈 너희들에게

by 스테르담

인생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아, 나는 지금 무얼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 거지?'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교육을 받아서였을까.

'열심'이라는 말은 들어봤지? '하는 일에 마음을 다해 힘씀'이라는 뜻이야. 물론, 어떠한 일에 열심을 다한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야. 살아가는데 필요한 역량이기도 하지. 실제로 무언가를 진득하게, 꾸준하게 열심히 한다면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는 일이 꽤 있거든. '꽤' 있단 말은, 되지 않는 일도 있단 거야. 하지만, 아빠가 어렸을 땐 '하면 된다!'와 같이 열심히만 하면 무조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은 것 같아. 그래서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 있었다면 나의 '열심'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자책도 많이 했어.


요즘은 안 되는 일도 많아.

아니, 어느 시대나 안 되는 일은 있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었기에 그래 보이는 것 같아.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로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왔어. 그러다 보니 '개천에서 용 난다'란 말이 있었을 정도로, 열심히 실력을 갈고닦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어. 자동으로 위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알지? 마치 그것처럼 말이지. 그래서 무어라도 열심히 해야 했어. 목적도 모른 채, 왜 하는지도 모른 채. 그냥 열심히 살면 두 손에 무언가가 쥐어지던 때였던 것 같아. 그래서일까. 성장의 시대를 겪은 세대는, 요즘 세대를 일컬어 열정과 의지, 끈기가 없다고 말하곤 해. 자동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는 이미 멈췄는데도 말이야.


1980년대 일반 회사원 과장급 월급은 50만 원. (단순 연봉 600만 원)

서울의 아파트 한채 값은 약 1,200만 원이었어. 자, 그럼 돈을 받아 아무것도 안 하면, 2년 후엔 아파트를 살 수 있었겠다. 그렇지? 지금은 어떨까? 2017년 기준 임금근로자 월평균 소득은 287만 원이야. 단순 연봉으로 계산하면 약 3,500만 원에 못 미쳐. 참고로 서울 아파트 평균값은 (한국감정원 조사 기준) 약 8억 원, 이제는 숨만 쉬면서 23년을 버텨야 서울에 있는 아파트 한 채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이야기야.


나 때는 2년만 참으면 아파트를 한 채 샀는데, 너희는 끈기가 없고 절약을 안 해서 아파트를 못 사는 거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시대가 변했어. 성장은 멈추고, 부(富)는 고착화되었어. 그래서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을 해봐야 할 때야.


즉,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안 되는 것을 뻔히 알게 되니, 보이지도 않는 미래보다는 당장 눈앞에 있는 행복을 추구하는 시대가 되었어. '티끌 모아 태산'이 아니라, '티끌 모아 티끌'인 지금. '욜로'라는 삶의 방식을 맞고 틀림으로 재단할 수 없는 게 현실인 거야. 앞으로 너희 삶은 어떨까? 심하면 심했지, 더 나아질 것 같진 않아.


그래서 무조건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그 답에 가까워지는 이야기를 해보려 해.


첫째, 인생은 '방향'이다.


여기 열심히 달리는 한 사람이 있어.

정말 열심히 달렸어. 자신의 온 힘을, 영혼까지 끌어올려서 모든 근육을 쥐어짜며. 그런데, 결승선은 반대였던 거야. 아빠가 처음에 이야기한 것처럼, 무조건 열심히 살기만 한 모습이랄까. 결승선의 반대로 뛰고 나서는, 나는 열심히 했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를 자책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물론, 모든 달리기가, 우리의 삶이 결승선만을 위한 건 아니야. 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는 어느 등수 안에 들어야 할 때가 있어. 그것이 꼭 누군가와의 등수 싸움이 아니라도, 자아실현을 위한 목표지점일 수도 있는 거고. 중요한 건, 우리는 어디로 뛰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계속해서 알아차려야 한단 거지.


둘째, 인생은 '과정'이다.


살다 보면 넘어질 때가 있어.

시험에 떨어지거나, 원하지 않는 부서에 배치될 때처럼. 그런데 그 순간을 '끝'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해. 꾸역꾸역 일어나 실망스러운 마음을 다잡고 다시금 나아가야 하지. 그렇게 터벅터벅 걸어서 넘어졌던 그 순간을 돌아보면 의미를 찾을 수 있어. 아직은 나에게 때가 아니었던 일이었거나, 원하지 않은 일을 하면서 더 많이 배웠던 순간들. 그래서 그것들이 모여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깨달음. 만약, 넘어졌던 그 순간을 애초부터 '과정'이라 생각했다면 마음은 좀 더 편했을 것이고, 앞을 내다보며 더 적극적으로 그 순간을 (조금은) 즐길 수 있었을 것 같아. 시험에 떨어져 본 사람이 오답 노트를 만들 수 있고, 넘어져본 사람이 다시 일어나는 법을 알게 되니까.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 그럼에도, 지금 나에게 주어진 어려운 문제와 일들을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덜 조급해 할 수 있고 어느 정도의 여유가 생겨나. 그리고 그 '과정' 속에는 나에게 필요한, 내 인생에 도움이 될 무궁무진한 '의미'가 숨어 있다는 사실!


셋째, 인생은 '어떻게가 아니라 왜'다.


아빠가 다이어트를 혹독하게 했던 적이 있어.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 마구 먹어댔지. 짧은 시간에 살이 20kg이나 쪘었어. 다이어트에 도전하게 되었지. '어떻게 할까?'. 고기도 안 먹어 보고, 굶기도 해 보고, 나가 뛰어 보기도 하고. 근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 오히려 폭식을 일삼고, 운동은 귀찮아서 안 하게 되고. 그러니 자책만 늘어나고.

그러다, '어떻게' 보다는 '왜'를 생각하기로 했어. 왜 다이어트를 해야 할까? 첫째는 건강을 위해. 급격하게 살이 찌니 숨쉬기가 어려웠고, 그런 스스로를 자각하며 겁이 났었어. 둘째, 사회생활을 위해서였어. 스트레스로 굳은 얼굴, 헐떡이는 몸. 그 누구에게도 매력적이지 않았지.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사람에겐 '호감'이 매우 중요한 요소야. 사회생활을 잘해야 우리 가족이 먹고 살 수도 있는 거고.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게 되니, 더 큰 다짐을 하게 되었어. 자연스럽게 '어떻게'할까를 다시 고민하게 되었고, 아빠는 그냥 달리기보단 공을 가지고 하는 운동을 좋아한다는 걸 깨닫고는 스쿼시로 3개월 만에 20kg을 뺐던 거야. 그때 느꼈지. 아, 정말 '어떻게'보다는 '왜'가 더 중요하구나. '왜'가 정의되면 '어떻게'는 저절로 풀리는구나.

이건 다이어트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누군가에게 업무를 요청할 때나, 나에게 닥친 문제를 찬찬히 받아들이고 해결할 때 요긴하게 쓰이고 있어.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왜'를 묻는 학문이야.

더불어, '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고, 지금 이 순간이 '과정'임을 느끼게 해주기도 하고. 왜 사는지, 우리의 마음은 어떤지, 사람이란 존재는 무엇인지 등. 알 수 없는 답이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려는 사람들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해. 정답을 꽁꽁 숨겨 놓은 절대자에게 굴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이 인문학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거야. 인문학은 거창한 게 아니야.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생활과 삶 그리고 행동과 생각을 돌아보는 그 자체가 인문학이거든.


나는 그래서 나의 편지가, 너희들에게 인문학적 의미를 깨우쳐 삶의 지혜를 얻길 바라.

대신해줄 수 없는 너희 삶이기에. 너무나 소중한 그것이기에.

인생의 '방향'을 생각하고 '과정'을 즐기며, '왜'라는 질문을 자꾸 던지는 하루하루가 되길 바라고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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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모음]

'견디는 힘' (견디기는 역동적인 나의 의지!)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지 못했던 네덜란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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