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을 보며 배운다
"아빠, 제 마음이 좀... 미안해요...!"
첫째 너와 함께 운동을 할 때였지.
그래, 우리는 집 앞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뛰고 있었어. 물이 흐르는 쪽 어느 작은 모퉁이에 할머니 한 분 께서 앉아계셨고. 그 할머니께서는 보자기 위해 한 번에 전부를 구입해도 하루 일당이 나올까 의문이 드는 나물들을 늘어놓고 팔고 계셨지. 거동이 불편해 보이시는 할머니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나물들을 건사하며 허공을 바라보고 계셨던 기억이 나.
그때, 첫째 네가 할머니를 지나치며 말했던 말.
"아빠, (할머니를 보니) 제 마음이 좀... (왠지 모르게) 미안해요...!"
아빠는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단다.
할머니를 지나치며 순간적으로 느낀 그 감정은 아주 소중하고도 예쁜 마음이라 생각했어. 그리곤 바로 맹자의 '성선설'이 생각났지. '성선설'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선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이론이야. 해서 맹자는 그 믿음을 기반으로 '공손추편'에서 '측은지심'이란 말을 사용했단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은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짊의 극치이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의 극치이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이다.
- 맹자 [공손추편] -
다른 이의 어려움을 헤아릴 줄 알고, 그 어려움을 도울 줄 안다면 아빠는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해.
지난주에 영화를 두 편 봤는데, 우연찮게도 그 두 영화에서도 그러더구나.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란 질문엔 어려운 이를 돕는 이가 좋은 사람이라는 이야기 (영화 '증인')와 세상을 떠난 아빠가 아들의 꿈에 나타나 누군가를 돕는 것이 삶의 의미라고 말하는 장면 (영화 '사자').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네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까. 다른 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 우리 아이들은 참 좋은 사람이구나... 생각했지.
세상은 너무도 각박해졌어.
누군가 길에 쓰러지거나 폭행을 당해도 당장 나서는 사람보다는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는 사람이 더 많은 시대. 함부로 나섰다가 오히려 피해를 본 사람들도 많고. 점점 더 나이가 들어가면서 맞이하는 뉴스들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이란다. 측은지심이란 게 정말 있는 걸까? 성선설이 맞는 이론일까를 의심할 정도로. (물론,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하기도 했어)
생각해보니 아빠도 측은지심을 많이 잊은 것 같아. 그러니, 네가 본 할머니를 나는 보지 못했을 거고. 고백하자면, 너의 마음이 예뻐 보이는 만큼 아빠는 부끄러웠단다.
'측은지심'은 누구에게 칭찬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야.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드는 마음. 만약 어린아이가 막 우물에 빠질 것 같은 순간을 본다면 다 놀라고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돼. 맹자는 그것을 '사람들은 모두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다'라고 표현했어. (그래서 혹시라도 사람에게 잔혹한 일을 벌인 사람에게는 그를 가리켜 '금수'만도 못한 놈이다... 란 말을 쓰기도 해.)
하지만 경계해야 할 마음
그런데 말이야.
조금은 다르게 생각해야 할 부분도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 그 할머니가 안돼 보이거나 불쌍해 보인다는 건 사실 우리 생각이란다. 그분이 행복하지 못할 거란 생각을 무의식 중에 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런 생각은 편파적이고도 오만한 생각일 수 있단다. 우리는 그 누구의 행복이나 불행에 개입할 수 없어. 행복은 온전히 자신들만의 것이거든.
어쩌면 그 할머니는 소일거리로 여가 시간을 보내고 계신 걸 수도 있어.
앞마당에 나물을 심었다가 남는 것이 아까워 가지고 나와 계신 걸 수도 있고. 산책을 하거나 뛰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사람 구경'을 하고 계신 걸 수도 있거든. 건물 여러 채를 가진 어느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건강을 위해 폐지를 줍고 다니는 경우도 있단다. (세상이란 게... 참 복잡 미묘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느낀 너의 측은지심은 올바르다 생각해.
그것을 느꼈던 그때의 그 마음을 오래도록 잊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누군가 어려움에 있는 사람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는 마음. 상대방의 상황을 공감하는 마음. 결국, 그것은 스스로를 돕고 지켜낼 마음이란 걸 깨닫게 될 거야. 아빠도 좀 더 노력할게. 세상살이가 팍팍해도 우리 아이들이 느꼈던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껴볼 수 있도록.
너희들을 보며 배운다.
일깨워줘서 고마워.
있어줘서 고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