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마음먹은 대로 실천하지 못할까?
스스로를 사랑하고자 하는 몸부림
마음을 먹다!?
마음은 먹을 수 없어.
그건 너희들도 잘 알 거야. 마음은 물리적이지 않지. 만질 수도, 요리할 수도 없고. 그런데 그 의미에는 공감하지? 단순히 무엇을 하겠다는 결심보다, 더 큰 범주의 다짐이라는 것. 이 비유적인 표현은, 대개 어떤 자극을 받았거나 지금 자신의 모습에 크게 만족하지 못할 때 사용되곤 해.
아빠는 마음을 자주 먹는단다.
마음먹은 대로였다면, 아빠는 오늘 어학 공부를 1시간 했어야 했고, 평생 다이어트 체질이니 밖으로 나가 적어도 30분은 뛰었어야 해. 글도 몇 편은 썼어야 했고, 출판 준비 중인 매거진의 개고도 했어야 했어. 구석에 읽으려고 쌓아둔 책을 하나라도 집어 들어야 했고, 한 번 읽은 책의 복기도 펜을 들어 노트에 한 자, 한 자 의미를 담아 눌러써야 했단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지만 매일 있는 일이라 자연스럽게도) 마음먹은 일을 결국 하나도 하지 못했어.
오히려 스스로를 괴롭히며 먹는 걸로 그 압박감을 회피하고, 글을 쓰고자 하는 소재는 메모지에 차곡차곡 적었지만 그것은 글로 승화되지 못하고 그저 쌓여가고만 있지. 납기가 다가오는 일들에 불안해는 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못난) 자신을 발견하곤 해.
이렇게, 마음을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결국 가장 힘든 건 나 자신이란다.
자괴감이 생기고, 자신감마저 떨어져 사방에선 '슬럼프'의 기운이 들쑥날쑥하는 느낌이야. 자신과의 싸움에서 항상 지는 스스로를 발견하며, 역설적으로 나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를 깨닫는 웃지 못할 생각도 들곤 해.
도대체, 왜?
날마다 스스로를 꾸짖으면서, 실천하지 않는 아빠 스스로를 돌아보기로 했어.
이 지긋지긋한 악순환은 왜 일어날까? 왜 나는 마음먹은 대로 실천하지 못할까?
첫째, 시간이 많다고 착각한다.
"미래를 신뢰하지 마라. 죽은 과거는 묻어버려라. 그리고 살아있는 현재에 행동하라."
미국의 시인인 롱펠로가 한 말이야.
아빠는 이 말에 격하게 공감한단다. 특히, '미래를 신뢰하지 마라'는 말!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아빠는 수많은 다짐을 해.
주말까지 시간이 많으니 그동안 못했던 글쓰기, 운동, 너희들과 놀아주기, 독서, 어학 공부 등을 해야지라고 마음을 먹어. 물리적으로 생각하면 48시간 훨씬 넘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니 그런 생각이 들만도 하지. 하지만,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단다. 48시간 내내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건 정말 큰 착각이야.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집안일해야 하는 시간 등은 간과한 거지. 그래서 결국 일요일 저녁이 되면 아무것도 해 놓은 게 없고, 월요일이 오는 게 두려워져. 시간이 많다는 착각 즉, 미래를 신뢰하다 벌어진 일이야.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 십 년을 살아오면서 그렇게 착각하고 또 속고 있단다. 그러니 너희는 시간이 많다고 착각 하지도, 미래를 신뢰하지도 말았으면 해. 같이 현재에 충실해 보자!
둘째, 지금의 감정이 특정 시점에도 유효하다고 착각한다.
마음을 먹는 그 시점은 대개 '감정적'인 경우가 많아.
셀카를 찍었는데 얼굴이 크게 나왔다거나, 옷을 입었는데 배가 나왔다거나. 아니면,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무심코 던진 "살 좀 쪘네?"란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잖아? 그러면 크게 마음을 먹곤 해. 당장 '소식(小食)'을 결심하고, 저녁에는 공복에 뜀박질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지.
하지만 '감정'은 유동적이야. 지금의 '감정'이, 오늘 저녁에 내가 운동복을 입고 나가 뛸 만큼 유효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그 시점엔, 또 그때의 '감정'이 존재한단다. 기분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고 갑자기 허기질 수도 있고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감정'이 생길 수도 있는 거지.
조선 중기 학자인 '이이'는 '기미에 선악이 나뉜다'라는 말을 했어. 즉, 감정이 생겨난 후가 아닌, 그것이 생겨나는 순간을 지칭한 거야. 순간순간 우리의 마음은 변하고 또 변해. 그러니 감정에 따라 쉬이 마음을 먹기보다는,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 먼저 스스로에게 묻고 감정에 덜 휘둘릴 그때에 다짐을 하는 것이 좋아.
셋째, 완벽하게 하지 못할 거란 두려움에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누가 보면 완벽주의자인 줄 알겠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겁쟁이란 말이 더 어울릴지 몰라.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작한 일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실천하지 못하고 일을 뒤로 미루는 경우가 많거든.
독일 보훔 루트 대학 생물심리학 교수 연구팀은 이를 '지연 행동'이라 이름을 붙였어. 그리곤 '지연 행동'을 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체'가 큰 것을 발견했지. '편도체'가 크다는 건, 그만큼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는 걸 크게 느낀다는 거야. 결국, 하고 싶은 마음은 있으면서도 흐지부지 되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아예 그것을 시작조차 하지 않고 덮어버리는 것이지. (아빠의 편도체는 좀 큰 것 같...)
하지만, 아빠가 좋아하는 예술가인 '살바도르 달리'의 말을 기억하려 노력한단다.
Have no fear of perfection, you'll never reach it.
완벽을 두려워 마라. 어차피 완벽하지 못할 테니.
넷째,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아빠는 꾸준하지 못함을 자주 반성해.
그리고 솔직히 '감정적'으로 많이 요동하기도 한단다. 스스로를 잘 아는 거지. 수십 년 동안 자신과 싸워가며 얻은 깨달음이기도 하고. 그런데, 계획을 세울 때만큼은 그러한 스스로를 잘 잊는 것 같아. 꾸준하게, 정해진대로 하지 못할걸 알면서도 계획을 거대하게 세우는 거지. 그러면서 계획대로 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꾸짖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돼.
출장을 다녀왔던 날, 너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지 했었는데 결국 잠만 잤던 날.
너희들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스스로가 또 얼마나 실망스러웠는지를 기억해. 하지만, 객관적으로 시차에 시달릴 것이란 것을 인정하고 그 약속을 다음으로 미루었다면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무언가를 할 때는, 주관적인 의지와 동시에 객관적인 상황도 고려해야 한단다.
마지막으로, 작은 성취에 만족하지 못한다.
아마, 아빠의 수준으론 일주일에 한 번 조깅을 하더라도, 아빠는 스스로를 칭찬해야 할 거야.
아빠의 상황과 의지, 그리고 성향과 역량을 봤을 때 말이지. 그러고 나서, 일주일에 두 번 조깅을 하면 더 기뻐하고 스스로를 칭찬해야 하겠지. 하지만 실상은 그러하지 못해. 그렇게 시작이라도 하고, 작은 성취라도 만족하고 스스로를 북돋우면 되는데,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거야. 작은 성취는, 성취라고 인정하지도 않는 마음. 해도 그리 기쁘지 않고, 작다는 것에 매몰되어 스스로를 또 몰아세운 결과야.
이렇게 스스로를 돌아보니, 아빠는 천하의 욕심쟁이 같구나.
모자란 역량, 유동적인 감정, 처해진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한 번에 모든 것을 변화시키려는 마음. 그것이 열망이 아닌 탐욕이 되다 보니, 비난의 화살은 뾰족하게 갈리고 그것은 결국 아빠 스스로를 향하는 거야.
어쩌면, 돌파구를 찾고 싶어서 그리고 너희들에게는 아빠와 같은 실수를 좀 더 줄이라 말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지 몰라. 아니, 분명 그래.
시간은 한정적이고 소중하다는 것, '감정'의 요동을 인정하고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계획을 세우는 것,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가짐,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살피고 행동하는 것 그리고 작은 것 하나라도 성취했을 대 그것에서 '의미'를 찾는 것.
생각해보면, 이 모든 발버둥은 스스로를 사랑하고자 하는 몸부림이야.
그러니, 스스로를 믿고 조급해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불어, 마음먹기 전에 나 스스로와 충분히 협의를 해야겠단 생각도 든단다.
언제나 나를 이겨왔던 또 다른 나 자신의 힘을 빌려보는 것도 방법일 테니 말이야.
우리, 하나씩 하나씩 작은 것부터 만들어가 보자!
[저서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