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마음의 날씨가 어때?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지금 마음의 날씨가 어때?
"그래서, 오늘 마음의 날씨가 어때?"
아빠가 많이 묻는 말이지?
그래, 아빠는 너희에게 학교나 학원이 어땠냐 보다는 그 마음을 묻고 싶어. 마음 자체는 표현하기가 쉽지 않지만, 날씨로 비유하면 조금은 더 쉬워. 너희들이 오늘은 햇빛 쨍쨍해요, 구름이 많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빠가 '일어난 일'이 아닌 '마음'을 묻는 이유가 뭘까?
사람의 마음은 일어난 일에 반응해. 그리고 행동하지. 그리고 그 행동에 따라 삶의 방향이나 방법이 바뀌기도 해.
학교에 가면 간혹 너희들을 놀리는 아이들이 있어서 싫다고 했지?
그러면 아빠는 "에이,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네가 아니면 된 거야!"라고 쉽게 말하곤 했어. 너희의 마음은 알아주지도 않은 채.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너희의 마음은 어땠을까? 많이 미안하더라. 누군가 너희를 놀렸을 때 마음이 어땠고, 어떤 기분이 들었으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먼저 들어줬어야 했는데.
어찌 되었건, 누군가 나를 놀린다면 마음이 좋을 리 없겠지.
우선 기분이 나빠. 그러면 우리 몸은 분노 호르몬을 만들어내고 방어태세를 갖춰.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 두 호르몬이 신장 위 부신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거지. 그런데 재미있는 건, 두 호르몬은 기분 좋은 흥분이 될 때도 나와. 예를 들어, 너희들이 좋아하는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 말이지.
호르몬을 연구한 한 학자는, 이 두 호르몬은 자연계에서 복어와 뱀의 독 다음으로 강력하다고도 밝혀냈어. 즉, 기분 좋을 때나 위기에 처했을 땐 두 호르몬이 순간적으로 슈퍼히어로 같은 힘을 낼 수 있게도 해주지만 분노로 가득 찰 땐 그것이 독성이 되어서 폭력성을 부르고 스트레스를 야기해 몸의 면역 능력을 떨어뜨리게 돼. 격렬히 화를 낸 다음엔 어때? 머리가 아프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땀과 호흡 곤란도 느끼게 되잖아. 몸과 마음에 상당히 좋지 않지.
받아들이는 마음, 그 차이
아빠는 심리학을 공부했어.
그래서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많아. 위와 같은 경우도, 놀림을 당했을 때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고 또 누군가는 큰 상처를 얻는 것에 대해 왜 그럴까를 많이 궁금했었어. 그 차이가 뭘까를 말이지.
쉽게 이야기하면 이건 '받아들이는 마음'에 따라 다른 거라고 할 수 있어.
놀림을 당해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놀려봐라.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라고 생각할 거고, 큰 상처를 받는 사람은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지? 아 정말 내가 이상한 건가?'라고 걱정을 하게 되지.
심리학은 그래서 세상을 받아들이는 그 자체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어. '지각(知覺) 심리'와 '인지(認知) 심리'로. 여기서 '지각'은 '알아서 깨닫는 것, 감각 기관을 통해 외부의 사물을 인식하는 작용'을 말해. '인지'는 '어떠한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여 앎'이란 뜻이고. 심리학적으론 '심리 자극을 받아들이고 저장하며 인출하는 일련의 정신 과정'이라고 정의해 놓기도 했어.
의대생도 아닌데 지각 심리 시간에 왜 눈의 구조에 대해 배웠는지를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닫게 된 거지.
사람은 일어난 일, 상황에 대해 감각기관을 통해 정보를 입수하고, 입수한 정보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의식/ 무의식적으로 판단하게 돼. 사람에 따라 누군가는 놀림을 당하고 가만히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거나 아니면 자기도 모르게 주먹이 나아갈 수도 있는 것처럼.
어때? 같은 상황을 두고도 받아들이는 마음에 따라 차이가 무척이나 다르지?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그러니,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 행동은 달라질 수 있어.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도 있고, 싸움을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거지.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마음'은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이 어디 있냐고 물으면 가슴 쪽을 가리킬 거야.
우리의 심장이 있는 그곳 말이지. 예전 어느 드라마에선,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마음이 아프다며 만병 통치약으로 여겨지는 빨간약을 가슴에 바르는 장면으로 전 국민을 눈물바다에 빠뜨린 적이 있었어. 이 모습을 보면 우리 마음은 정말 심장 쪽에 있는 게 맞아 보여. 그렇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그 생각과 같았어. 마음은 심장에 있다고.
하지만 고대 그리스 시대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는 마음은 '뇌'에 있다고 했지. 실제로 현대 의학에선, 우리가 받는 모든 자극은 오감을 통해 뇌로 전달되고, 그 뇌에서 신경 세포의 화학적/ 전기적 반응을 통해 감정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라 해석하고 있거든.
어쨌든, 차이는 있지만 두 가지 생각 모두 몸과 마음은 개념적으로 분리되었다는 '이원론(Dualism)'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거야.
그렇게 보면, 우리 마음은 그 둘 다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이별의 아픔을 가진 사람은 가슴 먹먹한 아픔을 느끼지만, 실제로 그 통증은 뇌의 신호로 전달된 거니까. 이별한 상황을 알아챈(지각) 사람은 이것이 아픈 상황임을 인지하게 된 거고, 뇌는 그에 맞는 호르몬을 분비시켜 몸을 반응하게 한 거고.
그래서일까. 근대 철학자인 데카르트는 그래서 '실체 이원론'을 주장했어.
'실체'란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 다른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는 '인간은 마음(정신)이라는 실체와 육체라는 실체가 함께 공존하는 독특한 존재'라 규정. 혼이 떠난다고 몸의 기능이 중지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중지하기 때문에 몸이 죽고, 그 결과 마음이 육체에서 떠난다고 봤거든.
마음 바라보기. 마음 챙기기.
그래서 난, 오늘도 너희에게 마음의 날씨를 물어.
너희들이 자신의 마음을 바라봤으면 좋겠거든. 내 마음이 어떠한지, 나의 마음은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무엇을 어떻게 보고, 그것이 나로 하여금 어떠한 마음과 감정 그리고 기분을 들게 하는지. 그래서 나는 어떻게 행동하고 반응하는지.
아빠도 그랬던 것 같아.
쉽게 분노하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화났을 땐 뭔가를 집어던지거나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기도 하고. 물론, 분노나 화를 어느 정도 표출하는 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과정이야. 그것을 제대로 풀지 않으면 마음의 병이 되고, 마음의 병은 육체의 병이 되니까.
하지만 마음을 바라보니 조금씩 변화가 생겼어.
아, 내 마음은 이렇구나. 이럴 땐 이런 감정을 느끼는구나. 아마도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 같아. 무조건 화내기보단,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써 내려가고 그것을 보고 생각하고 어떻게 반응해야겠다는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된 거지. 스트레스를 받으면 글을 쓰게 되었고, 어쩌면 그래서 글을 많이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어찌 되었건, 분명한 건 스트레스가 클 때 이제는 화를 내기보단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단 거야.
난 너희 마음의 날씨가 항상 햇빛 쨍쨍하길 바라진 않아.
비도 오고, 번개도 치고 태풍도 맞이해야 해. 그 순간순간 느껴지는 감정을 고스란히 느꼈으면 좋겠어. 다만, 그 마음을 바라보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차근차근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갔으면 해.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거야. 마음이란 게, 감정이란 게 (아이러니하게도) 마음대로 되지 않거든.
그래서 말인데, 지금 마음의 날씨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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