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Mar 13. 2016

직장인 그 '받아들임'과 '떨쳐버림'

받아들여야 떨쳐버릴 수 있다.

Hi. 젊음!

오늘 하루는 잘 보냈어?


주말엔 일을 최대한 멀리하고자 하고, 또 그것이 당연한 거지만 가끔은 어쩔 수 없이 일에 매달려야 할 때가 있어. 직장인이잖아. 직장인.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는 건, 해야 해서 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 자존심을 걸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하려 한다는 것. 내가 보고할 것들이니 그래도 나를 위해, 내 사업을 위해 한다며 마음을 다스리는 거지.


또 하나. 주말인데 많이 못 놀아주는 우리 아이들에게, '아빠 일해야 돼. 미안'이란 한 마디에 웃음 가득한 얼굴로 '힘내세요'라며 자기들끼리 알아서 노는 아이들을 보며 콧잔등이 시큰해지면서도 힘이 나더라고.


오늘 이야기할 것들이 '받아들임''떨쳐버림'인데, 벌써 '받아들임'에 대해 이야기가 시작된 것 같아.


"직장이란 어떤 곳?"


자, 우리 젊음들에게 앞으로 다가 올, 또는 지금 겪고 있는, 겪을 대로 겪어 본 직장이란 곳은 어떤 곳이야?


직장인 체질이 아닌 사람들이 모여, 일보다는 다른 것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열심히 일하는 곳. 그 정도면 설명이 다 될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90%는 설명이 된 것 같아. 더불어, 참으로 억울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곳. 문제가 아닌 문제가 없는 곳. 정치와 눈치가 판을 치는 곳. 깨지는 곳. 물론, 일의 보람을 느낄 수도 있는 곳. 성장하는 곳 등.


아마 머릿속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여기까지 읽는데도 새록새록 생각이 났을 거야.


맞아.

정리해보면, 내 맘 같지 않게 뭐 하나 내 뜻대로 되는 게 별로 없는 곳일 거야.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고. 그치?


나 또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직장인의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산전수전 다 겪으며 (물론, 지금도 겪어가며) 드는 생각들이 있어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게 되었어.


"'받아들임' 신공'"


타라 브랙의 저서 '받아들임: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를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대로 녹아 있어.


불완전함은 우리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존재의 자연스러운 부분이다.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본 것을 열린 마음과 친절함과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내가 ‘근본적 수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수많은 문제들과 마주하게 돼.

취업을 하면 끝날 것 같던 고민과 문제들은, 과거와 현재 거기다 미래의 걱정까지 함께 가중되어서 우리를 힘들게 하지. 우리는 젊기도 하지만 그렇게 불완전하기도 하니까 말이야.




결론부터 말할게. 우린 '받아들임' 신공이 필요해.


아침에 일어나 쳇바퀴 돌 듯 힘겹게 몸을 이끌고 출근할 때.

허겁지겁 달려 간 사무실에서, 아침부터 과중한 업무 지시를 받을 때.

내가 제출한 보고서가 처참히 까일 때.

상사에게 이야기 한 부분이 잘못 전달되어 말이 안 통할 때.

높은 분에게 보내는 이메일의 오타나, 보고 시 한 말실수로 인해 난처할 때.

진급 누락했을 때.

내 의도대로 일이 안 풀릴 때.

사람들이 내 뒤에서 내 이야기를 할 때.

직장인으로서 회의감이 들 때. 등등.


감정과 자존감이 있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일들에 무감각할 수는 없겠지.

이처럼, 직장이란 곳은 '감정'과 '자존감'이 한시도 쉴 틈이 없는 곳이거든.




직장에서 하루 한 순간이라도 아무 일 없이, 아무 감정의 변화나 상처 그리고 자존감의 등락을 겪지 않는다면 아마 그 사람은 독방에서 혼자 일하는 사람일 거야. 아니, 독방에서 혼자 일하는 사람이더라도 스스로에게서도 이러한 것들은 마주하고 말고. 우리가 숨을 쉬고 살아 있는 한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우리는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해.

'받아들임'은 살기 위한 방법이야. 생존법으로의 '근본적 수용'. 즉 그러지 않고는 살 수가 없어.


앞에서 언급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전해오는 수많은 스트레스와 문제, 걱정거리 등. 무턱대고 저항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야.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하게 되면 결국 조직이 나를 버리든, 내가 조직을 떠나든 극단적인 일이 일어나겠지. 그렇다고 무조건 참기만 한다면 울화병이 도질지도 몰라.


그래서 우리는 '받아들임'을 연습하되, '잘 받아들임'을 습관화해야 해.

그렇다면 '잘 받아들임'은 무얼까?




직장에서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무궁무진 해.

그러한 일들이 일어났을 때.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상황을 탓하기보다는 잠시만, 잠시만이라도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거야. 나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서 말이지.


이 일은 왜 일어난 걸까?

왜 상사는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내가 어떻게 했길래 사람들은 나에게 뭐라고 하는 걸까?

진급 누락을 했다면, 내가 무엇이 부족하고 또 무엇을 잘했어야 할까?


'받아들임'은 두 가지를 전제로 삼아. 첫째는 이해가 안 되어도 일단 받아들이는 것. 두 번째는 이해가 안 되어도 받아들이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말장난 같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크게 고민하고 저항하는 것보다는 일단 받아들이고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하단 거야.


일단 '받아들임'을 해보면, 나와 상황을 객관화하여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기거든.

그렇게 일단 '잘 받아들이는 것'을 연습해보자.



"'떨쳐버림' 필살기"



옛 티베트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어.


해결될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 안 될 문제라면 걱정해도 소용없다.


이 얼마나 명쾌한 말일까?

물론,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걱정 속에서 생산적인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고, 그 걱정과 고민을 통해 성장도 하는 거겠지. 특히 직장인이라면 더더욱.


저 격언의 요지는, 걱정은 하되 적당히 하라는 걸 거야. '적당히'가 맘대로 안 되겠지만 말이야.




이번엔 그래서 '떨쳐버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해.

앞에서 '받아들임'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는데. '받아들임'은 나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받아들여야 떨쳐버릴 수 있다'는 것이 성립되기 때문에 그랬던 거야.


떨쳐버림으로써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동기가 생기게 되는 거야.

불완전한 존재로서 나의 부족함과 내게 일어난 제어 안 되는 일들을 받아들였다면, 이를 수용하고 반성하고 발판 삼아 성장한 후 '떨쳐버림'을 실행하는 거지.


떨쳐버리지 못하면 과거가 내 발목을 붙잡고, 자신감은 안드로메다로 사라져 있을 거야.

사랑에 실패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랑을 할 수 있는 건, 바로 실패한 그 사랑을 떨쳐버렸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하면 이해가 좀 더 빠를까?


"받아들여야 떨쳐버릴 수 있다"


어느 날엔가. 보고하다 처참하게 깨졌던 날.

나는 생생히 기억해. 보고한 숫자가 윗 분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이었고, 사업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라는 말씀을 그곳 회의실은 물론 화상 장비로 연결된 여러 해외 법인 사람들도 다 듣고 말았어.


보고가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내 자존심은 이미 바닥에. 그리고 그 순간이 무척이나 화가 나더라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오늘은 운도 참 없다.


점심도 거르고 온종일 시름시름하다 곰곰이 생각을 해봤어. 뭐가 문제였을까?

스스로 '받아들임' (그땐 '받아들임'을 의도적으로 한 건 아니지만 돌아보니 그랬던 것 같아.)의 과정을 거치고 보니, 역시나 문제는 나에게 있었어. 좀 더 면밀히 숫자를 보지 못한 점. 그리고 보고 시 내가 하는 말에 반응할 각자의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내 생각만 전달했던 게 화근이었지.


그리고는 '떨쳐버림'을 위해 노력했어. 그 사건(?) 이후로 '보고 포비아'가 생길 수도 있었지만 떨쳐버리기로 했어. 스스로의 문제점을 알아냈으니, 그 점을 보완하고 다음번에 자신 있게 보고 하기로. 스스로 떨쳐버리지 못하면 다시는 보고를 할 수가 없겠더라고.


재밌는 건, 떨쳐버릴 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나 스스로에 대한 것이 아니었어. 바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불쌍하게 혹은 운이 없다 내지는 창피하겠다...라고 생각했을 거란 추측에 스스로 힘들어했던 거야. 즉,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나 스스로 가볍게 떨쳐내면 되는 거였어. 잘 받아들였다면.


물론, 그 이후 보고는 준비 잘 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임해서 잘 끝났었지.




말이 길었는데. 사실 어떻게 보면 '받아들임''떨쳐버림'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해왔던 것일 거야. 생존법이니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건 그것들을 타의든 자의로든 사용하면서 살아왔단 것이고.


이와 더불어, 우리 한 번 그것에 대해 자각을 한 번 해보자는 것이고, 또 그것들을 '잘' 활용해 보자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야. 또 그래도 얼마 정도 직장 생활을 해오면서 그 소중함과 중요성에 대해 체험해 본 것도 이 글을 쓰고 있는 동기라 말할 수 있을 거고.


나는 이제 내일도 모레도, 또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받아들임'과 '떨쳐버림'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살아남고자 할 거야.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게 되는 이 곳.

직장에서 말이지.


물론, 우리 젊음들과 함께!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 내 역지사지 스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