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Feb 20. 2016

퇴직인사를 받으며

그 각자의 무게감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수 많은 메일들을 맞이한다.

자동화 시스템에서 날아온 메일부터 상사의 지시사항은 물론 유관 부서의 긴급 업무 협조 이메일까지.


증빙을 남겨 두어야 하는 우리네 업무 스타일의 변화로 인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한 지금의 이야기도 이메일로 다시 보내달라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문득, 대학교 새내기 시절 개인 이메일 받은 편지함에 새로운 메일 하나가 왔을 때의 두근거림이 생각난다. 광고와 스팸, 그리고 자동화 이메일이 거의 없을 그 당시 편지함에는 손으로 쓴 편지에 버금가는 내용의 것들이 한가득 했었으니까.


건조하고 딱딱하고 때론 공포스럽기까지 한 업무 이메일을 보다 보면 눈과 마음까지 건조해지고 마는데, 그나마 간혹  그때의 두근거림까진 아니어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것들이 눈에 띈다. 동기선후배들의 안부인사와 그들로부터 온,  잠깐의 짬을 내어 서로에게  공유하는 재미있는 글들이다.


받는 입장에서 보면, 나를 수신인으로 넣어준 것이 고맙고 또  수신자들끼리는 뭔지 모를 유대감으로 똘똘 뭉치게 된다.


이렇게 받는 개인 메일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다. 사적으로 깊은 내용의 '친전' 이메일, 결혼이나 부고 같은 경조사 이메일, 그리고 오늘  이야기할 '퇴사' 이메일 등.


"퇴직 인사, 올 것이 오는 것과의 조우"


오늘도  어김없이 이른 아침 마주한 이메일 중에, 반가운 이름과 친숙한 단어가 단연 눈에 띄었다.

내가  스스럼없이 모셨던 부장님의 성함과, '퇴직'이라는 단어였다.


사실, 시간의 문제였지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자의 반, 타의 반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선임 부장님이었지만 따르는 사람이 많았고, 주위 후배나 선배들은 명예퇴직을 종용받아 떠난 상황에서도 굳건히 실력과 명성으로 일을 즐기며 자리를 지키던 분이었다. 그럼에도 후배들이나 인사부서의 눈치가 보이지 않았을 리가 없다.


이렇게 언젠가 오고 말 거라는 선배, 동료, 후배들의 퇴직인사를 받는 나는, 어느새 부턴가 슈퍼스타 오디션의 한 심사위원처럼 읊조리는 버릇이 생겼다.


"제가 느낀 오늘의 무게는요...."


"퇴직인사, 그 각자의 다른 무게감"


오늘 받은 존경하던 선임 부장님의 퇴직인사. 마지막 직책이 실장님이셨던  그분의 인사 메일에는 아름다운 추억이 가득했다. 운이 좋게도  그분의 두 자녀는 이미 출가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카메라 하나가 신입사원 월급에 준하던 그 시절에 회사에서 선물로 받은 그것으로 아이들 돌사진을 찍어준 일과 여권 몇 개를 갈아치울 정도로 해외를 누빈 이야기, 그리고 즐겨 입던 회사 계열사의 옷을 이제야 벗는다는 낭만적인 표현까지.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할 그동안의 일들이 이메일 몇 자로 정리되는 듯 보였지만, 난 그 시간의 크기와 추억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시간을 함께 했기에 많은 이야기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요즘 젊은 세대보면, 누릴 거 다 누리고 걱정 없이 퇴직하는 50대 후반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느낀 그 '무게'는 한 없이 크다. 커서 무겁고, 무거워서 크다. 별 다섯 개 중에 다섯 개다.

그 어느 퇴직인사의 무게가 별 다섯 개가 아니겠느냐마는, 호기롭게 자신이 뜻한 길을 가기 위해 모두가 부러워하는 사표 던지기를 하는 사람은 예외가 아닐까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네개 반?)


예상했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선배나 후배 또는 동기, 내가 좋아했던 사람과 아닌 사람, 내가 잘 아는 사람과 아닌 사람, 밀려 나가는 사람과 알아서 떠나는 사람들에게서 온 퇴직인사의 무게는 다르다. 물론, 나에게 느껴지는 것이 그렇고 다른 사람에게 느껴지는 그것까지 모두가 다를 것이다.


진정한 무게는 아마 보낸 당사자가 정확하게 알 것이다.

정말로 어떻게 왜 나가게 되는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그 기분이 어떠한지.


"언젠가 마주할 나의 미래
그리고 내가 만들어 갈, 전하게 될 그 무게"


수 많은 메일 중에 이러한 개개인의 경조사와 퇴직에 관한 내용들이 유독 머리와 가슴에 남는 것은, 어쩌면 직장인으로서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것은 나의 바로 가까운, 또는 먼 미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곧 그것은 나에게는 오지 않을 일로 치부되고 만다.

그 무게감을 생각하고 그 추억에 공감하며 아쉬운 마음을 담아 건승의 회신을 보내고 나면,  또다시 밀려드는 현실적인 이메일로 인해 나는 다른 일에 몰두해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이가 마치 자신은 노인이 된다는 걸 잊거나 인정 못하는 모양새다.

어쩌면 이렇게 눈 앞에 놓인 현실적인 업무로 인해 나 스스로를 자꾸만 잊어가는지 모르겠다.


물론, 내 마음은 아직 젊다. 몸은 숫자와 세월에  지배받을지언정.

그리고 나의 목표는 지금 몸 담고 있는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한 그 속도와 현실의 속도가 차이가 커서 답답하지만, 하루하루 희망을 보며 버텨내고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것을 수백 번 되뇌며.


그리고 언젠가, 그 승승장구에도 끝이 있을 것이다.

내가 보내게 될 그 퇴직 인사가. 끝을 위한 끝일 지, 아니면 또 다른 시작을 위한 끝일지.

내가 보내는 그 무게가,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무게로 전해질 긍금하다.


오늘  그분의 진정한 무게를 내가 감히 알 수는 없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진심으로 그분의 건승을 비는 것과 여기 잠시 먼 곳에서 일을 하기에 당장 달려가서 직접 듣지 못한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따로  인사드리겠다는 다짐. 그리고 나에게도 다가 올 미래를 위해 오늘 하루 후회 없이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일상적이지만 실천하기 쉽지 않은 깨달음을 반추하는 것이다.


어쨌든.

퇴직인사는 그렇게 무겁다.


그 안에 서려진 슬픔과 기쁨과 추억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도.

그것을 읽는 사람의 마음도, 그  마음속에 떠올려지는 각자 자신의 미래도.


P.S


그 언젠가 나의 퇴직인사가 그저 무거운 것이 아닌, 보내는 나와 받는 사람들 모두에게 ´묵직한 메시지´가 되길 바라고 또 바라본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도 묵묵히, 묵직하게 즐기며.




'직장내공' 소장하며 자세히 읽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소장하며 자세히 읽기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소장하며 자세히 읽기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인 그 '받아들임'과 '떨쳐버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