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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r 22. 2016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때론.

우리 정서에 각인된 '휴식'이라는 것은?

뭔가에 쫓기는 기분.

중저음이 물씬한 스피커에서 감미로운 음악이 나오는데, 1절이 다 흘러가기도 전에 드는 생각.


3~4분짜리 노래 하나 제대로 듣지 못하는 절박하리만큼 부족한 마음의 여유란.

분명 처음 스피커에서 터져나오는 소리를 들었을 땐 '기분 좋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긋이 눈을 감았었는데.


"왜 우린 제대로 쉬지 못할까"


우리 삶이 그렇다.

제대로 쉬지를 못한다.


쉰다는 건, 각자의 주관적인 지향과 욕구 또는 필요한 그 무엇에 대한 간절함의 행동일 텐데.

학교에서, 직장에서 '쉬고 싶다'라는 말과 생각을 달고 살면서 어쩌다 일찍 집에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만사가 귀찮고 무얼 해야 할지 모른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영화를 보자니 시간이 허무하게 지나갈 것 같고, 음악을 듣자니 괜스레 고상한 음악을 골라 들어야 할 것 같고, 운동을 나가자니 날씨도 그렇고 결론적으로 귀찮고. 그동안 밀린 어학공부는 지금 시작해봐야 별 소용없을 것 같고. TV를 보자니 그건 스스로 용서가 안되고.


그저 멍하니 스마트폰의 뉴스와 SNS를 뒤적이다 잠이 들라치면, 다음날 몰려오는 뭔지 모를 죄책감은 하루의 시작을 허탈하게 만든다.


생각해보니, 우린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쉬는 법'을 모르는 것 같다.


"우리 정서에 각인된 '휴식'이라는 개념은?"


생각해본다.


왜 그럴까? 왜 잘 쉬지 못하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고, 아무것도 안 하면 뭔가에 쫓기는 기분이. 그리고 죄책감이 드는 걸까?


'휴식'은 '재충전'이란 의미를 전제로 한다. 우리가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힘들다는 뜻이고, 시간을 가지고 휴식하여 다시금 힘을 내자는 의미다. 또는 다른 것, 예를 들어 '좋아하는 것'을 함으로써 동기부여를 하고 사기를 높여 나의 '(직)업'을 새롭게 힘차게 이어가자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의 '(직)업'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기 보다는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쏟는 에너지는 말로 다할 수가 없다.


물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도 있고, '(직)업'을 좋아하고 즐기려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든 '휴식'이 필요하다는 전제는 피해갈 수 없다.


한국 사람에게 '휴식'은 그리 친근한 무엇이 아니다. '10분간 휴식'정도가 귀에 익숙하지만, 진정한 '휴식'의 의미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예로부터 공동체 생활을 해 온 우리의 정서 속에, '휴식'은 이처럼 다 함께, 그리고 짧게 가지는 그 무엇이었다. 최근 들어서는 각박하고 또 각박해지는 삶 속에서 '휴식'은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짐'의 다른 의미가 돼버렸다. 우리 정서에 각인된 '휴식'은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신경 써야 하는 그리 자유롭지 못한, 갈망하나 막상 닥치면 맘껏 쉬지 못하는 그것이 되고 말았다.


"의미 있는 휴식이란?"


그렇다면 우리에게 의미 있는, 그리고 필요한 '휴식'은 무얼까?

역설적으로 보면, '휴식'은 의미가 없어야 한다. '휴식'을 하는데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할까? 어쩌면 우리는 이 '의미'에 갇혀 있는지 모른다. 갇힘 속에서 하는 '휴식'은 '휴식'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쉴까? CEO들은 주말에 뭐할까? 유명한 사람들은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람.되.게 보낼까?라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심지어는 저명인사들이 휴가 때 읽는 책을 목록화하여 정리한 도서까지 있을 정도다.


휴식마저 다른 사람의 것을 보고, 나의 그것과 비교하여 그렇게 하지 않는 나를 자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지만, 사실 나도 그리 자유롭지 않아 속상함이 나의 매일에 엄습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때론."


다시금 흘러나오는 음악에 기분을 맡기고 눈을 감아 본다.

아무 생각 없이, 말 그대로 멍 때리며 음악을 흘려보내 본다.


모르는 노래가, 친숙한 노래가, 들리지 않던 가사가, 생각나지 않던 과거의 일이.

그리고 '아... 나는 쉬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Relax. 'Re' + 'Lax'.

느슨해지는 것. 생각을 풀어주는 것. 해이해져도 좋을 때. 바로 지금.


우린 '휴식'할 자격이 있다. 어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도, 오늘 꼭 무언가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다.

각자의 삶의 목표와 지향점. 그리고 이제껏 달려온 사람들에게 앞으로 더 잘 달려가기 위한 말이다.


만약 삶의 목표와 지향점이 없다면. '휴식'을 통해 알아가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어쩌면 힘들어서, 그리고 맘의 여유가 없어서 아직 찾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몸이 늘어져 있다고 '휴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생각을 풀고, 몸을 풀고, 마음을 풀고, 정신을 풀었을 때 어쩌면 진정한 '휴식'을 즐기고 있는지 모른다. 천차만별의 '휴식'이 각자에 있을 것이므로 내내 조심스럽지만, 지금 내 생각은 그렇다.




이러한 '글쓰기'가 때론 내게 '휴식'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몸과 영혼을 이완시키고, 이런저런 생각하는 나를 더 이상 자책하지 않고자 다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때론 진정한 삶의 활력소가 됨을 알기 때문이다.

이완시킬수록 정신이 또렷해지는 이유다.


물론, 우리의 '일상'에 그리고 우리의 '업'에 영혼을 담아 몰두했을 때, 그것은 더욱더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던 '휴식'은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불쑥 찾아올 것이다.


우리,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아 보자.

그러면 무언가가 명확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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