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그 '틀'의 서막
흔히들 말한다.
틀을 깨야 한다고.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틀은 깨는 것이 아니라 넓혀가는 것이라고.
"틀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세상엔 타파해야 하는 것들이 꽤 있다.
그중에 우리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것은 '틀'이나 '고정관념' 같은 것들이다.
아마도 그것들은 변화무쌍한 우리의 이 시대에, 혁신과 창의를 가로막는 주범으로 인식되어있기 십상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틀'이나 '고정관념'이 '나쁘다'라고 인식하는 그 자체도 또 하나의 '틀'이요, '고정관념'이라는 것은 생각지 못할 때가 많다.
물론 고착되어 우리 삶의 시야를 좁게 하는 것들은 깨야 함이 마땅하다. '깨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흔히 아는 '깨닫다'의 어원이 '깨다'와 '알다', 즉 '깨고 나야' '알 수 있다'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면, '틀'이나 '고정관념'같은 것은 꼭 나쁜 것이고, 깨야하는 것일까?
그 전에. 다시 한 번만 더 생각해보자.
'틀'이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선, 깨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그 '틀'이나 '고정관념'을 우선 '만들어야'한다는 것이다.
'틀'이 없는데, '고정관념'도 없는데 무얼 깬단 말인가?
더불어, 그 둘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만들어온 지식과 경험의 영역이자, 삶의 순간순간 우리를 돕는 기재로 작용해왔다는 것을 돌아본다면 우리는 그것들에 감사해야 할 정도다.
'틀'이 있기에 '틀' 밖의 것을 갈구했고, '고정관념'이 있었기에 매사의 소소하고 순간적인 것들에 대한 의사결정을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해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만들어 온 '틀'을 마주했을 때 성장의 욕구가 찾아오고 그 앞에서 좌절을 느끼기도 용기를 얻기도 하고, '고정관념'을 통해 치마를 입었으면 여자라는 것과 빨간색이 철철한 음식은 매울 것이라는 것을 먹어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물론, 예외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예외'를 운운하는 것, 그 자체가 반대로 대부분의 그러한 생각은 통속적으로 맞아왔단 반증이다. 즉, '대체로'맞다는 전제하에 '예외'도 있다는 말이다.
다시, '틀'과 '고정관념'은 우리가 쌓아온 삶의 경험과 지식의 총합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틀을 깼다고 평가받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도 틀을 깬 적은 없다."
'틀'을 깼다고 여겨지는 대표적인 사람은 누구인가?
아마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스티브 잡스나 알리바바의 마윈, 그리고 단돈 3센트에 췌장암 진단키트를 15세에 발명한 잭 안드라카 정도일 수 있겠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세상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많은 부분을 바꿔 놓았다.
우리는 쉽게 말한다. 역시 그 사람들은 다르다고. 또 세상의 '틀'을 깨고 맞서 싸운 사람들이라고.
글쎄, 정말 그럴까?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틀을 깼다'라고 단정 짓기가 영 어색해진다.
창조성이란 단지 점들을 연결하는 능력이다. 창조적인 사람들한테 어떻게 그걸 했냐고 물어보면, 그들은 약간 죄책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그들은 뭔가를 한 게 아니라, 뭔가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한텐 명명백백한 것이다. 그들은 경험들은 연결해서 새로운 걸 합성해 낸다. [애플 스티브 잡스]
성공은 열심히 하는 것보다는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재는 99%의 땀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이 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부지런하게 일해도 남과 똑같이 해서는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성공은 당신이 얼마나 많이 노력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알리바바 마윈]
췌장암 진단키트에 대한 나의 성공 비결은,
"인터넷 세상에 모든 것이 있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잭 안드라카]
이렇게 보면 그들은 세상의 '틀'을 깨고 부쉈다기보다는, 세상의 '틀'을 바라보고 고민하고 또 그것들을 연결하여 확장했다고 보는 편이 더 맞다.
'틀'은 부숴야 한다고 사람들이 골머리를 싸고 있을 때, 그들은 유유히 그것들을 이용하여 넓혀간 것과 다름없다. 마치, 달려드는 상대의 힘을 이용해 엎어치는 사람처럼, 모두가 물살을 두려워하고 극복의 대상이라 명명할 때 유유히 그 물살을 타는 사람처럼.
"일상에서 '틀' 발견하기"
자, 이제 우리 일상으로 눈을 돌려 보자. 백날 스티브 잡스나 마윈의 성공 스토리를 곱씹어 봤자 우리 삶이 변할리 없다. 아마 고상한 명언에 대한 기대치와 눈높이만 높아져 나는 왜 이러고 살까...라는 자책을 하고 있게 될 것이다.
내가 오늘 이와 같은 글을 쓰게 된 것도, 얼마 전에 느낀 '틀' 때문이다.
나는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중요시 여기고, 그들과 아웅다웅하며 북적북적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재미있고 즐겁게 일을 하면 성과도 따라온다고 믿고 있고 그렇게 실천하고 있다.
이것들이 내가 만들어온, 그리고 조금씩 확장해 온 '틀'일 수 있겠다.
그런데 그 '틀'로 인해 고민이 많아지고 괴로운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그것을 비교할 때와 나의 '틀'을 초라하게 여길 때다.
갑작스러운 비교의 잣대는 수시로 찾아온다. 직장 내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소위 말해, 나보다 더 잘 나가는 사람. 노력도 나보다 하지 않는데 운이 좋아 승승장구하는 사람. 일은 분명히 나보다 못하는데 이미지가 좋아 높은 사람들이 한 없이 신뢰를 주는 사람 등.
갑자기 나 자신이 초라해진다. 나는 저 사람보다 작은 시장을 담당하고 있는데, 나는 이 정도 해놓고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는데, 저 사람은 다른 윗분들에게 나보다 더 인정받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 이래서 내가 더 클 수 있을까? 다른 사람보다 뒤쳐지지는 않을까?
사실, 우리네가 하는 고민의 '틀'은 스티브 잡스나 마윈의 그것보다 훨씬 작고 초라하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전부일 때도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그 '틀'은 결국 내가 만든다는 것이다.
'틀'의 서막은 바로 우리들 자신으로부터다.
줏대 없는 비교와 부정적인 생각의 엄습이 스스로를 강력한 '틀'에 욱여넣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압박은 우리 삶에서 수시로 스멀스멀 찾아온다.
"틀 확장하기"
사람인지라 나 또한 이러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한 없이 초라해지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다만, 이러한 '틀'을 만나고 또 인식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것이 그나마 내가 스스로를 이겨내는 작은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틀'을 만났다는 것. 그리고 인식했다는 것은 나의 지식과 경험의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것이거나, 무언가 확장이 필요할 때라는 것에 대한 신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트루먼쇼의 트루먼이 세트장 한 모서리에 뱃머리를 들이박고, 그 세상의 '틀' 밖에 또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 그 순간과도 같을지 모른다. 트루먼도 그 '틀'을 깨부수기보단 비상구를 통해 '틀'밖으로 확장 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남들보다 작은 나라와 시장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왠지 나보다 더 상사들에게 인정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 '틀'을 만난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어차피 내 인생은 이렇게 초라하니 대충대충 하거나 불만 가득한 공격 성향을 가지고 일하는 것.
둘째, 시장의 사이즈로 어필하는 것이 힘들다면, 남들이 하지 않는 방법으로 차별화를 꾀하여 어필하는 것.
즉, 나 스스로가 '큰 사이즈의 시장을 담당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그 '틀'에 나를 가둔다면, 나는 더 이상 할 것이 없다.
하지만, 그 '틀'을 확장하여 '시장 사이즈는 작지만, 내가 무엇을 차별화하여 남들과 달라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나의 그 '틀'은 더욱더 커지고 확장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틀'은 깨부수는 것이 아니라 '넓혀 가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앞서 우리가 가진 '틀'은 살아오면서 우리가 쌓은 지식과 경험의 총합체라 했다. 지식과 경험은 머무르거나 그 자리에 그저 정지되어 있지 않다. 우리의 생각과 실천에 따라 자라나고 확장될 수 있다. 즉, 우리의 '틀'도 그렇다.
훗날, 나의 그 '틀'이 얼마나 확장되고 커질지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가장 궁금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 '틀'에 갇히긴 싫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다고 그 '틀'을 벗어날 순 없다. 만약 그 '틀'을 벗어난다면,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또는 사람이 아닌 신이 될지도 모르겠다.
'틀'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 그즈음. 우리는 또다시 그 '틀'을 넓혀가거나 또는 그 목전에서 주저앉을 수 있다.
그것을 깨야한다는 강박관념 보다는, 그 앞에서 다시금 되짚어보자.
'틀'은 깨는 것이 아니라 '넓혀가야 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을 넓혀가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지.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냉철한 이성'으로 우리를 돌아보자.
우리와 마주 한 그 '틀'에 감사함을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