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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Oct 13. 2019

[조커] 누구나 마음속에 조커 하나쯤은 있잖아요?

외롭고 힘든 자의 목소리는 성의껏 들어야 한다.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람 후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세상이 미쳐 날뛰고 있어요.
약 좀 더 주실래요? 우울하기 싫어요.


첫 대사부터 조커는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니,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그러했을 것이다. 그것은 시작일 뿐. 나는 주인공의 선율을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어느 영화를 봐도 관객들이 이렇게 숨죽여 관람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울림이었다. 진정한 울림은 그렇게 사람들을 숙연하고 조용하게 만든다. 그 누구도 그를 나쁘게 보지 않는 눈치다. 그가 웃으면 웃을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숨을 죽이게 만드는 영화. '조커'다.


세 가지 웃음 속에 담긴 아서의 내면


영화 속 아서는 많이 웃는다.

그러나 얼굴은 그렇지 않다. 마지막 세 번째 웃음에서야 그는 진정으로 웃는다. '세 번째' 웃음이라...... 그렇다. 아서는 영화 속에서 '세 가지 웃음'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웃고 싶지도 않은데 웃는 '병적 웃음'이다.

이로 인해 아서는 몸과 마음의 상처를 세상으로부터 받게 된다. 오해와 멸시, 그가 만약 죽더라도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은 그의 시체를 밟고 갈 정도의 그것. 관객들은 이 웃음에 동요하고, 세상이 아서에게 주는 잔혹함을 무의식적으로 배척한다. 물론, 조커의 탄생을 위한 인위적 장치지만 마음으로 다가오는 그것은 전혀 인위적이지가 않다. 대놓고 조커의 탄생에 대한 당위성을 관객들에게 내던진 거지만, 이미 관객들은 영화가 그것을 내던지기 전에 덥석 받아 든 눈치다. 슬프게 웃는 아서를 보면 누구나 그러할 것이다.


둘째는 하이톤의 '연기 웃음'이다.

아서는 세상의 유머 코드에 맞추어 웃을 때면 하이톤으로 웃는다. 그것은 연기다. 사람들의 시선이 사라지면 얼굴은 바로 굳는다. 남들과는 다른 유머 코드. 아서는 그렇게 아웃사이더다.


정신질환의 가장 좋지 않은 점은 남들에게 그렇지 않은 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서의 노트에 적힌 이 말은, 얼마나 아서가 세상에 맞추려 노력했는지를 보여 준다.

웃기지 않아도 그래야 하고, 남들이 웃을 때 웃어야 하고. 힘든 마음을 내보이기보단 괜찮은 척해야 한다. 어쩐지 아서의 삶과 우리의 그것이 다르지 않다는 느낌. 우리도 살다가 여러 번 웃기지 않아도 웃어야 할 때가 있지 않은가. 갑자기 내가 아서가 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들면서 영화관은 더 조용해진다.


셋째, 아서의 '진정한 웃음'.

웃음이란 건 본래 자연스러운 기분과 내면의 발현이다. 과학자들이 웃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지만, 진정한 웃음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맞다.

태어나서 단 1분도 행복하지 않았다는 아서, 엄마라고 믿었던 사람이 자꾸만 어울리지 않게 자신을 '해피'라고 불렀던 순간들. 어울리지 않는 옷과 가면을 내던져버린 아서는 이제 진정한 웃음을 지을 수 있다.

마침내, 내가 미친 게 아니라 세상이 미쳤다는 걸 깨달은 아서는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을 짓는다. 표정은 밝고, 춤은 절로 나오 웃음소리는 첫째와 둘째 웃음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조커로의 각성(覺醒)
냉장고와 계단


주목해야 할 장면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조커의 분장 장면을 아서가 조커로 변신하는 순간으로 꼽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조커로서의 각성은 아서가 '냉장고'에 들어갔을 때다. 세상과 단절된 곳. 차갑고 외로운 곳에서 아서는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이다. 아니, 정신이 번쩍 들기 위해 냉장고로 기어 들어갔는지 모른다. 이 장면은 호아킨 피닉스의 애드리브였다고 하는데, 실제로 냉장고 문이 닫혔을 때 카메라는 불안한 듯 미동한다. 나는 아서가 마치 슈퍼히어로가 된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문을 박차고 다시 나올 것을 기대했으나 조금은 부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다음 장면을 보면 정말로 그것은 계획에 없었다는 게 확실해진다.


또 하나 눈여겨볼 장면은 '계단'이다.

계단은 영화에서 친숙한 장치다. 특히, 돋보였던 영화는 얼마 전의 '기생충(맘먹고 불편하게 하겠다니 불편할 수밖에)'인데 기생충에선 계단의 오름을 '신분상승'으로, 그 반대를 '신분하락'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영화 조커는 그 반대다. 아서가 집으로 가는 계단을 오를 때면 세상 불행한 얼굴과 몸뚱이다. 한 계단 한 계단이 고난이자 절망이다. 세상은 위를 향하는 걸 미덕으로 삼지만, 우리 아서는 세상과 맞지 않은 사람 아닌가. (아니, 우리마저 그러한 세상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 또한 아서와 다를게 뭘까.)

하지만 아서가 해고당한 뒤 계단을 내려갈 때는 '당당함'이 과도할 정도로 넘친다.

조커로 각성하여 머레이 쇼로 출연하기 위해 내려가는 계단은 이 영화의 백미다. 다들 내려가는 걸 두려워 하지만, 조커는 마음껏 웃고 춤추고 즐겁게 계단을 내려간다.


그런 그가 나는 멋져 보였다.

언젠가 나의 어두움도 그렇게 당당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모던타임스와 조커


세상을 향한 분노로 가득한 광대들과 배려 없는 부유층은 영화관의 밖과 안으로 양분된다.

밖에선 삶에 지친 사람들이 시위를 하지만, 영화관 안은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은 사람들이 웃고 있다. 밖은 쓰레기와 슈퍼 쥐가 들끓지만, 그것은 영화관에서 웃는 사람들과 하등 상관없는 일. 어쩐지 그것이 남의 일이나 남의 시대 같지 않다는 게, 씁쓸하다.

그리고 그 영화관에서 사람들을 웃겼던 사람. 찰리 채플린. 또 하나의 광대. 펑퍼짐한 바지와 오버사이즈인 구두, 콧수염과 지팡이는 그의 상징이자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한 광대 복장이었다. 1914년 탄생한 이 영화는 영화 조커의 주제와 일맥상통한다. 인간성보다는 '노동'과 '효율'을 추구하는 시대를 웃음으로 승화시킨 찰리 채플린. 영화 속에서 트럭에서 떨어진 깃발을 주워주려다, 저도 모르게 시위대의 선봉에 선 찰리 채플린의 모습은 영화 후반부 멸시받는 자의 선봉에 선, 그러니까 아웃사이더에서 요즘으로 치면 핵인싸가 된 조커의 모습을 적시한다. 더불어 그것은 진정한 광대이자, 인간성의 회복을 부르짖었던 찰리 채플린에 대한 오마주다.


누구나의 마음속엔 조커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흠칫 놀랐다.

억눌렸던 마음속 내 조커와 마주쳤기 때문이다. 칼 구스타프 융이 말한 그림자와도 같다. 누구나의 마음속에 있는 어두운 자아. 우울하고, 슬프고. '나는 열심히 살고 있는데 세상은 왜 이리 나에게 덤비지?'란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이 부럽다. 나도 그저 영화관 안에서 모던 타임스를 보며 턱시도를 입은 채 웃고 싶은 사람 중 하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열심히 살아도 나아지는 것이 무얼까라고 의문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마음속에 분명 조커가 있다. 세상에 당하고만 있던 그가 전철에서 부유한 젊은이 세 명을 쏘아 죽였을 때, 통쾌함을 느꼈다면 더 확실하다. 그것은 약자가 강자에게 부르짖는 발악이자, 통쾌한 복수다. 현실에서든 상상 속에서든 그런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나를 괴롭히는 상사 면전에 사표를 날리고, 나를 두고 쑤군대는 사람들의 입을 때려 주고, 내 앞길을 막는 내 인생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사회적 제약들을 다 그렇게 날려버리고 싶단 솔직한 생각이다.




사람을 무시하고, 서로를 배려하지 않는다고 생방송에서 소리친 조커는 영웅이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우리에게 큰 카타르시스와 울림을 준다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 이야기에 동한다는 건 우리 사회도 다르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슈퍼 슈트를 입고 날아다니는 영웅에 대한 앙망보다, 어쩐지 나의 어두움을 대변하는 조커에게 감정이입이 더 되는 영화. 영화인지 현실인지, 존재하지 않는 고담시티인지 아니며 여기인지, 미지의 시대인지 지금의 시대인지 영리하게 혼돈스러움을 이야기하는 영화.


영화가 끝나면 내 안의 조커와 마주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게 좋겠다.

외롭고 힘든 자의 목소리를 성의껏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영화의 끝을 보면 알 수 있으니까.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대단한 자신을 만나고 싶다면!)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려지지 않은 네덜란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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