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습작노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Nov 30. 2015

[너를 만난 그곳] #15. 나 마주하기

지긋지긋하게 찾아오는 '나'라는 존재

- 1 -


어렸을 적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바로 집 앞 슈퍼에 계란 두 개를 사러 간 적이 있다.

어머니께서 무심코  말씀하셨다. 계란 깨지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이었을 거다.


왼 손,  오른손 양 손에 각 하나씩의 계란을 쥐고는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순간 '아, 이거 정말 떨어뜨리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머리를 스칠 그즈음.


내 발 앞 바닥엔 이미 깨져버린 계란이 놓여 있었다.

물론, 내 손엔  아무것도 없었다.


- 2 -


언젠가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계단을 올라가다 갑자기 스텝이 꼬여서 넘어진 적이 있다.

그 이후부터 계단을 올라갈 때 가끔 왼 발이 한 칸을 올라갈 것인지 두 칸을 올라갈 것인지 갑자기  헷갈려하는 일이 잦아졌다. 지금은 계단을 오를 때, 왼발에 맘 속으로 '하나, 하나'하며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그럼에도 갑자기 헷갈리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 3 -


이것도 어렸을 적 언젠가인 것 같다.

나이키 운동화 뒷굽에 붙어 있는 '에어'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을까 갑자기, 그것도 매우 궁금해진 적이 있다.


멀쩡한 운동화를 가져다 가위와 칼로 작업을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첫 번째 것은 실수로 에어를 터뜨려 버렸다.


손도 베었던 것 같다.

물론, 두 번째는 성공해서 원하던 '에어'를 손에 쥐었다.


정신 차리고 그 '집요함'에 스스로 놀란적이 있다.


'에어'는 별거 없었다.


- 4 -


그저 외로웠던 것 같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땅만 보고 걸었더랬다.


그 조그마한 소년의 어깨에 무슨 짐이 있었다고 그랬을까.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냥 그랬던 것 같지는 않았다.


뭔가 있었다.

뭔가가.




- 5 -


신나는 표정으로 여행 일정을 짜는 그 아이에게 말했다.

그래, 같이 다니는 건 좋은데 남은 오늘 하루는 나 혼자 있게 해 달라고.


그저 환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 알았다고 한다.

그러고는 고개를 파묻고 집중적으로 검색과 메모를 시작한다.


어제 이별한 사람이 맞나 싶다.


- 6 -


그 아이를 뒤로하고 찾은 곳은 Amsterdam 바로  아래쪽 Amstelveen의 Westwijk 부근이었다.

넓게 펼쳐진 초록 목초지에 양과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이 흡사 그림과 같아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예전 출장으로 왔을 때 차를 타고 그저 스쳐 지나간 곳이었는데, 공조기 사이로 흠씬 들어오는 잔디의 향기가 진해서 잊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저기 어딘가 있어보고 싶었다.

그림 속에 있는 사람처럼.


그러면 뭔가 행복해 보일 거라 생각했다.

아니, 정말 행복할까...라는 궁금함이 맘 한켠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 같다.


- 7 -


바람 소리가 눈부셨다.

햇살이 팔랑거렸다.


마침내 도착한  그곳에 도착한 나는 '행복하다'...라는 생각보다 갑자기 '나'를 마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액자 안 그림에 있는 나를 보는 듯했다.


초록색 평야가 펼쳐진  그곳에 양과 소가 풀을 뜯고, 높이 뻗은 나무 사이로 햇살이 흔들리는 바람에 소리를 내며 눈부시게 팔랑거렸다. 그리고 그 안에 내가 있는 그림이었다.


그런 그림 한 가운데 있으면 무조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내 어릴 적이 생각났다.

그때의 '나'를 마주하면서.


- 8 -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가슴 깊은 곳 뭉클함이 올라왔다.

구역질이 날만큼 올라왔다.


마침내 올라온 산 정상에서 느끼는  그것과도 비슷했던 것 같다.

마침내 비로소 온 이 곳에서 행복할 줄 알았는데, 속이 울렁거렸다.


그래도 햇살은 좋았고, 공기는 맛있었고 나무 사이를 스쳐가는 바람은 알싸했다.

계란을 놓친 아이, 계단을 올라 갈 때 한 칸과 두 칸을  헷갈려하는 왼 발, 운동화 뒷굽의 에어를 파내기 위해 눈에 불을 키고, 땅만 보며 걷던 아이.


좋은 곳에서 좋은 생각만 날 줄 알았는데.

지긋지긋하게 찾아오는 '나'라는 존재.


'나 마주하기'


- 9 -


그래, 같이 가자. 같이 가.




Place Information


1. Nesserlaan Street: 나를 마주하기 아주 좋은 곳. 햇살과 바람 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홀로 가면 좋은 곳.

  - 1188 ZK Amstelveen, Netherlands

매거진의 이전글 [너를 만난 그곳] #14. 만남도 계획되지 않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