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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an 05. 2020

사물에 숨을 불어넣으면 배움이 내게로 온다.

사물의 활력: 물티슈

사물의 활력을 쓰게 된 이유


그것은 순전히 물티슈 때문이었다.

물티슈는 참으로 유용하다.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그 무언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말라비틀어진 물티슈를 여럿 발견했다. 회사 사무실에서도, 집에서도 심지어는 여행가방에서도. 누군가는 헤헤거릴 수 있지만, 나는 그 순간 일종의 죄책감을 느꼈다. 왜 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내가 물티슈에 숨결을 불어넣은 것은.


죄책감은, 상대가 숨을 쉬고 있다는 규정에서 온다.

보통, 사람들은 사물에게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에 의미를 부여할 때, 상황과 느낌은 달라진다. 아버지 유품으로 받은 시계가 멈추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받은 무언가를 잃어버리면 감정은 흔들린다. 흔들리는 감정은 그 사물을 더 이상 사물로 대하지 않는데서 온다. 어느 순간 우리는 이곳저곳에 숨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물티슈에 그렇게 숨을 불어넣으니 많은 것이 보인다.


첫째, 물티슈는 시작을 함께하는 소중한 동반자다.


언제나 시작은 물티슈와 함께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무실 책상. 큰 맘먹고 공부하려는 집 책상. 기분전환을 위한 대청소. 우리는 물티슈부터 찾는다. 물티슈와 함께라면 시작이 두렵지 않다. 뭉쳐 나온 먼지와 깨끗해진 표면을 보며 우리는 안도하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한다. 그것이 없었을 때 어떻게 '시작'이란 걸 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며 나는 잠시 머뭇거린다.


둘째, 물티슈는 걱정거리를 덜어준다.


그리 깔끔한 편은 아니지만, 나는 손 어디엔가 끈적한 무엇이 묻으면 강박이 돋는다.

어서 빨리 그것을 떨쳐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러나 언제나 수도를 틀고 손을 닦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닐 때가 많다. 그럴 땐 온통 머릿속엔 물티슈 생각뿐이다. 물티슈가 없으면 일반 티슈에 물이라도 묻혀 그것을 닦아낸다. 하지만, 물티슈가 주는 개운함과는 다른 느낌이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걱정거리가 왔을 때 난 그러한 듯하다. 끈적한 걱정거리가 나에게 붙었을 때. 난 안절부절못하지 못한다. 그것을 해결해내려 온신경을 집중한다. 강박적인 집중이 때론 고민을 빨리 해결하기도 하지만, 당장 해결되지 않는 고민엔 인내의 고통이 따른다. 고민이나 고통을 닦아낼 수 있는 물티슈가 있다면, 가격이 얼마일까를 상상해본다.


셋째, 아끼다가 뭐 된다.


아끼다가 말라비틀어진 물티슈가 한 둘이 아니다.

내가 그들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이유다. 아끼려는 마음이야 나쁜 게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들은 말라비틀어졌다.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건조하게 남아 있는 그들에게 물을 부어 응급조치를 해보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말라비틀어진 물티슈는 그 본연의 개운함을 다시 찾을 수 없다.

그런데 돌아보면 아낀다는 마음은 그것을 소중히 생각한다는데 있다. 아끼고 아껴, 정말로 그것을 써야 할 때를 기다리는 마음. 필요할 때 그것이 없을까 하는 두려움. 우리는 살면서 그러한 생각에 빠져 결과적으로 나빠지는 경우를 너무 많이 겪는다. 때론 돈이 그렇고, 때론 사랑이 그렇다.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돈도 마를 수 있고 사랑도 말라비틀어질 수 있는 것이다.




사물에 숨을 불어넣으면 배움이 내게로 온다.

말라비틀어진 물티슈를 보면서 나는 깨닫고 또 깨닫는다. 시작은 힘차고 깔끔하게, 걱정은 줄이거나 마음의 물티슈로 닦아내야지. 그리고 삶에서 아껴야 할 때와 그러지 않을 때를 구분하며 살아야지 나는 다짐한다.


물티슈에서 마지막으로 얻는 교훈은 바로 '무언가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수 처리장에 켜켜이 쌓여 문제가 된다는 것을 보았는데, 어찌 되었건 득이 되는 어떤 것으로부터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편리하다고, 도움이 된다고 무분별하게 사용하거나 그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 몫은 오롯의 우리의 것이 된다는 것. 언제나 마무리가 중요하다.


삶의 근심을 깨끗하게 닦아 줄 마음의 물티슈가 있을까.

나는 그것을 마음 어딘가에 항상 비치해 두고 싶다.


더불어, 누군가에게 난 그런 물티슈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대단한 자신을 만나고 싶다면!)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려지지 않은 네덜란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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