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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an 06. 2020

날마다 보지만 알아채지 못하는 것들

사물의 활력: 거울

비췬다고 모든 게 보이진 않는다


날마다 마주하는 거울.

욕실의 거울은 물때가 가득하다.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얼룩 사이사이로 내 얼굴이 보였다. 매일 아침, 꾸역꾸역 일어난 못난 내 얼굴을 맞이하는 거울. 기어이 얼룩을 지우지 않은 건, 그 못난 모습을 조금이라도 가리려는 것이라고 나는 변명한다.


거울은 사뭇 생생하다.

그 자체가 살아 숨 쉬진 않지만, 숨 쉬는 존재를 여실하게 비춰낸다. 거울에 입을 가까이 대고 숨을 불어내면, 거울은 그것 또한 묘사해 낸다. 뿌연 안개가 거울 위에 폈다가, 사르르 사라지는데 그 어떤 사물도 보이지 않는 내 숨을 이렇게 잘 표현하지 못한다. 너는 숨을 쉬고 있다고 사물인 거울이 매일 내게 말을 거는 것이다.


오랜만에 얼룩으로 가득한 욕실의 거울을 닦았다.

더불어 내 눈과 마음이 깨끗해진 느낌이다. 거울은 그렇게 우리 마음과 연동되어 있다. '마음의 거울'이라는 말도 많이 쓰는데, 그것은 대개 자신을 바라볼 때 사용한다. 그러니 자신을 제대로 조우하려면 거울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 못난 표정을 가리려 얼룩을 그대로 두는 건 변명에 불과하다. 깨끗한 거울은 좋은 표정과 활기찬 기분을 만든다. 내가 나를 못나게 보려 하면 한도 끝도 없다. 결국, 얼룩은 내 마음속에 있었고, 나는 거울을 닦았지만 얼룩은 내 마음에서 지워졌다.


거울은 매일의 나를 묘사한다.

그렇다고 난 나의 모든 것을 보진 못한다. 거울은 내게 매일 늙고 있음을 여실히 말하는데 나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늘어난 흰머리와 주름을 거울 너머로 마주한다. 그럴 땐 거울이 좀 야속하다. 극사실주의로 나를 표현해내기 때문이다. 나는 때론 초현실주의 작품이 되고 싶은데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은 야박하고, 사실적이지 않은 어느 그곳엔 유토피아가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는 누구나의 꿈이다. 거울은 절대 그러한 기대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도통 거울의 속을 모르겠다.

그리고 거울 속의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거울 앞의 나와 거울 속의 나는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안다. 거울 앞의 나는 거울에 입김을 만들 수 있고, 거울 안의 나는 배를 움직여 숨을 쉬는 것을 볼 수 있다. 거울은 그것을 생중계한다. 

그러면 그나마 뭔가 좀 명료해진다. 수 십 년을 살아왔지만 나도 잘 모르겠는 나를, 거울을 통해보면서 그래도 많은 것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방향을 잃거나, 방황을 하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거울을 보면 '못난 나'를 보지만, 그럴 땐 못난 '나'에 집중한다. 나를 보는 나는 부끄럽지만, 또렷하게 눈을 마주하고 있으면 오기가 발동하고 살아낼 힘이 생겨난다. 나를 다그치기도, 위로하기도 하는데 이는 순전히 거울이 나를 비추기 때문이다.


날마다 보지만 알아채지 못하는 것들.

날마다 마주해서 다행인 것들.


거울은 그렇게, 잘나건 못났건 스스로를 매일 마주하라고 종용한다.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보이는 것에 최선을 다하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매일을 깨끗하게 자신을 닦아내며, 너의 마음도 그렇게 잘 관리하라고 속삭인다.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대단한 나를 만나고 싶다면!)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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