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Dec 14. 2015

젊은 직장테르의 슬픔

그녀의 이름은 바로...

나의 벗, 빌헬름


나는 지금 그녀를 생각하며 상념에 빠져 있네.

언제부터였을까. 기억이 나질 않네.

하지만 분명한 건, 난 도저히 그녀로부터 헤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네.


옆 동네 베르테르라는 친구는 사랑해선 안 되는 여인을 사랑하느라 상념에 빠져있다지.

난 사랑하는 그녀가  기억나지 않아 미칠 지경이네.

분명 사랑하는 마음과 갈구함이 내 마음 깊은 구석에서  용솟음치는데, 난 그녀의 이름이 도통 기억이 나질 않고 모습마저 아련하다네.

나와 베르테르 둘로부터 편지를 받는 자네는 기분이 어떨지 궁금하군.


흥미로운가?

난, 정말이지 미칠 지경이라네.


어느 날엔가, 난 그녀에게 다시 만나 달라고 애원을 했네.

그 순간에 태양과 달과 별들이 조용히 계속해서 돌고는 있었겠지만, 나는  그때가 낮인지 밤인지 가릴 수가 없었다네. 온 세계가 내 주위에서 사라져버렸던 것일세.


그만큼 황홀했지.

그만큼 간절했고.


갑자기 그녀가 뒤돌아 나를 보던  그때가 생각나네.

아아... 나를 보기 위해서였을까?


사랑하는 벗이여, 나는 그 점을 확신하지 못한 채 그저 마음만 들떠 있었네.

아마 나를 돌아다본 것이었겠지? 아마 그럴 것이네. 그렇다고 말해주게.

그렇게 생각하면 내 마음에 위안이 된다네.

아아... 난 얼마나 어린애 같은지.


사랑에 버림받은 사람이 극단적인 결정을 하는 것에 대해 난 이해를 한다네.

옆에서 이를 바라보다가 "어리석은 자여, 좀 기다렸다면 시간이 흘러서 때가 오면 절망도 가라앉을 것이고, 반드시 다른 사람이 나타나서 위로해 주었을 텐데..."라고 조언하는 것은 마치 "열병을 앓고 죽다니 참 어리석은 사람이야. 체력이 회복되고 원기가 좀 생겨서 혈액의 혼란이 가라앉을 때까지만 기다려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 어리석지 않은가?


나는 그녀와 함께 두어 시간 함께 할 때가 있었네.

그럴 때면 그녀의 자태와 거동, 품위에 도취되어...

눈앞이 캄캄해지고 귀까지 거의 들리지 않게 되어, 마치 암살자에게 목이 졸리는 듯 숨이 막히고, 급기야 심장이 거칠게 뛰며, 나는 가끔 이 세상에 살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조차 분간을 못하고 말았네.


그리고 실은 그녀 곁으로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네. 비웃으면서도 결국 나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었다네. 그리고 내 영혼은 굉장한 평온함에 가득 차 있었네. 난 온 마음으로 매일 이 봄날의 달콤한 아침들을 누리고 있었다네. 이것들은 마치 나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듯했었지. 


나의 소중한 친구여 나는 너무나 행복했었다네.


하지만.

그녀가 떠나간 건지, 내가 떠나온 건지. 

지금은 그녀가 없어서 죽고 싶은  마음뿐이네.


아니, 그보다 더 그토록 갈구하고 사랑하는 그녀의 이름이 도통 기억이 나질 않으니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을까? 친구여?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을 못하는 세상 가장 불행한 자여.


만일 인간이, 아니 내가 어째서 그런 천성을  타고났는지 알 수 없지만, 부지런히 상상력을 동원하여  지난날의 불행한 추억을 되새기려 하지 말고, 오히려 현재를 태연히 견디어 내기 위해 노력한다면, 인간의 그리고 나의 괴로움은 훨씬 줄어들 텐데 말일세. 아마, 그녀도 기억나지 않는 괴로움에 아무것도 못하는 나보다는  그럴지언정 현재를 바라보고 충실한 나를 더 원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


간절히 원하면 만날 수도 있지 않은가?


나의 친구 빌헬름이여.

사랑이 없는 세계에서 산다면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될까?

램프 없는 환등이나 다를 바 없는 걸세!


작은 램프를 끼움과 동시에 갖가지 영상이 흰 스크린에 나타나지.

그것이 한낱 그림자요, 일시적인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애들처럼 그 앞에 서서 신비로운 광경에 가슴 설렌다면, 그것은 역시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일세. 


단, 그것을 기억할 수 있다면 말이지.


빌헬름.

난 베르테르가 몰래 사랑하는 그녀를 잘 알고 있다네.

그리고 그녀는 권총을 가지고 있지. 베르테르는 여행을 빌미로 그녀에게서 그 총을 빌리려 한다는 것을 들었네.

그런데 말일세. 내가 그 총을 먼저 빌리려 하네.


사랑하는 그녀와 함께한 기억이 없는 나는, 희망도 없고 기쁨도 없는 존재일세. 그렇다고 생각하니 오한이 엄습하고 영원한 이 오한을 느끼느니 난 권총의 힘을 빌리고자 하네.


벌써 시동을 그녀에게 보내 놓았네.

요즘 신변의 위협을 느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거짓 내용의 편지와 함께.

곧 시동이 권총을 받아 나에게 올 것이네.


나의 사후에 축복을 빌어줄 텐가?

나의 무덤에 찾아와는 줄텐가?

어리석다고 욕하지 말아주게.


그녀 없는 세상은, 이 곳은 의미가 없.....


아아, 빌헬름.

갑자기 그녀의 이름이 떠올랐네.

갑자기 그녀와 함께 한 시간이 떠올랐네.


아... 어리석은 자여.

그래, 맞네. 그녀는 내 옆에 계속 있었네.

떠나온 건 나였네. 잊은 것도 나였네.


지금 방금, 시동이 로테에게서 총을 받아왔네.

난 바로 그것을 되돌려 보냈네.


내 얼굴의  함박웃음을 본 시동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로테에게로 갔네.

로테도  의아해할 것이네.


아... 이 감격이란.

그녀의 이름과 나의 추억들이 이렇게 새록새록 떠오르다니.


그녀의 이름은 바로...

'초심과 열정' 이었다네.


불행한 이 순간을 구원하여 줄 그녀의 이름과 함께 했던 소중한 기억들.

떠올려보니 다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커지고 있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금 그 길이 보인다네.

함께한 그 시간들이 마구 떠오른다네.


빌헬름. 

난 다시 만난, 아니 다시 기억해낸 그녀의 이름과 추억을 가지고 새롭게 다시 살아보고자 하네. 

시간이 없네. 편지를 줄이네. 내가 해야 할 것들을, 생각난 이 것들을 바로 적고 행동에 옮기고자 하네.


다시 만나세. 나의 친구여.

새로운 모습으로.


P.S

베르테르, 그 젊은 친구에 대해 전해 들었네.

내가 흥분에 들떠, 총을 바로 로테에게 돌려주지만 않았더라도...

매거진의 이전글 내 경쟁상대는 누구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