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Apr 04. 2020

[번외] n번 방의 심리학 그리고 우리

악마는 하늘이 아닌 우리 중에서 나온다는 사실 

이번 n번 방 사건엔 갖가지 심리가 모두 녹아 있습니다.

그러나 전, 제가 언급했던 '대상화'로 이야기를 써 내려가려 합니다. 어쩌면 이 대상화라는 심리 관념이 이 시대의 악마를 낳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대상화는 이번 사건에 녹아 있는 모든 심리 이론을 포괄합니다. 동시에, 이러한 비극이 일어난 원인들은 대상화로 수렴하죠. 


그럼, '대상화'가 뭔지부터 볼까요?

대상화는 다른 말로 '사물화'라고도 합니다. 쉽게 말해, 상대방의 인격을 배제하고 보는 거죠. 숨을 쉬는 존재에게서 숨을 앗아가는 관념/ 행동 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개별성'은 소멸합니다. 소멸된 개별성은 상대방에게 좀 더 악(惡)해질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죠.


아마, '성적 대상화(sexual objecification)'란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대상화'를 따로 떼어 이야기해서 그렇지, 아마 '성적 대상화'란 말은 이미 알고 계셨을 거예요. 상대방을 '성적 대상화'했다는 건, 말 그대로 상대방을 인격체로 보는 게 아니라 내 성욕을 해소할 '도구'로 보는 겁니다. 그러니 무참한 일들이 일어나고야 말죠.


그런데, 누군가를 '대상화'했다고 해서 무조건 나쁘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알게 모르게 '대상화'를 하고 있습니다. 한 사례를 말씀드릴게요. 일본 어느 초등학교에서 주말 농장을 했습니다. 주말이면 농장으로 가, 짝지어진 동물들을 돌봤습니다. 돼지도 있었고, 닭도 있었고, 소도 있었죠. 정성스레 일정 기간을 함께 시간을 보낸 뒤, 주말 농장이 끝날 무렵. 마지막 수업은 정성스레 돌본 각자의 동물들이 요리가 되어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이 고기 요리를 먹을 수 있었을까요?


쉽게 생각할 수 있듯이 아이들은 울고 불며 그 음식을 먹지 못했습니다.

물론, 평소엔 고기를 좋아라 했던 아이들이지요. 우리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가 보는 고기는 '상품'입니다. 즉, 사물이고 그것은 우리가 동물들을 '대상화'한 결과 값입니다. 만약 우리가 애지중지 직접 키운 소나 돼지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대상화'를 하느냐 '개별성'을 보느냐의 차이 이젠 이해가 되셨을 겁니다.


사회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개별성보다는 직급을 통해 상대방을 대상화합니다. 개인의 사정을 일일이 봐주면 일이 되지 않겠죠. 기분이 우울하다고, 오늘 배우자와 싸웠다고 회사에서 일을 안 하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대리라면 대리만큼, 부장이라면 부장만큼의 일을 해내야 하는 거죠.


다시, n번 방으로 돌아가 협박을 일삼아 성노예를 삼은 그들에겐 '성인지 감수성'이 없습니다.

상대방은 그저 내 명령을 들어야 하는 '대상'입니다.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데 감수성이 있을 리가 있나요. 상대방의 숨과 영혼, 그리고 개별성을 배제한 그들의 눈엔 말을 잘 듣느냐 안 듣느냐는 화두만 남을 뿐입니다. 말을 잘 들으면 더 요구하고, 안 들으면 협박하고. '개별성'을 주입하여, 그들의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랬을 수 있을까요?


이 과정에서 '지배 욕구'도 발동이 되었습니다.

상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우선권을 가지며, 타인에 비해 더 강하다고 느끼고 싶어 하는 동기. 지식인들까지 농락한 그들의 영향력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 영향력이 선하지 않음을 한탄할 뿐입니다.


n번 방의 심리학.

'대상화'와 '지배 욕구'. 그런데 그것은 우리에게도 작동하고 있는 심리기제라는 게 섬뜩합니다. 악마는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정화가 되지 않고, 욕구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거나 이념에 갈리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는 그곳.


즉, 악마는 우리 중에서 나온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대상화의 향기가 짙어질 때, 상대방의 개별성을 보려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물론, 저부터...!




스테르담 글쓰기 클래스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저서 모음]

'견디는 힘' (견디기는 역동적인 나의 의지!)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지 못했던 네덜란드의 매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