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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y 10. 2020

스트레스는 방향을 가리지 않는다.

어떻게 해소하여 없애는가 보다,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더 중요하다!

직장인과 스트레스,
그리고 그 주기


연관 검색어란 말이 있다.

하나의 단어를 검색할 때면 따라오는 단어를 말한다. 우리의 인지나 정서적 검색창을 띄웠을 때 '직장인'이라는 단어를 넣으면, '스트레스'가 바로 따라온다. 반대로, '스트레스'라는 말을 떠올려도 '직장인'은 쉽사리 딸려오는 단어다. 밀접한 관계를 이를 때 '심신상관관계'라고 하는 것처럼, 직장인과 스트레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 출근하기 싫은 이유도 스트레스고, 때로 성장을 할 수 있는 이유도 스트레스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어디에나, 어느 누구에게나 있지만 특히 직장인에게 그 말이 어울리는 건 바로 '밀도' 때문이다.

직장은 인생의 축소판이며, 이윤추구(회사는 물론 개인까지)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철저하다. 직장은 '전쟁터'라는 비유도 곧잘 어울리는 이유다. 너와 나의 밥그릇은 총성 없는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의 스트레스는 주기가 있다.

하루로 치자면 점심시간을 전후로 등락을 하다가 퇴근에 이르러 그 수치가 낮아진다. 

일주일로 치자면 수요일에 최고조(해서, 수요일을 hump day라고도 한다.)가 되었다가 금요일이면 스트레스는 온데간데 없어진다.

마지막으로 한 달을 보자면,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가 어느 지점, 그러니까 월급날을 기점으로 때려치우고 싶던 마음이 잠잠해진다. 물론, 스쳐 지나가는 월급을 보며 스트레스가 다시 도지는 건 직장인의 운명이다.


스트레스는 방향을 가리지 않는다.
더불어, 시간이 지날수록 입체적이다.


사실, 주기보다 더 중요한 게 '스트레스는 어디에서 오는가'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다양하다. 업무, 환경, 급여, 직장의 위치, 적성 등등. 생각지도 못한 원인들이 다양하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은 '사람'이다.


직장에서의 사람은 '방향'으로 해석된다.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 수평에 있는 사람, 아래에 있는 사람이다. 직장은 피라미드 구조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수평화가 많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 피라미드 구조는 회사가 굴러가기 위한 필수적 뼈대다. 이 뼈대가 무너지면 직장은 존재할 수 없다.


위는 상사, 수평엔 동료나 유관부서 사람, 아래는 후배라고 볼 수 있다.

직장생활을 막 시작했다고 보면 대부분의 스트레스는 위에서 온다. 상사로부터 받는 업무, 조언(잔소리 포함), 지시에 대한 압박 등.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수평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 또한 만만치 않다. 나보다 잘 나가는 동료, 내 이야기를 함부로 하는 동기, 당최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유관부서 사람까지. 왜 내 주위에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만 있는가 되돌아보며 전생을 탓하거나 반성할 정도다.


그런데, 더 큰 한방이 남아 있다.

그건, 아래에서 오는 스트레스다. 사실, 이 방향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시간이 흐르면 되고 싶지 않아도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이동을 하게 되는데, 처음 이 스트레스를 받아 들었을 때의 충격은 위와 옆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 강력하다는 걸 알게 된다. 시큰둥한 대답, 나름 배려를 해주었다고 생각한 일들에 대한 거리낌. '조언=잔소리'라는 즉각적이고 자동적인 태도와 사고. (물론, 나 또한 그랬음을 고백하며)


이로써, 스트레스는 방향을 가리지 않고, 3차원의 입체적 충격으로 완성된다.


스트레스는
직장인이 안고 가야 할 운명이다.


입체적인 스트레스는 다루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입체적 스트레스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는 월급쟁이이며, 조직 생활을 해야 하고, 각자의 먹고사니즘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상사가 닦달하고, 유관부서가 속을 썩이며, 후배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해도 당장 그만둘 게 아니라면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조절 가능성'과 '예측 가능성'을 키우는 것이다.

직장인의 스트레스는 대개 '불안'으로부터 온다. 고용 안정에 대한,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는 사람에 대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업무의 불확실성 등.

조절 가능한 범위가 넓어지고, 보다 명석한 예측을 할 수 있다면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를 쓰고 승진하려 하고, 그럼으로써 '조절 가능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려 한다. 그러나 막상 높은 자리에 올라섰다 하더라도, 오히려 더 많은 도전과 제약이 있음을 이내 깨닫는다.


해서, 스트레스는 '해소'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으로 재정의 해야 한다.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그 발버둥에서 스트레스는 더 배가 된다. 예전에 군대 훈련 중에 팔이 철조망에 걸린 적 이 있었는데, 그 상황이 두려워 다급히 빼려 하다 생긴 흉터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러나, 그 경험을 바탕으로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철조망 가시의 방향을 인지하고 차근차근 대처했을 땐 작은 상처만 남아 사라졌다. 


즉,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여 없앨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스트레스 없는 직장생활은 불가능하다. (스트레스 없는 직장생활을 바라면, 역설적으로 스트레스의 크기는 더 커진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증폭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상황을 '인지'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스트레스는 없어지진 않지만 조절 가능한 무엇이 될 수 있다.


더불어, 스트레스는 방향을 가리지 않으니 유의해야 하며, 나 또한 방향을 가리지 않고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그게, 직장인의 최선이라고 나는 믿는다.

스트레스의 크기를 최소화 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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